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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마키아벨리는 1469년 피렌체에서 중산층 평민인 가난한 변호사의 아들로 태어난다. 1494년 프랑스의 침공으로 도시국가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잃고 사보나롤라의 급진적 공화파가 집권한다. 이 정권이 4년 만에 붕괴되자 또 다른 공화파인 소데리니 정부가 등장한다. 당시 29세였던 마키아벨리는 이 소데리니 정부에서 14년 동안 지금의 외교안보수석과 같은 주요 공직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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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로 마키아벨리

그는 프랑스의 루이 12세, 신성로마제국의 막시밀리안 1세, 교황 알렉산데르 6세와 율리오 2세, 체사레 보르자 공작 등 당시 이탈리아 정치의 중심에 섰던 주요 인물들을 만나 외교 활동을 펼친 외교관이자 정치인이었다. 1512년 교황과 에스파냐 황제의 군사개입으로 공화국이 무너지고 메디치 정권이 복원되면서 그는 파직되고, 투옥된 후 가혹한 고문까지 받는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마침 메디치가의 조반니 데 메디치가 교황(레오 10세)으로 선출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대사면으로 풀려난다. 이후 저술활동에 전념하면서 공직 복귀를 시도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이 시기에 군주의 리더십과 통치술을 담은 ‘군주론’과 공화주의에 대한 저술인 ‘티투스 리비우스의 로마사 첫 10권에 대한 강론’(이하 ‘강론’) 등을 집필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당시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메디치가의 수장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한다. 하지만 그를 위험시한 지배층은 그를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1527년 사망함으로써 그는 쓸쓸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할 때까지 이탈리아는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 로마교황청, 나폴리의 5대 지역 강국 사이에 평화체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로디의 평화’라 불렸던 이 세력 균형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깨지면서 일대 혼란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 피렌체에서는 메디치 정권이 붕괴되고 공화국이 등장한다. 1512년에는 에스파냐의 침공으로 피렌체 공화국이 붕괴하고 다시 메디치가가 권력을 장악한다.

‘군주론’은 이런 혼란의 시기에 외세에 휘둘리지 않고 기존의 약한 도시국가를 뛰어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국가를 이탈리아에 건설하려 한 마키아벨리의 목표가 담긴 책이라고 저자인 최 교수는 말한다. 이를 위한 국가의 구조, 지도자의 모델, 리더십, 통합 전략, 통치술, 군대, 민중과의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제시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일까? 2013년 한 해 동안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5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마키아벨리가 태어난 1469년이나 ‘군주론’이 출간된 1532년이 아니라 그가 ‘군주론’원고를 집필한 1513년을 기준으로 500주년을 기념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최 교수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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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 있는 마키아벨리의 기념비

최 교수는 정치학의 수많은 고전들 중에 ‘군주론’만큼 큰 논쟁을 불러온 책은 없다고 말한다. 기존 상식이나 통념, 종교나 도덕적 규범을 뛰어넘는 내용이 많아 권모술수나 악의 대명사로 마키아벨리를 먼저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미 스피노자나 루소 등이 마키아벨리를 공화주의의 대변자이자 자유의 옹호자로 해석했고, 현대의 정치학자들 상당수가 그를 공화주의자나 민주적 공화주의자로 보고 있다고 한다.

최 교수는 마키아벨리를 가장 정직하고 탁월한 정치철학자로 평가하며 그의 정치 이론 가운데 특히 세 가지 주제에 초점을 둔다. 첫째는 국가에 관한 새로운 비전이고, 둘째는 ‘정치적 현실주의’이며, 마지막은 ‘민주적 공화주의’이다.

첫 번째 ‘국가에 관한 새로운 비전’에서는 마키아벨리 이전까지는 통치자의 지위, 신분과 국가의 의미가 혼용되어 사용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국가라는 통치권을 행사하는 제도들과 그 제도를 관장하는 통치자를 일관되게 구분해서 사용했다. 근대적 의미의 영토적 주권국가까지는 아니지만 ‘국가에 관한 것’ 내지 ‘국가의 책략’을 정립한 것이다. 그는 어떤 정책이 결과적 유익함을 가져온다면 이때 동원된 수단들은 사후적으로 정당화될 수도 있다는 ‘국가 이성’의 진정한 성격을 발견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의 ‘정치적 현실주의’는 마키아벨리즘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이라고 최 교수는 강조한다. 인간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한 공적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는 필수지만 권력 추구와 지배 욕구 역시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에 정치에는 늘 복잡하고 냉혹한 권력 투쟁이 혼합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도덕이나 종교를 우위에 둬서 해결하려하면 정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는 멀어지면서 오히려 정치의 타락은 심해진다고 마키아벨리는 보았다고 한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물이나 정치를 보는 태도를 마키아벨리가 견지한 것은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고 한다. 그는 인간의 본성과 대중의 심리적 정치적 정향과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순환한다는 사실적 통찰을 토대로 정치에 접근했다. 이에 따라 그는 갈등을 정치 행위의 본질로 이해하고 이를 제도화할 것을 제시했고, 정치적 선택에서 차선보다 차악을 발견하는 것이 더 일반적이라고 보았다고 최 교수는 강조한다.

