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있는 기획물입니다. 오랜 독일생활을 통해서 알게 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독일사회의 모습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그러한 독일모델이 급속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양극화, 사회갈등, 정치발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필자주: 조성복)

 

비례대표제, 새누리당 밑지는 장사 아니다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독일의 선거 제도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는 김무성 대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통해 친박과 비박 사이의 경쟁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문재인 대표의 재신임 여부 등 친노와 비노 간 신경전이 격화되고 있다. 정의당은 진보 통합을 모색하고 있고, 천정배 의원 등 일부에서는 신당 창당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현행 지역구 수를 크게 변경하지 않으면서 헌재 결정에 따라 인구수 격차를 1:2로 조정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통합 위기에 처한 농어촌 지역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치열한 열기와는 달리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 차갑다. 그것들이 유권자들의 피부에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사회의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문제는 빈부 격차나 양극화 같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불평등은 수많은 다양한 문제들의 근본적 원인이 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 이후 늘어나기 시작한 비정규직 일자리의 폭발적 증가와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은 시간이 갈수록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또 다른 계급 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전혀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계층을 대변할 정당들이 정치권에 참여하지 못하고 거대 양당이 우리 정치를 독과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순히 양당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데 있다. 또 그 양당제가 가능한 이유는 바로 기존의 선거 제도 때문이다.

 

우리 정치 시스템을 규정하는 '다수제 민주주의'는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 선거 제도, 그에 따른 양당제, 단독 정부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자유 시장 경제' 체제와 친화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시스템은 그동안 우리의 급속한 경제 발전에는 도움이 되었으나, 이후 사회 경제적 분배 문제를 다루는 데에는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다수제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고 있는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 선거 제도는 전체 투표수의 절반에 가까운 사표를 초래하여 투표권의 평등 조건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으며, 이는 투표율(2012년 총선 54.2%)의 지속적 하락을 초래해 국민들의 정치참여를 방해하고 있다.

또 유권자가 원하는 정당이 아니라 당선 가능성이 큰 후보에게 투표하도록 하여 거대 양당이 의석을 독점하게 하고 제3당의 출현을 막아 정당의 대표성을 훼손하고 있다. 그밖에도 권력의 승자 독식, 지방 분권의 약화 등의 문제점을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기존의 다수제 민주주의에서 '합의제 민주주의'로 정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이는 비례 대표제, 다당제, 연립 정부 등의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복지나 분배 문제에 관심을 갖는 '조정 시장 경제'와 친화성을 갖는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북유럽 국가들이 주로 이를 채택하고 있는데, 노사정 합의를 중시하는 분배 친화적 또는 사회 통합형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거대 양당의 계파 갈등은 조금씩 서로 다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근본적 원인은 동일하다.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싼 다툼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이러한 모습은 어쩌면 권력 투쟁의 성격상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치권이 어떤 공천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 정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어차피 공천의 형태를 어떻게 바꾸더라도 후보가 되려는 정치인들 간의 경쟁은 치열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당의 계파 싸움과 야권의 당권 및 신당 창당, 그리고 선거구 획정 등을 둘러싼 갈등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정치권의 후진적 모습은 아래 두 가지 문제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독일과 비교하여 살펴보겠다.

 

 첫째, 정당 운영의 문제다. 독일에서는 당원 및 그들의 지역 대표들이 공천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후보 공천을 둘러싼 갈등이 드물고, 의원들이 대표나 특정인에게 줄을 서는 경우가 없으며, 그에 따른 계파는 형성되지 않는다. 계파는 이념이나 정책 노선의 공유에서 만들어진다. 반면에 우리는 당 대표나 일부 정치인이 그것을 독점하고 있다. 공천 탈락자가 반발해 탈당을 하거나 심지어는 '공천 학살'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후유증이 심각하다. 게다가 공천자나 공천에 영향을 끼친 정치인을 중심으로 계파가 형성된다. 이렇게 공천을 받아 당선된 의원들은 자신을 공천한 '수장'의 친위대 역할을 수행하며, 재공천 받을 길을 모색한다. 그들에게는 당원이나 유권자의 뜻보다도 공천권자의 의중이 더 중요한 활동기준이 된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당과 당원이 활성화되는 방향으로 정치 혁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현 정치권은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오픈 프라이머리'(국민 공천제)에서도 후퇴해 다시 소수가 공천권을 독점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새정치민주연합도 혁신위에서 내놓은 공천안에서 보듯이 '국민 공천단'을 구성하여 당원들을 배제시키려 하고 있다.

