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있는 기획물입니다. 오랜 독일생활을 통해서 알게 된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독일사회의 모습을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으로 나누어 소개하고, 그러한 독일모델이 급속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양극화, 사회갈등, 정치발전 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필자주: 조성복)


유승민, 독일이라면 어땠을까? 

[조성복의 '독일에서 살아보니'] 유승민 사태의 본질

 

 
헌법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가치를 지키고자 했다는 사퇴의 변과 함께 지난 6월 말부터 2주 가까이 끌어왔던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이의 갈등이 끝이 났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해석들이 난무했고, 수많은 해법들이 쏟아졌다. 삼권 분립이 훼손됐다는 등의 이유로 한동안 정치권이 시끄러웠지만, 제대로 된 대안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다. 이번 소동을 통해 여야가 보여주는 모습들에서 드러난 몇 가지 문제점들과 그 원인, 그리고 정치권의 혁신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겠다.

 

첫 번째 문제점은 정치권의 권력 투쟁 모습이 마치 중계 방송하듯이 공개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당 대표 선거나 대선 후보 선출 등의 모습도 거의 유사하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본선에서의 경쟁보다도 더 치열하다. 하지만 독일은 그렇지 않다. 권력 투쟁이 커튼 뒤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당 대표를 뽑는 전당 대회를 보면 우리와 같은 치열한 내부 갈등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치 소시지 만드는 것과 정치 협상의 과정은 보이지 않는 것이 낫다는 말에 충실하듯이.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진단이 가능하겠지만 그 한 가지 이유는 정치적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독일 총선에서 메르켈(A. Merkel) 기민당(CDU) 대표는 총리 후보를 소규모 자매 정당인 기사당(CSU) 스토이버(E. Stoiber)에게 경선없이 양보했다. 우리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다음은 자기 차례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타협하고 양보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본다.

 

이는 정치 또는 정당 시스템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인데, 한 마디로 권력이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당원에 의해 공직 후보가 선출되고, 따라서 지방 의원이나 국회의원들이 당 대표나 연방 총리(대통령)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회선진화법에 관한 것이다. 이 법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의 하나인 다수결의 원칙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점을 안고 있는데, 양당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내세워 잘못 태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외관만 손봤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다수결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다수결을 결정하는 국회의원의 구성, 즉 국회 구성이 잘못됐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 등을 대변하는 다양한 세력들로, 즉 다양한 정당들로 국회가 구성되어야 하는데, 2개의 거대 양당이 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이 시스템 하에서는 상대를 거부하고 부정할 때만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협상이나 타협이 곤란하다. 즉 구조적으로 타협이 어렵다는 점이 바로 양당제의 폐해이다. 매번 총선에서 양당에 새로운 인물들을 투입하지만 그렇다고 그와 같은 양당의 대립과 갈등이 완화된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1980년대 후반 민자당 탄생 이전 4당 체제에서 중요한 정치적 타협이 많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그 방증이다.

 

독일은 의원 내각제이기 때문에 의회에서 과반수 확보를 통해 정부를 구성한다. 하지만 한 정당이 절반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보통 연정을 통해 행정부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쪽은 대부분의 입법을 통해 정책을 시행하고, 차기 선거에서 그에 대해 심판을 받는다.

 

실제로 집권 정당들이 압도적으로 입법을 독점하고 있다. 야권은 여당의 정책을 비판하고 문제점을 제기하지만, 그것을 온몸으로 막거나 극한 대립을 보이는 경우는 없다. 이는 유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된 선거를 통해 4~5개의 정당이 안정적으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즉 선거를 통해 소외되거나 대변 받지 못하는 국민이 없기 때문에 모든 정당들이 과반의 결정을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 번째 새누리당의 문제다. 며칠 전 김무성 대표가 취임 1년 차 회견에서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 경선제) 도입, 국회선진화법 폐기, 합의민주주의, 보수혁신 등을 주요 아젠다로 제시했다.

