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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열풍을 몰고 온 ‘삼국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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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삼국지 강의, 삼국지 강의2, 김영사  


이중톈 교수의 ‘삼국지 강의’는 중국 CCTV의 ‘백가강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묶은 책입니다. 쉽고 재밌으면서도 깊이 있는 전문성과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한 강의는 중국에 삼국지 광풍을 일으켰고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이 왜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지 역사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형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두툼한 책 두 권이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들게 만드는 마력을 지녔습니다. 이중톈의 강의를 약간의 해석과 더불어 맛보기로 보여드립니다.   

제갈량은 중국의 민간에서 거의 신처럼 추앙받는 인물이지만 과장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공성계도 믿을 수 없고, 신야에 불을 지른 이야기나 풀배로 화살을 구한 이야기도 지어낸 것이고 맹획의 칠종칠금도 과대포장입니다. 동풍을 부른 것도 주유를 화나게 해서 설득한 이야기들도 거짓입니다. 실제의 제갈량은 걸출한 정치가이자 외교가이지만 신묘한 계책이 뛰어난 군사전략가는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제갈량을 위한 소설인 나관중의 ‘삼국연의’를 통해 알고 있기 때문에 생긴 오해들일 것입니다. 중국은 물론 한국에도 이미 ‘삼국연의’의 역사적 오류를 지적하는 많은 책들이 있습니다. 이중톈 역시 ‘삼국연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소설이 갖는 심미성이나 정신, 의도 등의 장점은 존중하는 태도를 취합니다. 

하지만 소설이 아닌 역사서들도 대개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고, 보는 각도에 따라 편견에 빠지기도 쉽습니다. 예를 들어 제갈량이 속세에 나온 것에 대해 ‘삼고초려’와 ‘제갈량의 자천’이라는 두 가지 설명이 있습니다. 적벽에서의 화공도 황개가 거짓으로 항복하여 불을 질렀다는 것과 조조가 전함을 불태우고 스스로 후퇴했다는 두 가지 기록이 존재합니다. 

이중톈은 역사적 사건과 역사 속 인물은 세 가지의 이미지를 갖는다고 얘기합니다. 첫 번째는 정사에 기록된 ‘역사상의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역사상의 이미지’는 역사의 진상과는 같지 않습니다. 역사에 진상은 있지만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기록이나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늘 논쟁거리가 됩니다. 

두 번째는 소설과 희극 속의 ‘문학상의 이미지’입니다. 소설 ‘삼국연의’와 연극 ‘삼국희’등 문학가들이 구성한 이미지입니다. 세 번째는 일반 민중들의 마음속에 있는 ‘민간의 이미지’입니다. 각종 민간 전설, 민간 풍속, 민간 신앙 등과 우리들 개개인이 갖는 마음속의 이미지입니다. 이런 이미지들이 모여 ‘사람들이 다니다 보면 길이 되는 것’처럼 어떤 이미지들을 형성합니다.

문학상의 이미지와 민간의 이미지 심지어는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해도 사람들에게 교훈과 이점을 줄 수 있습니다. 제갈량의 신격화처럼 하나의 이미지가 형성되고 전승된다는 것은 그 이미지에 나름의 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중톈이 하려고 하는 강의는 이런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역사의 본래 얼굴이 무엇인지 ‘환원’하고, 세 가지 이미지의 차이점을 ‘비교’해서 그 변화의 원인을 ‘분석’해서 독자들이 평가하며 삼국지를 읽어나갈 수 있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중톈의 ‘삼국지 강의’는 진수의 ‘삼국지’, 범엽의 ‘후한서’, 사마광의 ‘자치통감’ 등 정사에 근거해 역사를 재구성합니다. 여기에 다양한 이설을 소개하고 있는 방대한 배송지주를 참고자료로 활용합니다. 또한 역대로 ‘삼국지’를 연구한 수많은 학자들의 견해를 두루 수용하여 비교합니다. 무엇보다 시대의 흐름과 시대정신과 이를 담당한 개인과 정치세력에 대한 분석을 통해 역사와 현실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줍니다. 

조조에 대한 역사의 평가는 간신, 간웅, 영웅 등 분분하지만 조조가 난세의 영웅이 된 것은 동시대의 효웅들인 동탁, 원소, 원술 등에 비해 뛰어난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천자를 받들고, 농업을 중시하고, 군수물자를 비축하는 정치, 경제, 군사전략을 시행합니다. 조조가 처음 근거지와 전투부대를 가진 후에 폈던 정책이 획기적인 경제, 군사전략인 둔전제입니다. 평시에는 일을 하고 위급시에는 전쟁을 하는 군민합일의 새로운 사회와 군대입니다.  

