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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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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몰락, 박성민, 강양구 인터뷰, 민음사

새정치가 화두다. 많은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새정치를 들고 나왔지만 선거용 수사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2012년 대선 전부터 안철수가 주창한 새정치는 여러 논란을  겪었지만 계속 강력한 구호로 유지되어 왔다.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합쳐 새정치(민주)연합이 탄생되면서 새정치는 구호를 넘어 구체적 실체를 만들어 가고 있다.

새정치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아전인수식 해석과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이 난무하고 있지만 이렇게 새정치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이유는 일정한 시대적 요구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정치가 구시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새로움을 획득하려면 질을 달리하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가져와야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뛰어난 정치컨설턴트인 박성민과 부지런한 학구파 기자인 강양구가 함께 낡은 87년 체제 이후의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분석한 책이다. 지금 우리 정치는 여전히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을 걷고 있다. 새정치가 안개를 걷고 확실한 길을 찾아가려면 시대정신이라는 이정표와 실현가능한 현실성을 획득해야 할 것이다. 책 속에서 이런 논의에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간추려보았다. 

책의 첫머리에 박성민은 정치의 몰락을 얘기한다.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정치가 앞자리이던 시대는 끝났다고 한다. 과거 전쟁과 혁명의 영웅들이 차지하던 자리를 기업인과 문화, 스포츠 스타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정치에 몰입하고 있는데 이것은 역설적으로 좋은 정치와 좋은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통상 현실 정치 세력을 보수, 중도, 진보로 구분하지만 이것은 현실 분석에 유용하지 않다고 박성민은 말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새누리당(한나라당)만 찍는 사람, 한 번도 새누리당을 찍은 적이 없고 앞으로도 찍지 않을 사람, 그리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이렇게 세 부류가 있다는 것이다. 새누리당, 반새누리당, 무당파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새누리당 대 반새누리당으로 표현하는 근거는 한국의 정치세력 중 새누리당만이 연대나 통합 없이 단독으로 집권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다른 세력은 통합하거나 연대해야 집권이 가능하다. 우리가 대화할 때 쓰는 보수/진보라는 용어는  사실 새누리당/반새누리당의 개념으로 쓰고 있다고 박성민은 말한다. 

박성민은 4·19 혁명이나 80년의 ‘서울의 봄’이 결국 비극으로 끝난 것과 달리 87년 6월 항쟁 이후에 ‘87년 체제’가 가능했던 것은 여야의 대타협으로 새로운 헌법이 탄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이전의 체제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스템의 비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 역시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갈려면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쳐 이렇게 ‘비가역적인 체제 변화’를 만들어 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핵심 주장이다.

그는 1950∼1960년대는 전쟁과 가난과 북한에 대한 두려움으로 ‘생존에 대한 회의’가 지배하는 ‘실존의 시대’였고, 유신 시대로 불리는 1970∼1980년대는 ‘국가 권력에 대한 회의’가 지배하는 ‘민주의 시대’였다고 한다. 1990-2000년대는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진보만으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진보에 대한 회의’가 지배하는 ‘자유의 시대’였다고 한다. 

‘자유의 시대’에 자유 시장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득세하고 한국의 보수도 안보 보수에서 시장 보수로 주도권이 넘어가면서 CEO 출신의 대통령까지 나왔지만 세계 금융위기 이후 그 폐해가 분명해졌다고 한다. 양극화 심화로 대중의 분노가 폭발하고, 시장이 오히려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이 높아지면서 ‘시장에 대한 회의’가 지배하는 ‘공화의 시대’ 혹은 ‘공공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정신을 구현할 주체의 문제를 보자면 현재 60대 이상은 애국심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의무만 있지 권리는 없었던 ‘국민’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때는 TV, 전화기가 마을에 한두 대만 있던 시절이었고, 기본적으로 모든 정보는 국가가 쥐고 있었다. 40-50대는 민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권리와 의무를 모두 받아들이는 ‘시민’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집집마다 TV, 전화기가 있었고, 사이버 공간도 열린 시대이다. 

반면에 20-30대는 권리가 의무에 우선하는 소비자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세대라고 한다. 이들은 TV와 전화기를 한 대씩 들고 다니고 언제든 사이버공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는 진정한 공화의 시대를 열려면 대중이 이런 정체성들을 뛰어넘고 보수와 진보가 힘을 합치는 큰 변화가 일어나야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박성민은 정치의 본질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고, 불확실한 것을 확실한 것으로 바꾸어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과 같이 사는 법, 갈등을 조정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이 정치라는 것이다. 

갈등 해결의 방식으로 다수결의 원칙이 있지만 51퍼센트만 확보하면 모든 것을 다 장악하는 방식은 정치보다는 시장, 엄밀히 말해 ‘주주 자본주의’의 원리에 더 부합하다고 말한다. 51퍼센트만 가지면 모든 게 용인된다면 정치도 정치인들의 존재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다수결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소수가 납득할 만한 충분한 토론과 절차가 최소한 필요할 것이다. 

그는 오늘날처럼 분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려면 최소한 4개 이상의 정당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나열한다면 녹색당이나 노동당, 진보당, 민주당, 공화당, 자유당, 민족당 같은 당들이다.     

새로운 체제가 가능하기위해서는 법과 제도를 바꾸어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대통령 결선투표제라고 그는 주장한다. 이미 정당 내부에서는 결선 투표나 이와 유사한 선호투표제가 시행된 적이 있다. 결선투표제는 확실한 과반 이상의 지지자를 만들 수 있고, 연정을 통해 소수 정당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고, 각자가 최선을 다한 다음에 그 결과를 가지고 연대를 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다.