 

오픈 프라이머리는 나름대로 상향식 공천을 추진하는 것이지만 어떻게 제도화하느냐에 따라서 여전히 당 지도부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고, 정치를 인지도 높은 인사들의 전유물로 만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문제가 많다고 볼 수 있다. 또 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할지라도 당 대표나 권력자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각각의 의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의 혁신이 가능하겠는가? 그래서 오픈 프라이머리보다는 공천권을 지역의 당원들에게 돌려주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또 현 양당제의 문제점을 그대로 둔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만 폐기하는 것은 또다시 온몸으로 격투하는 대결의 정치를 재현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한 상황에서 합의민주주의가 가능하겠는가? 따라서 기존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선거제도의 개혁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네 번째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다. 최근 혁신위원회가 제시한 혁신안을 살펴보면, 최고위원회와 사무총장제 폐지, 선출직 공직자 평가위원회 설치, 당원소환제 등을 그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과연 이 정당이 살아날 수 있을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는 이유는 중앙 또는 상부에서 여전히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방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아래로부터 나올 수 있도록 당원들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혁신안이 나와야 한다. 당원에게 공직 후보의 공천권을 주는 것이다.

 

이를 반박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할 당원이 없다고, 또 서류 당원뿐이라고 (또는 호남 당원뿐이라고, 열린우리당의 경험에서 이미 실패한 것이라고), 그래서 현실적으로 곤란하다고 한다. 그것은 일부 맞는 말이고, 또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당원에게 아무런 제대로 된 권한을 준 적이 없었는데, 누가 당비를 내며 굳이 당원을 하려고 했겠는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이야기이지만, 당원에게 권한을 준다고 명시하고 이를 제대로 실천한다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다음 공천 시기에는 당원의 숫자가 수십 배로 늘어날 것이다. 유연성을 발휘하여 이번 다가오는 총선에서는 당원과 중앙당이 함께 공천을 하겠지만, 앞으로는 공천권을 당원의 권리라고 규정하면 될 것이다.

 

끝으로 요즘 한창 진행 중이라는 야권의 신당 창당 논의를 보아도 기존의 정당들과 차별화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식이다. 이들은 먼저 지금까지 새로운 사람이나 정책이 없어서 우리 정치가 그동안 표류했었던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새로 수혈된 새로운 정치인들이 재선을 위해 결국 공천권자의 눈치를 보느라고 일을 망친 것이 아니었던가. 따라서 이들이 국민을 대변하는 당원들의 의사를 수렴하고 중시할 수 있도록 정당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이 새로운 시도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현재 우리의 정치적 현실에서 인물이 바뀐다고 정치가 바뀔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매번 회기마다 50%에 달하는 새로운 인물들이 국회에 들어갔었지만, 다음 공천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는 행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 유승민 파동에서 보여준 새누리당의 행태가 그 좋은 본보기다. 세월호 사태를 대하는 여야 의원들의 모습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지역의 당원들에 의해 재신임을 받고 공천을 받는다면 과연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

 

필자는 진정한 정치혁신을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다음 두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공천권을 당원에게 돌려주는 것, 이를 위해 지구당을 부활하고 시·도당을 강화하며, 중앙당을 축소하는 것이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기존의 선거 제도를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소규모 정당들이 국회에 들어가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국민 대다수의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그 가운데 대화와 협상을 통해 다수결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동안 성완종 리스트, 메르스 사태, 유승민 파동 등으로 거의 중단되다시피 한 국회 정개특위의 활동에 여야 지도부가 관심을 가지고, 팔을 걷어 젖히고 덤벼들어야 한다. 자기 당의 총선 승리만을 목표로 삼으려 하지 말고, 좀 더 거시적으로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위해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할 때야 비로소 국민의 절반에 달하는 무당파층의 지지를 받아 정권을 잡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이제 헌법 1조 1항뿐만 아니라, 헌법 1조 2항의 가치도 지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조성복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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