조조는 천자를 자신의 근거지인 허헌으로 천도시켜 시대적 대의명분을 자기 것으로 만듭니다. 조조는 황실을 보좌하는 영웅이 되고,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지위를 얻고, 자신의 반대파를 모두 황제의 반대파로 만들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을 얻습니다. 국가의 봉록을 사용하여 우수한 인재들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서기 200년의 관도대전은 중국의 앞날을 결정짓는 삼국시기 3대 전투의 하나입니다. 당시 중국의 지배층이었던 사족세력을 대표하고 군사 지리적으로 우월했던 원소를 물리치고 조조가 승리합니다.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조조가 ‘정의라는 깃발과 정예 군대’ 즉, 대의명분과 핵심 인재 활용이라는 승리의 공식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원소는 인재를 모을 줄만 알았지 쓸 줄은 몰랐지만 조조는 모을 줄도 쓸 줄도 알았습니다. 

조조의 용인술은 감탄할 만합니다. 명분과 실리, 덕성과 재주, 청렴과 탐욕, 항복과 배반, 대소 관계 등의 판단에서 놀랍게 균형 잡힌 태도를 보여줍니다. 조조는 전쟁에서 지면 자신을 반성했고, 이기면 다른 사람에게 감사했습니다. 재능으로 인재를 발탁하고, 적재적소에 썼으며, 발탁한 인재를 믿고 의견을 잘 들었습니다. 법령을 엄격하게 집행하고 상벌을 분명히 구분했습니다. 

적을 포함하여 수많은 인재들이 조조를 찾아오고 난세에 가장 우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들입니다. 조조는 감정이 풍부하고 감성적이고 장난도 좋아했습니다. 조조의 천성은 간사하고 교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어떤 때 거짓말을 하고 어떤 때 진실을 얘기해야 하는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중톈은 조조를 ‘사랑스러운 간웅’이라고 결론 내립니다. 조조는 총명하면서도 어리석었고, 간사하고 교활하면서도 솔직하고 진실했고, 도량이 넓고 크면서도 한없이 좁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몇 개의 얼굴을 가진 모습이 조금도 모순되지 않고 한 인물 속에 체현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삼국시대의 인물 중 유비는 가장 수수께끼의 인물입니다. 세상에 나왔을 때 무일푼이었고, 근거지도 없고, 세력도 약해 늘 남에게 빌붙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는 곳마다 존중과 대접을 받았고, 심지어 조조는 유비와 자신만이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인재였던 제갈량이 심사숙고 끝에 유비를 주군으로 선택한 것도 유비에게 제왕의 자질과 조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비에게는 두 가지가 부족했습니다. 근거지와 정치 노선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준 사람이 제갈량입니다. 제갈량은 형주와 익주를 근거지로 삼아 조조, 손권과 더불어 천하를 삼분하고, 기회를 봐서 중원을 통일하여 한황실을 부흥하자는 정치노선을 제안합니다. 유명한 제갈량의 융중대책입니다.

그런데 제갈량의 융중대책이 나오기 7년 전 손권판 융중대책이 이미 있었습니다. 주창자는 오의 인재였던 노숙입니다. 노숙 역시 손권에게 조조가 너무 강하므로 일단 천하를 삼분하고 기회를 봐서 제업을 이루자고 제안합니다. 당시에는 유비가 남의 울타리에 있었으므로 노숙은 삼분의 주체를 손권, 조조와 형주의 유표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유사한 정치노선은 적벽대전에서 유비와 손권이 동맹을 맺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손권이 유비와 연합하여 조조에 대항하기로 한 결정은 제갈량의 외교술이 한 몫 하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손권집단의 이익을 위해서였습니다. 투항이나 패배나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정치적 득실을 계산해준 것은 노숙이었고, 승리할 수 있는지 군사적인 면을 계산해 준 것은 주유였습니다. 전쟁의 규모나 과정에 대한 역사적인 논란은 많지만 적벽대전의 결과 형주는 유비, 손권, 조조에 의해 삼등분됩니다. 형주의 절반을 얻은 유비는 이후 풍요한 지역인 익주까지 점령하여 천하를 삼분합니다.

오의 손권 진영은 주유 등 유비를 먼저 치고 덩치를 키워 조조에 대항하자는 파와 노숙 등 유비와 연합하여 먼저 조조에 대항하자는 파로 나뉩니다. 주유와 노숙이 죽은 후에는 유비를 치자는 파인 여몽이 주도하게 됩니다. 유비 세력이 커지자 손권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조조와 손을 잡고 형주를 책임지고 있는 관우를 공격합니다. 여몽과 육손의 치밀하고 절묘한 계책에 말려든 관우는 전사하고 형주는 오의 땅이 됩니다. 

유비는 1년 반 후인 221년 형주를 되찾기 위해 삼국시대 3대 전쟁의 하나인 이릉전쟁을 일으킵니다. 그 사이에 조조의 뒤를 이은 위의 조비가 황제를 칭하자 유비 역시 황제를 칭합니다. 손권 역시 조비로 부터 오왕의 칭호를 받고 독립 왕국의 국왕(칭제한 것은 229년)이 됩니다. 공식적으로 위 촉 오 삼국이 형성된 것입니다. 유비는 이릉 전쟁에서 참패하고 얼마 뒤 병으로 죽습니다.

