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신문의 '전민용의 북카페'와 동시에 게재되는 북에세이입니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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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의 감정수업-스피노자와 함께 배우는 인간의 48가지 얼굴, 강신주, 민음사

감정은 순간적이고 맹목적이고 위험한 것이라 통제할 대상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감정은 충만한 삶을 위한 정수이며 행복과 기쁨의 삶을 위한 거의 유일한 토대라고 주장합니다. 저자는 먼저 감정이 움직여야 사람이나 사물, 사건이 의미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기억된다고 말합니다. 저자는 삶의 희열과 추억, 설렘을 회복하기위해 먼저 박제화된 감정을 공부하고 나 자신만의 감정을 회복하라고 외칩니다.  

저자는 감정 수업을 위해 감정의 철학자 스피노자를 불러 옵니다. 스피노자는 이성의 영역으로 알려진 철학에 감정을 도입하고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정의한 독특한 철학자입니다. 저자는 스피노자가 설명하는 48개의 감정 하나하나마다 걸출한 문학작품 하나씩을 대응해서 구체적인 소설 속 상황을 통해 감정의 본질을 설명합니다. 

‘자긍심’ 편을 봅시다. 밀란 쿤데라의 소설 ‘정체성’에서 장마르크는 연인 샹탈이 늙었다고 한탄하는 것을 보고 미지의 스토커 시라노가 됩니다. 자신을 찬양하고 숭배하는 시라노의 편지에 샹탈은 엄청난 자기만족과 자긍심을 갖습니다. 장마르크 역시 편지를 쓰기위해  샹탈을 주시하면서 그녀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합니다. 시라노가 장마르크임이 드러나면서 일시적인 위기를 맞지만 두 사람은 사랑이란 서로를 주목하고 자긍심을 심어주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저자는 ‘야심’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약점이라고 말합니다. 불특정 다수로부터 시기와 관심, 찬탄을 받으려는 욕망입니다. 저자는 주인공 뒤루아 등 다수의 야심의 화신들이 나오는 모파상의 ‘벨아미’를 소개하며 사랑에서조차 야심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겠지만 야심을 통제하면 할수록 순수한 사랑이나 행복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 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466쪽)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주인공 폴과 시몽을 통해 저자는 소심함의 안타까움을 설명하고 사랑은 용기 있는 자만이 감당할 수 있음을 설파합니다.

몇 부분만 소개했지만 48개의 감정에 대한 설명 모두가 흥미진진하고 즐겁습니다. 수록된 그림들도 좋습니다. 각각의 감정에 대한 저자의 약평인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는 충만한 삶을 위한 길라잡이라 할 만 합니다.      
“연민은 결코 사랑으로 바뀔 수 없다.”(130쪽) “욕망하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해 보아야 한다. 출발의 설렘이 있다면 나의 욕망이지만, 완성의 허무함이 있다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 것이다.”(188쪽) “과대평가야말로 사랑의 본질 아닐까?”(233쪽) “우리라는 의식이 없다면 해악을 끼치는 강자에 대한 분노도 없다.”(298쪽)

“섹스는 사랑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338쪽) “중요한 것은 가벼움을 확보하는 것. 건강, 젊음, 직장, 애인 등은 항상 떠나거나 버릴 수 있는...”(356쪽) “‘아님 말고!’라는 쿨한 자세”(468) “우리의 몸은 항상 옳지만 정신은 그릇될 수도 있다.”(478쪽) “사랑이든 복수든 그것은 자유로운 자, 강자만이 누릴 수 있는 욕망”(508쪽) 같은 주옥같은 글들이 가득합니다.

감정을 부정하고, 그래서 현재에 살지만 과거나 미래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의 행동 준칙은 ‘선(Good)과 악(Evil)’입니다. 반면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한 사람들이 따르는 행동 준칙은 ‘좋음(good)과 나쁨(bad)’입니다. ‘선과 악’이 대다수 공동체 성원들이 내리는 평가 기준이라면 ‘좋음과 나쁨’은 자신이 평가의 기준입니다. 내 삶을 경쾌하게 하면 좋은 것이고 우울하고 무겁게 만든다면 나쁜 것입니다.

당연히 ‘좋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하고 ‘나쁘다’고 느끼는 것을 거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선택하는 경우가 발생하곤 합니다. 부모나 타인들의 가치 평가를 그대로 수용하거나 자신을 흔드는 다양한 감정들에 너무 서투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감정의 목소리에 충실하기 위해 먼저 타인의 평가에서 자유롭고 당당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관찰, 식별하고 자신의 감정에 능통해지자고 말합니다.

감정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스스로가 감정의 주인이 되어 삶의 주인이 될 것을 주장하는 많은 책들이 있지만 이 책의 다양성과 구체성과 풍부함과 품격은 독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의 한 가지로 ’감정학‘을 개설해도 좋을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무궁무진한 인간의 감정을 연구해서 인간이 충만한 삶을 사는 데 확실한 도움을 주는 학문이 될 것입니다.

몇 가지는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감정과 이성에 대한 균형 잡힌 태도입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 감정이 먼저 발달했지만 이성도 감정도 인간이 진화시킨 인간의 본성입니다. 저자 역시 “감정의 쓰나미를 무모하게 막아서려는 이성이 아니라, 감정을 긍정하고 지혜롭게 발휘하는 스피노자의 이성”을 말합니다. 감정 중심, 이성 중심이 아니라 적절한 균형이 중요합니다. 물론 감정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사회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한 일정한 구부림은 필요하겠지요.

같은 맥락에서 나와 사회의 균형입니다. 인간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이고, 인간의 감정 역시 그런 과정을 통해 발달해 왔습니다. 나에게 좋은 것이 좋음(good)이고, 우리에게 좋은 것이 선(Good)이라면 나에게도 좋은 선(Good)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민주주의와 환경이 파괴되고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나의 좋음(good)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물론 선(Good)을 빙자한 좋음(good)의 조작에 대한 경계는 당연합니다.

저자나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설명이 공감이 안 되는 곳들도 있었습니다. 감정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고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이 예를 들고 있는 감정을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참고삼아 나의 감정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저자의 주옥같은 글에 혹해서 달은 보지 않고 손가락 끝만 바라보는 우를 범하지 맙시다.

좋은 책과 함께 즐거운 감정 여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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