마지막 ‘민주적 공화주의’는 ‘군주론’이 아니라 ‘강론’에 중심주제로 등장한다고 한다. 최 교수는 군주와 민중의 공존 가능한 권력관계, 귀족의 권력 독점에 대한 평민의 견제와 균형, 민중의 광범한 정치 참여를 강조한 마키아벨리 정치사상의 독창성을 강조한다.

군주정, 귀족정, 민주정의 장점을 혼합한 두 명의 통령, 귀족을 대표하는 원로원, 민중의 대표인 호민관이라는 혼합정제에 대해 마키아벨리는 다른 정치사상가와 달리 사회 세력 간 조화의 가치가 아니라 갈등을 통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현대의 미국 헌법이 삼권분립이라는 권력 간의 수평적 균형의 문제로 민주주의를 축소시켜 참여와 평등의 가치를 약화시켰다면 마키아벨리는 민중들의 정치참여 확대와 사회적 책임을 더 강조한 민주적 공화주의자라고 최 교수는 말한다.

이렇게 선거 말고도 민중들이 정치과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한다면 부의 불평등 구조도 개선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좁은 참여에 기반을 둔 현대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선출된 정치엘리트들에 의한 통치 체제로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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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정치철학 강의 시리즈 두 번째 책이고, 2011년에 출판한 첫 번째 책인 막스베버의 ‘소명으로서의 정치’(최장집 엮음, 박상훈 옮김, 폴리테이아, 본지 북카페-34에 소개, 2013년에 후마니타스에서 개정판 나옴) 역시 정치적 현실주의를 가장 강조한 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정치에 가장 부족하고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최 교수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 교수는 현실주의가 약한 것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하며 두 가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논한다. 하나는 오랫동안 우리 정치에 만연한 이상주의와 도덕주의 전통이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힘을 발휘하면서 정서적 급진주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주의적 실천을 급진화 시키면서 정치현실을 무시하거나 현실과 괴리된 정치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과 머리로 인식된 세계 사이의 대립이다. 이것은 흔히 반공 이데올로기나 진보 이데올로기 같은 이념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정치 현실과 사회적 다양성과 갈등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고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그 결과가 사회적인 현상 유지와 기득권 정치라고 최 교수는 말한다.

이 책은 ‘소명으로서의 정치’와 마찬가지로 최 교수의 해설과 박상훈의 원작 번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는 해설이 주였다면, 이번 책은 번역이 주라고 할 정도로 알기 쉬우면서도 세심한 번역이 탁월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포함된 ‘직설적이고 간결한’ 마키아벨리의 글을 읽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더구나 마키아벨리즘의 많은 부분이 시대적 배경과 전후 맥락에 의해 이해의 정도가 달라질 수 있는 현실 의존적이며, 맥락 의존적이기 때문에 마키아벨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해설서가 아니라 원전을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키아벨리 시대는 권모술수와 간계가 난무하고 정치적 패배나 실각은 곧 죽음을 의미할 정도로 정치와 전쟁의 구별이 안 되었다. 간계로 정적을 참살하고, 정치적 용도로 부하를 잔혹하게 처형한 체사레 보르자를 마키아벨리가 지도자의 전형으로 생각한 것은 이런 정치적 현실과 강한 이탈리아 국가 건설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고려한 판단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려면 복수할 엄두가 나지 않게 짓밟아 뭉개야 한다.”, “여우의 방법을 쓰면서도 그 본성을 잘 숨기는 능숙한 기만자이자 위선자가 되어야 한다.”, “군주는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두려움의 대상이 되어야 배반당하지 않는다.”, “많은 악(惡)속에서는 선(善)하지 않을 수 있음도 배워야 한다.” 같은 말들도 ‘평화 시기’가 아니라 위기가 일상화 된 ‘비상한 시기’에 대응하는 정치론으로 본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최근의 7.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국민은 정부 여당의 계속된 실정에도 불구하고 야당의 무능을 더 꾸짖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여야 정치권이 실정과 무능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정치적 현실주의를 제대로 체득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과 정치‧사회적 목표에 대한 현실적 판단을 제시하고 과감하게 실천해가는 강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과 정당이 아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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