그는 선거는 많을수록 좋다고 말한다. 선거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온갖 사회 갈등을 한 방에 해결하는 가장 검증된 제도라는 것이다. 그는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교차시켜 평가받게 하자고 한다. 대통령의 정책이 자신의 배지를 좌우하게 되면 국회의원이 대통령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예 국회의원 임기를 미국 하원의원처럼 2년으로 줄이면 정치가 훨씬 역동적으로 변할 것이라고도 한다.     


박성민은 안철수 현상의 이면에는 철학이나 신학에 대해 기술이 우위에 서는 문명사적 변화가 깔려있다고 한다. 스마트폰 세대인 지금의 젊은이들이 ‘강남 좌파’와 ‘강남 우파’에 열광하는 것은 ‘강남성’이 갖는 합리성, 세련됨, 부유함 같은 것을 욕망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반도가 세계 1,2,3위의 군사강국(미,중,러)과 세계 1,2,3위의 경제강국(미,중,일)에 둘러싸인 나라이며 분단국임을 상기시킨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가, 외교관, 군인이 필요한 나라인데도 우리나라에 군인을 키우는 시스템은 있어도 정치가와 외교관을 키우는 시스템이 부재한 것은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경험이 쌓이면 퇴출 대상이 되고, 정치 안하겠다는 명망가를 억지로 영입하고, 공천 제도도 없이  그때마다 졸속으로 정하고, 선거 때면 물갈이 경쟁을 하고, 4년 마다 당대 최고의 개혁 인사를 수혈하고 4년이 지나면 그들이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는 황당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 역시 정치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정치자금법 개정, 지구당 폐지, 국민참여경선제, 외부인 주도의 공천심사위원회 같은 것들도 정당과 선출직 권력을 약화시키는 대표적인 헛발질 개혁이라고  본다. 

그는 한국 정치 선진화를 위해 우선 세 가지를 먼저 하자고 한다. 하나는 공천 방식을 제도화하는 것, 두 번째는 비선출 권력(검찰, 법원, 선거관리위원회, 국세청)이 마음만 먹으면 선출 권력(대통령, 국회의원)을 사법 처리할 수 있는 정치자금법의 개선, 세 번째는 SNS를 포함해 지지나 반대 등 선거운동의 전면적 허용이다.

이들은 정당의 인물 부재에 대해서도 토로한다. 한국의 정당들은 인물을 키우기는커녕 기존 지도자도 헌신짝처럼 던져버린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진보정당이다. 2004년에 정혜신씨가 17대 국회에서 가장 진보적인 의원 1위로 꼽았던 최순영을 비롯해서 노회찬, 심상정 등이 당내에서 제대로 지도자로 커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더십이 부재한 공간에서 당내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목소리 큰 특정 정파만 활개를 치다가 결국 분당 사태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당내민주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면서 좋은 정당에 필수적인 리더십과 권위의 체계를 약화시켜온 것이 핵심 문제라는 박상훈의 글을 인용한다. 반드시 민주적이어야 하는 것은 정당들 사이의 체제이지 개별 정당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능하면 당연히 당내 민주주의도 발전해야하지만 우선순위에서 정당의 조직과 리더십의 발전이 먼저라는 뜻이다. 선출된 당대표의 리더십과 권위는 없고 의원 각자가 개별 행동을 하는 현 야당의 모습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권력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는데 국회의원 같은 선출 권력이 제 힘을 못 쓰면 다른 곳의 힘이 세지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민주공화국에서는 당연히 선출 권력이 비선출 권력을 통제해야 하는데 정당과 정치인이 허약한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한다. 관료와 같은 행정 권력, 검사와 판사와 같은 사법 권력, 재벌과 같은 기업 권력, 이런 비선출 권력이 선출 권력을 무시하고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성민은 새로운 한국형 정당의 모델로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교회를 벤치마킹하자고 말한다. 정당이 시민을 상대로 법률 상담부터 문화 학교까지 재미, 정보,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생활 공동체를 모색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의 생각은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비슷하거나 절묘하게 합의점을 찾아간다. 좋은 대화의 교범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만 국회의원 선거제도 변화와 관련해서 강양구는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확고하게 주장하고, 박성민은 이 제도가 더 좋지만 지역구 현역 의원들의 현실을 고려해서 중대선거구로 바꾸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의 바람처럼 나 역시 87년 체제 이후의 새로운 체제의 수립을 진심으로 바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영역에서 구체제의 한계가 너무 분명하고 예외 없이 국민 모두가 불안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법과 제도는 나름의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장단점이 있다. 따라서 부작용이 전혀 없는 법과 제도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핵심은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시대정신에 근거한 변화의 선택과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보완책의 마련일 것이다. 

지난 몇 개월 사이에 박성민 정치컨설턴트의 강의를 두 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 자신만의 정치 철학, 즉 정치라는 프리즘으로 본 세계관과 인간관이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생각을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에 선택한 책이 이 책이다. 뛰어난 환경, 과학기자로만 알고 있던 강양구의 새로운 진면목을 발견한 것도 즐거웠다. 자신과 자기 진영만을 보는 좁은 시야를 한국과 한반도와 세계로 넓혀 나가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새정치’를 만드는데 참고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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