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신문의 '전민용의 북카페'와 동시에 게재되는 북에세이입니다.


'진영논리의 뿌리는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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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제정신, 허태균, 쌤엔파커스


새정치연합의 안철수와 민주당의 김한길이 힘을 합쳐 제3지대 신당을 만들기로 한 것 때문에 정국이 술렁이고 있다. “새정치를 위한 결단이라는 주장과 야합의 구태정치라는 비방이 교차한다. 동시대를 살면서 같은 사건을 두고 이렇게 보는 시각이 다른 것을 어떻게 봐야할까?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의 신념 체계는 다른 신념체계에 비해 정말로 올바른 것일까?

우리가 뭔가를 믿고 판단할 때 착각에 빠지는 이유는 직접 관찰한 현상과 그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떤 현상을 관찰했을 때 그 현상이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설명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천동설, 진화론, 창조론, 빅뱅설 등의 이론을 만들어낸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마음속을 직접 확인할 수 없지만 태도, 성격, 감정, 생각이라는 이름을 붙여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진실이라고 확신하곤 한다. 하지만 여러분은 실제로는 아니면서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는 척 한 적은 없나? 많은 사람들이 속마음과 드러난 태도가 다를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적 지식들의 상당부분이 이다. 기록되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기록조차도 왜곡된 것들이 많다. 역사학자들이 최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상상하려 하겠지만 결국 역사를 완성하는 것은 현시대인의 욕망이다. 우리는 완벽한 기록이 없는 역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없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 편할 대로 착각할 여지가 남아 있기에---

 

지금도 수험생을 둔 많은 부모들이 각기 자신이 믿는 무언가를 향해 자녀의 대학 합격을 빌고 있을 것이다.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이라는 답도 많지만 진심으로 아무 효과가 없다고 믿는다면 마음 편해지는 효과도 없을 것이다. 한국인에게는 이런 기복적인 종교 행위를 많이 볼 수 있다. 고생한 만큼, 고통을 받은 만큼 보상이 있을 것이라는 인고의 가치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인 노력과 겪은 고통이 결과를 이루는 데 도움이 될 때만 이 말은 타당하다. 자녀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뭔가를 하고, 남는 시간과 돈은 자신들을 위해 써야 한다. 자신을 고통에 빠뜨리며 인고의 시간을 보내면서 혹시 보상받을지도 모른다는 착각은 버려야 하는 것이다.

 

스키너박사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의 행동은 환경에서 보상이나 처벌을 받은 경험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애완동물이나 실험쥐를 길들이는 기본 원리는 원하는 행동에만 보상이 주어지는 배타적 관계(수반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실험쥐가 무슨 행동을 하건 상관없이 무작위로 먹이가 떨어진다면 어떤 학습이 일어날까? 바로 초기에 먹이가 떨어질 때 우연히 하고 있던 행동이 학습된다. 우연히 먹이가 떨어지면 그 쥐는 하던 행동을 더 자주하게 되고 먹이가 떨어질 때 우연히 그 행동을 하고 있을 확률도 증가한다. 쥐는 더 자주 그 행동을 하게 되고 쥐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데도 행위와 결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그 행동을 계속하게 된다.

 

미신이든 종교든 한번 어떤 믿음을 갖기 시작하면 그 믿음이 깨지기는 무지 어렵다. 설사 나쁜 일이 일어나도 그만하기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미신을 믿는 쥐와 인간이 과연 얼마나 다른 것일까?

 

종교, 과학, 인간 관계 등에서 인간은 많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믿음은 상당 부분 타당하고 바람직하기도 하다. 하지만 중요한 착각은 그런 믿음을 실제보다 더 타당하게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믿음이 어긋날 때 지나치게 실망하고 분노하거나 끝까지 우기기도 한다. 우리가 확신하는 많은 진실들이 그냥 지금의 자신에게 그럴듯한 믿음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 중요한 착각은 자신은 웬만하면 착각하지 않는다는 착각이다. 심리학의 순진한 사실주의에 따르면 많은 이들이 자신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만 남들은 착각하거나 편향될 확률이 높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런 착각의 무서운 점은 남을 비난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른 의견을 가지고 논쟁을 하다가 상대의 머리가 나쁘고, 가치관이 이상하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순진한 사실주의에 빠져 있고, 상대방도 당신에 대해 똑같은 느낌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좋은 일은 객관적인 확률보다 더 자주 일어나고, 나쁜 일은 덜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비현실적 낙관성이라는 착각. 자신이 긍정적인 점에서는 무조건 평균 이상은 될 거라고 믿는 평균 이상 착각’. 자신이 속한 집단을 실제보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내집단 편애’. 자신이 원하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 잘 받아들이는 선택적 사고’. 그런데 이런 착각을 덜 하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우울증에 걸려 착각하지 않는 것인지 착각하지 않아서 우울해 지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은 착각, 그것도 긍정적인 착각을 하기 때문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의견과 다른 주장을 접할 때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돌아볼 필요는 분명히 있다.

 

이 책은 인간은 원래가 착각의 동물로 태어났고 착각하지 않을 때가 오히려 드물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래서 책제목도 가끔은 제정신이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을 잘 안다면 우리는 착각을 즐기고, 활용할 뿐 아니라 중요한 일에서는 착각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내집단 편애와 지나친 진영 논리를 완화해 가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과 집단의 생각과 판단이 착각일 수 있다는 겸손한 마음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착각하는 존재이다. 나의 믿음과 신념이 나에게는 지극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느껴지지만 이것이 착각일 수 있다는 과학적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을 인정할 때 서로가 더 열린 대화와 더 진전된 민주주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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