유비 사후 황제 자리는 아들 유선에게 계승되지만 모든 실질적인 권한은 승상인 제갈량이 갖는 ‘제갈량의 시대’가 됩니다. 제갈량의 정치적 이상은 한 왕조의 부흥과 의법치국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그는 수차례의 북벌을 시도하지만 객관적인 정세와 조건 때문에 실패합니다. 의법치국에 따라 공정하고 깨끗한 국가를 만들기는 했지만 권문세가인 사족지주계급의 이익과는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조, 유비, 손권, 제갈량의 공통점은 뛰어난 용인술입니다. ‘조이지(操以智), 권이정(權以情), 비이의(備以義), 양이법(亮以法)’이 이들 용인술의 특징입니다. 조조는 지혜, 손권은 정, 유비는 의리, 제갈량은 법으로 사람을 썼다는 뜻입니다. 조조와 손권의 장점들은 정권 전반기 시절에 발휘된 것들로 후반기로 가면 의심이 많아지면서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한 대의 평민은 사농공상으로 나뉘었습니다. 최고의 평민인 사인(士人)은 글을 읽고 관리가 되는 자였고, 한 가문을 이루면 사족(士族), 대대로 이어지면 세족(世族)이라 했습니다. 명문사족은 귀족은 아니었지만 서족(보통 평민)도 아니었습니다. 관직 세습은 아니지만 벼슬길은 독점할 수 있는 ‘반세습의 준귀족’이었습니다. 그런데 위, 촉, 오는 모두 사족 출신이 아닌 인물들이 건국한 나라이고 사족지주계급의 정권을 만들 뜻도 없었습니다. 

조조의 이상은 ‘비사족정권’ 즉 ‘법가(法家) 서족의 정권’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제갈량과 유사합니다!) 법치를 중시했고, 가문이 아니라 능력만으로 등용한다는 원칙을 확고히 했습니다. 하지만 천자를 모시고 있던 조조에게는 일정하게 사족이 필요했고, 사족들 역시 천자를 업고 있는 조조가 필요했습니다. 조조가 끝내 칭제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런 사족들과의 복잡한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조비는 조조의 이상과 달리 사족들에게 관리 독점권을 주는 ‘구품중정제’를 받아들이는 타협책으로 황제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위나라의 실질적인 주체가 사족지주계급이 된다는 뜻이므로 사족이 아닌 조위정권은 멸망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하게 됩니다. 

위 촉 오는 모두 비사족 정권이었습니다. 촉과 오의 사족계급 입장에서는 구품중정제를 실시하는 위나라가 훨씬 좋고, 한나라의 부흥을 원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위는 사족을 방치했고, 오는 적당히 타협했고, 촉은 끝까지 충돌했습니다. 따라서 촉이 가장 먼저 멸망(263년)했고, 그다음이 위(265년), 타협한 오는 조금 더 연명했습니다(280년). 새로 들어선 사마가문의 진나라는 철저한 사족지주계급의 정권입니다.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중앙집권의 군현제국가를 수립합니다. 황족이나 귀족인 세습 영주계급이 지배하는 봉건제를 대체하여 이때부터 지주계급이 지배세력이 됩니다. 진한은 영주에서 변한 귀족지주, 위진남북조 시대에는 사족지주, 수부터 마지막 청까지는 서족지주가 통치계급이 됩니다. 서족지주가 지배계급이 된 것은 세습 제도를 반대하는 제국시대의 요구에 적합했기 때문입니다. 수문제는 반(半)세습제도인 구품중정제를 폐지하고 과거제도를 정착시킵니다. 

통치계급이 귀족에서 서족으로 바뀌는 필연적인 과정에서 사족지주계급은 과도적인 징검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 후의 위진남북조시대입니다. 삼국시대는 한말에 이미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한 사족지주계급이 국가 권력의 공백 상황에서 조조, 유비, 손권 등 비사족 군벌세력에게 능력과 군사력의 열세 때문에 일시적으로 권력을 내 주었다가 되찾는 과정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조조, 유비, 제갈량은 시대를 너무 앞서서 서족지배시대를 열려다 실패했던 인물들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개인의 기억이나 역사 이야기는 인간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진화했습니다. 기억도 역사도 늘 현재적 의미에서 재구성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이야기가 압축적으로 전개된 삼국지는 역사이야기의 보고이며 오늘 우리를 위한 자산입니다. 

대한민국판 융중대책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진보정당들은 끊임없이 3국정립을 위해 노력해 왔지만 현재까지의 결과는 실패입니다. 최근에는 안철수세력이 3국정립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과연 안철수는 대한민국의 유비가 될 수 있을까요? ‘삼국지 강의’에는 정치지도자와 정치세력이 참고할 만한 많은 지혜가 들어 있습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주는 의미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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