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신문의 '전민용의 북카페'와 동시에 게재되는 북에세이입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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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는 소통을 말하면서도 일방적인 말하기와 대화 단절이 횡행하는 불통의 시대에 진정한 소통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소설이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159쪽)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어떤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지 이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도짓을 하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세 명의 좀도둑이 폐가인 '나미야 잡화점'으로 숨어듭니다. 갑자기 잡화점 주인에게 보내는 편지 한통이 들어옵니다. 도피 중이던 이들은 깜짝 놀라지만 편지를 읽고 고심 끝에 답장을 씁니다. 원래 이 잡화점은 몇 십 년 전에도 고민 상담을 해주는 곳으로 유명했던 곳입니다.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뛰며 오가는 편지의 비밀은 소설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소설을 이끌어가는 아쓰야, 고헤이, 쇼타는 직업도 학벌도 변변치 않은 좀도둑들입니다. 작가는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고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본 일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들이 과거에서 날아온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라는 생각에서 결점투성이의 젊은이들을 등장시켰다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은커녕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이들의 무식하고 투박한 말도 때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할 것입니다.

사랑과 꿈 중에 무엇을 택할지, 돈을 벌기 위해서 호스티스일을 해도 좋을지 같은 심각한 질문부터 시험에서 100점 받는 방법까지 다양한 상담이 오고 갑니다. 우리에게도 나미야 잡화점 같은 고민상담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살면서 이렇게 부담 없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없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고민하고 답하는 것을 통해 서로가 치유되고 조금씩 문제의 중심에 접근해 가는 과정이 감동적입니다. 백지 편지에까지 심사숙고해서 진지한 답을 보내는 나미야씨의 태도에서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이런 진정성이 감동을 낳고 감동이 변화를 낳고 변화가 기적을 만드니까요.

영화 ‘용의자 X의 헌신’의 원저자로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는 추리소설 작가의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소설입니다. 읽는 재미도 있고, 잔잔한 감동도 있고, 인생의 지혜도 담겨 있습니다. 소설 속 다섯 편의 얘기는 추리소설 작가의 작품답게 씨줄 날줄로 모두 얽혀 있습니다. 끝까지 읽어야 전모를 파악할 수 있고 전체를 알 때 감동은 배가됩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강조하는 착한 소설이 새삼 감동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평범한 상식이 무너지고 있는 요즘 세태와 무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밥 묵었나?”가 의례적 인사가 아닌 심각한 질문이 되는 비상식적인 세상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들이 인정받는 상식적인 세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우리는 이룰 수 있을까요?

들으려고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말만 하는 사회는 희망이 없습니다. 무시해서는 안 되는 목소리를 무시하는 사회나 인간은 반드시 대가를 치릅니다. 아이들의 칭얼거리는 목소리든 어른들의 푸념이든 무시해도 좋을 목소리는 없습니다. 이런 목소리들이 자유롭게 나오고 이런 목소리가 관심을 받을 때 그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법과 원칙은 이 목소리들을 충분히 경청한 후에 내세워야 할 마지막 수단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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