 

정치 혁신은 당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2030 세대의 젊은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활동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런데 거대 양당의 정치인들은 당원이나 정당의 발전에는 별 관심이 없고, 선거에서 단지 그 정당의 이름만을 도용하고 있다. 이처럼 정당이 단순히 정치인의 당선 도구가 되는데에만 이용돼서는 곤란하다.

 

이와 더불어 여론 조사를 통해 공직 후보를 결정하는 일도 중단돼야 한다. 그것은 정당의 역할을 더 축소시키고, 조작을 통해 국민의 의사를 왜곡할 수 있으며, 정치를 우습게 만들고 있다. 후보 여론 조사의 맹점은 응답자들로 하여금 후보자들과 그들의 정책을 모르는 체 단순히 유명세에 의존해 수동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다는 데에 있다. 당내 경선 과정에서 후보들과 당원들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국민 의사 수렴, 새로운 정책 형성 등)를 낼 수 있어야 민심과 괴리되지 않는 정치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정치를 혁신하기 위해서는 대대적인 정당의 재설계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친박, 비박, 친노, 비노, 안철수, 신당 등에서 혁신을 주장하는 그 누구도 정당과 당원을 살리기 위해 공천권을 당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다. 기껏해서 나온 이야기가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고 하는 것인데, 그것은 선거에서 할 일이지 정당에서 할 일은 결코 아니다. 정치인들이 정당을 살리는 일에 무관심한 것은 정치발전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선거 제도의 문제다. 독일에서는 누구나 쉽게 정당을 만들 수 있고, 선거에서 유권자 5% 이상의 지지를 받으면 전체 의석의 5% 이상을 확보하며 의회에 진출할 수 있다. 따라서 독일 사회의 다양한 계층이나 집단을 대변하는 정치 세력들의 제도권 진입이 가능하다. 그래서 4~5개 정당이 서로 협조하는 안정적인 다당제를 유지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일차적으로 정당을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렵고, 설사 만들었다 하더라도 정치권 진입은 거의 불가능하다. 거대양당이 대부분의 것들을 독점해 버린채 제3, 제4의 정당이 출현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양당이 정치권을 좌지우지 하고 있지만, 정당 지지율을 보면 새누리당이 30~40% 내외, 새정치민주연합이 20~25%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 절반에 가까운 유권자들은 선호하는 정당이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선거 제도 때문에 유권자는 투표장에 가면 양당 중에 하나를 찍어야만 한다. 그것이 싫어서 불참하는 유권자가 늘고 있고, 동시에 정치혐오나 무관심이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그러면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양당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기존의 선거 제도 때문이다. 소수 정당들을 위시하여 새정치민주연합은 물론, 중앙선관위원회, 학계 전문가, 심지어 다수 국민들도 선거 제도를 비례 대표제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기존의 선거 제도가 국민의 정치혐오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은 기존 제도가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여전히 이를 무시하고 있다. 올해 4월부터 진행된 국회 정개특위에서도 새누리당은 끝내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새누리당이 우리 정치 발전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 정치가 새로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두 가지 과제 중에서 우선적으로 선거 제도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소선거구 단순 다수제'를 '비례 대표제'로 바꾸게 되면, 거대 양당을 포함하여 다른 정당들의 정치 활동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되어 결과적으로 정당 운영 방식이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가로막고 있는 새누리당은 다시 시작될 정개특위 논의를 앞두고 이 문제에 대해 한 번 더 심사숙고 해야 한다. 비례 대표제로 바꾸더라도 손해 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민의 반대를 무릅써 가면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어리석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독일식 선거 제도, 새누리당에 결코 불리하지 않다 , 새누리 152석, 독일식 비례 대표제 적용해보니...)

 

/ 조성복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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