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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50대 인생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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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송호근, 이와우

충청도 산골의 자소작농의 둘째, 공고와 전문대 출신의 토목기사, 중견 건설 회사의 부장, 2년 전 이사 승진 좌절 후 명퇴, 현재 55세의 대리 기사, 두 자녀의 아버지…

경북 영주 출생, 초등 교장의 장남, 서울 중고와 서울대 졸업, 학생 운동 참여, 외국 유학, 현재 57세의 서울대 교수, 두 자녀의 아버지…

이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술 한 잔을 한다면 무슨 얘기를 나누고 어떤 공감대를 나눌까?

대리 기사와 ‘대리 기사 부르신 분’으로 만난 두 사람은 내 집 마련, 자식 교육과 결혼 문제, 부모 모시는 문제 같은 인생의 숙제에 금방 공감했고, 가족, 연애, 영화, 학창 시절 등 수많은 공통의 화제를 찾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저자는 대리기사와 살아온 얘기를 나누다보니 한없는 서글픔이 몰려왔다고 한다. 경험과 기억의 공통성 속에 그들 세대가 힘들게 감당해 왔고 앞으로도 감당해 가야 할 인생의 짐의 공통성에서 비롯된 서글픔이었다고 한다.

이들의 우연한 만남과 의기투합과 서글픈 공감은 같은 세대인 50대에 대한 사회학적 조사연구로 이어졌고, 이 책 ‘그들은 소리 내 울지 않는다’가 나왔다고 한다.

이들처럼 학력과 직업, 생활 방식이 달라도 시대 과제와 인생의 숙제가 엇비슷한 동질적 경험을 공유한 연령집단을 세대라고 한다. 이 책은 6.25 전쟁 직후인 55-63년 생, 연령으로는 50-58세인 베이비부머 세대들에 대한 보고서다.

70년대에 20대였던 이들 베이비부머들은 공돌이와 공순이의 원조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과 수출주도형 산업화의 주력부대였다. 농촌에서 도시로 올라온 그들은 공장 외에도 식모, 다방 레지, 주다야싸(주간 다방 야간 싸롱), 버스 차장, 트럭 조수, 리어카 장수, 아이스케키 행상, 엿장수, 고물장수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다.

저자는 솔직한 인생 고백과 10명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세대와 확연히 구별되는 베이비부머들의 세대 경험을 있는 그대로 복원한다. 저자는 베이비부머들 끼리 경험과 기억의 공통성과 연대감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나누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세대의 특징을 가교 세대(bridging generation)라고 정의한다. 70년대에 유행한 사이먼과 가펑클의 ‘이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Bridge over troubled water)’가 이들 베이비부머의 운명 같은 노래란다.

‘가교 세대’는 너무도 다른 세대와 시대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첫째는 부모 세대인 ‘농업 세대’와 자식 세대인 ‘IT 세대’ 사이에 소통의 다리를 놓은 세대라는 것이다. 이들이 농촌 공동체의 문화 유전자가 흐르는 마지막 세대이자 유교 전통을 계승한 막내 세대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의 대부분은 부모는 의당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식을 위해서도 희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 세대도 자식에게 투자하고 희생했지만 이 세대는 자식에게 투자한 만큼 노후를 의탁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고 권리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베이비부머는 자식에 대한 투자는 부모 세대를 능가하면서도 노후는 자식에게 기대지 않겠다는 의식이 강하다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부모세대는 대체로 가부장적인 전통적 세계관에 젖어 있는 반면, 자식세대는 소비문화를 향유하는 개성적 문화세대다. 1인당 국민소득 50불이던 시대에 청년 시절을 보낸 부모 세대와 1만 불이 넘는 자식 세대 사이에 생긴 가치관의 차이다. 중간에 낀 베이비부머는 가족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양자의 가치관과 요구를 자신을 억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에 익숙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둘째는 근대인 60년대와 현대인 80년대 사이의 큰 절벽을 잇는 70년대라는 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도시의 발달 정도, 의식주 환경, 시민 의식과 가치관 등에서 80년대 이후는 60년대와 너무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1898년에 등장한 근대의 상징이었던 전차는 68년에 사라졌고, 74년에는 지하철이 개통됐다.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줄지어 투표소로 가는 노인들의 모습은 60년대까지 볼 수 있었다. 70년대 들어 본격화한 아파트, 대형 상가, 소형주택 건설 붐과 전국적인 산업 공단 건설, 새마을 사업 등은 도시부터 농어촌까지 크게 모습을 바꿔놓았다.

급변하는 70년대에 운명적으로 청년 시절을 보낸 베이비부머들은 산업화와 세계 시장 개척에 한 몸을 바쳤고, 더러는 산업화의 모순으로 촉발된 민주화운동에 뛰어 들기도 했다. 이들은 근대와 현대를 넘어가는 급변하는 시대에 가교 역할을 했고, 이후 80년대의 ‘운동권 세대’와 90년대의 ‘탐닉 세대’를 위한 다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IT 산업, 자동차 산업, 조선 산업을 일구고, 수출 백만 달러가 1조 달러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고, 각종 건설 현장에 청춘을 바친 ‘가교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가 이제 각종 스펙으로 무장한 자식 세대에 밀려 쓸쓸하게 퇴장하고 있다. 이들 베이비부머들이 소리 내어 울지 않는 이유는 아직 10년은 더 버텨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계상으로 한국 사회에서 평균 쉰일곱 살, 실제로는 평균 쉰세 살에 직장을 떠나고 있다. 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고용 연장이나 고령자 취업 정책은 다른 나라에 비해 턱없이 부실하다. 자영업 성공률은 20% 정도밖에 안 된다. 연금 개시 시기도 너무 늦고 연금액도 절대 부족하고 사각지대도 넓다.

고성장 시대를 구가하고 청춘을 경제성장에 바친 한국의 50대의 절반이 노후 대책이 없다고 한다. 한국의 베이비부머들은 공적안전망에 소홀했을 때 어떤 노후를 맞게 되는지를 실험적으로 보여주는 슬픈 집단인지 모른다고 저자는 한탄한다.

저자는 빈약한 복지제도, 너무 높아진 젊은 세대의 사회적 진입 비용, 스스로 구축하고 자신들마저 갇힌 지독한 양극화 구조 같은 사회 문제에 베이비부머 세대의 책임이 있다는 점도 짧게 언급한다. 경제성장에 헌신했지만 인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는 실패했음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온 힘을 다해 내놓는 은퇴 후 노년의 삶을 위한 다양한 조언들도 읽어볼만하다. 타인에 의존하지 않는 홀로서기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죽음, 일, 취미에 대한 바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원순 시장이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에게 선물한 책이라고 한다. 두 사람 다 베이비부머세대이므로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기억과 경험에 공감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 공감과 연대감이 문제 해결의 출발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베이비부머들에게 가장 뜨거운 돌이겠지만 그들의 문제를 해결한다면 그 혜택은 전 세대로 흘러갈 것이기 때문이다.

50대라면 말할 것도 없고 40대 중반 이후라도 공감할 내용이 많은 책이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저자의 인생 고백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또 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동기를 제공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최근 추세가 되고 있는 세대 투표에 대한 직접적 분석이 없는 것은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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