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신문의 '전민용의 북카페'와 동시에 게재되는 북에세이입니다.


조정래의 신작 ‘정글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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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주 동안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차지한 ‘정글만리’는 광대한 중국을 배경으로 약육강식의 경제 정글을 그린 일종의 경제 소설입니다. 이미 G2가 된 사회주의 시장경제, 민족자본주의 국가라 할 수 있는 중국의 사회와 정치, 경제 상황과 전망, 경제 주체들, 한국을 포함한 다국적 경제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숫자 8을 광적으로 좋아합니다. ‘돈을 번다’는 ‘파차이’의 ‘파’발음이 8의 ‘빠’ 발음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8자 들어가는 날은 무조건 길일이 되고, 축의금 888위안이 최고의 하객이 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8월8일 오후 8시에 성화가 타올랐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입에 올리면 안 되는 3대 금기사항이 있다고 합니다. 마오쩌둥에 대한 비판, 당에 대한 비판, 그리고 대만독립 문제입니다. 그 중에서도 중국당국은 대만 독립 문제를 현실적으로 가장 민감하게 취급한다고 합니다. 대만 독립은 티베트와 신장위구르의 독립 문제에도 영향을 미쳐 자칫 영토의 65%를 상실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에서 한국인 정동식 사장은 중국도 아닌 대만의 어느 술집에서 대만 독립에 대해 맞장구를 쳤다가 중국에서 실형을 살 뻔하고 영구추방 당합니다.  

유교의 나라답지 않게 중국에는 숭녀공처(崇女恭妻)라는 사회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여자를 받들고 아내를 섬겨야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따라 남자가 음식, 빨래, 청소를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여자가 남자를 때리면 문제가 안 되고, 남자가 여자를 때리면 즉각 구속합니다. 여자들은 ‘성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한 남자와 동거하면서 다른 남자와 쉽게 육체관계를 맺고, 이 사실을 남자들이 서로 알게 돼도 여자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마오쩌둥의 여성 해방 선언과 문화대혁명 과정에 정착된 문화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소설 속에는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축첩문화도 소개됩니다. 바오파후(졸부)인 리완싱이나 부패 관료인 샹신원 등은 모두 여러 명의 얼나이(첩)들을 둡니다. 21세기에 축첩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사회는 아마 중국뿐일 것입니다. 중국 천지의 예쁜 여자들은 절반은 부자나 관리의 얼나이가 되고, 절반은 술집으로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여러 얼나이를 두는 것은 과시용이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의 과시욕과 몐쯔(체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바오파후(졸부)의 전형인 리완싱은 5600만 위안(약 100억 원)을 들여 이태리 대리석으로 치장한 쌍둥이 주택을 짓습니다. 재밌는 것은 쌍둥이 집 중 한 채는 순전히 과시용으로 속은 텅 빈 집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공한 중국 화교들도 귀향하여 내부 시설이라고는 없는 껍데기뿐인 도깨비빌딩을 순전히 과시용으로 세우고 가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작가는 중국의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한국인 전대광 집의 파출부인 쑹칭과 남편인 농민공 장완싱의 이야기를 통해 드러냅니다. 농촌에서 도시로 나와 저임금에 착취당하는 농민공들의 삶은 너무 비참합니다. 심지어 태산에 가면 하루 한 번 칠천 계단을 오르내리며 겨우 20위안(약 3600원)을 받는 짐꾼들도 많습니다.  

빈부격차뿐 아니라 관료들의 부패도 심각합니다. 뇌물이면 안 되는 것이 없는 곳이 중국입니다. 한국 종합상사 부장 전대광의 뒤를 봐주는 ‘꽌시(關係)’인 세관원 샹신원이 대표적인 소설 속 인물입니다. 외신들의 보도에 따른 전 충칭시 당서기 보시라이나 총리 원자바오의 재산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입니다.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이미 세계 G2가 되었고, 조만간 G1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지난 2000년 간 단 200년을 빼고 중국의 GDP가 세계 1위였다고 합니다. 원자폭탄 제조와 유인 우주선 등 중국의 과학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한국 경제도 미국, 일본보다 중국 의존도가 훨씬 높습니다. 중국인들은 말합니다. “친구로 대하면 친구고, 적으로 대하면 적이다.” 미일 일변도의 외교정책이 위험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프랑스가 대만에 무기를 팔아먹자 중국의 인민들은 까르프 불매운동에 돌입하고 정부는 고속철 사업을 프랑스를 내치고 독일로 정합니다. 일본이 섬 분쟁으로 중국인 선장을 잡아가자 즉각 일본 상품 불매, 일본 관광 중단, 희토류 수출 금지 등을 통해 며칠 만에 백기를 들게 합니다. 중국의 저임금에 기초한 싼 생활용품들은 자본주의 세계 경제에 근본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중국의 힘이고, 중국인들의 당당한 태도와 배짱의 원천입니다.

‘정글만리’는 한중일의 총성 없는 경제 전쟁의 현장을 보여줍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비즈니스맨들의 사활을 건 경쟁과 중국에 진출해야 하는 이유와 다양한 영업 노하우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아마도 소설의 목적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중국시장에 진출할 사람들을 위한 읽기 쉬운 입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언론 인터뷰들을 보면 조정래는 ‘정글만리’를 쓰기 위해 많은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중국에 관한 신문, 잡지 기사 스크랩북이 90권, 중국에 관한 책 80권, 취재 노트가 20권입니다.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지금까지 그가 중국을 찾은 건 모두 여덟 번입니다.  2011년엔 한 달 일정으로 ‘정글만리’의 주무대인 베이징, 상하이, 난징, 시안 등을 두루 둘러봤다고 합니다.

이런 방대한 정보 덕분에 소설에는 작가가 조사한 내용과 하고 싶은 말이 넘칩니다. 알려주고 싶은 정보가 너무 넘치다보니 결과적으로 소설적 재미나 완결성은 포기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모든 상황과 등장인물들은 작가 조정래의 스피커일 뿐입니다. 일본 비즈니스맨들의 이름을 이토, 도요토미, 이시하라 라고 한 것도 일본에 대한 대중영합적인 편협함을 보이는 것 같아 불편했습니다. 모든 것을 경제 문제화하는 작가의 생각도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정글만리’가 8주씩이나 베스트셀러 1위를 한 것은  대중들에게 필요한 뭔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소설은 현재의 세계정세와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미래를 위한 나름의 전망과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전도 없이 나라와 정치를 주도하거나 당선 후에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전망 없는 허접한 정치현실도 이런 소설에 열광하는 배경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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