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치신문의 '전민용의 북카페'와 동시에 게재되는 북에세이입니다.


이야기의 기원

– 진화론으로 읽는 인간과 예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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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기원, 브라이언 보이드, 휴머니스트

 


여야 할 것 없이 ‘민생정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이라는 말은 상식의 영역입니다. 따라서 절대빈곤이 제거된 후에야 인간은 문화나 예술을 찾는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브라이언 보이드의 ‘이야기의 기원’은 인간의 생존에 먹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문화와 예술이라는 것을 진화론에 근거해서 주장하는 책입니다. 문화나 예술이 인간을 더 잘 먹고 잘 살게 해주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습니다.

 

끔찍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티타임의 관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몇 번이나 우려낸 묽은 찻물이지만 하루 한 번씩 차가 배급되었습니다. 물이 너무 귀했으므로 일부는 그 차를 단숨에 마셔버렸고, 일부는 반만 마시고 반은 얼굴이나 손발을 씻는데 사용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생존율은 후자가 더 높았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최소한의 인간적인 체모를 지키려고 한 사람이 생존할 확률이 높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문화적 행동은 인간의 생존에 도움을 줍니다. 문화나 예술은 ‘장식용’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인간의 지능이 진화의 산물이듯이 인간의 문화나 예술 역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는 예술은 왜 생겨났는지, 인간은 왜 이야기 듣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지, 왜 그 이야기를 즉각 이해할 수 있는지, 왜 이야기가 지금 같은 형태가 되었는지, 이야기가 인간 본성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하고 그 답을 추적해갑니다.

 

예술은 놀이에서 진화했습니다. 모든 포유류, 대부분의 조류, 일부 파충류와 어류, 문어 같은 무척추동물까지 놀이를 합니다. 놀이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포식과 부상의 위험이 있지만 이렇듯 광범위하게 퍼진 것은 생존과 번식에 큰 이익을 주기 때문입니다. 동물은 놀이를 통해 운동과 사회적 기술을 배웁니다. 신경과 근육의 발달과 상황 대처 능력과 잠재력 등을 발달시킵니다.

 

저자는 놀이에서 발달한 예술 역시 인간의 진화적 적응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예술에 흥미를 느끼고 에너지를 아끼는 정신적 휴식보다 정반대인 정신적 자극을 선택하곤 합니다. 인간은 예술을 통해 인간으로서 훈련되고, 사회적 지위를 높이고, 공동체의 조화와 협력을 확대하고, 개인적 사회적 창조성을 키웁니다.

 

협력은 생존과 번식에 큰 이득을 주므로 여러 종에서 진화시켜왔습니다. 인간은 협력을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은 종입니다. 인간은 상리공생, 포괄적 적응, 적극적 협력, 감정 이입, 호혜적 이타주의 등 다양한 협력 방식을 진화해 왔습니다. 이런 협력을 이끌어 내도록 진화한 감정이 신뢰, 감사, 용서, 관대함, 동정심, 염치, 공정함, 헌신성, 수치, 죄의식, 원한, 분노, 보복, 자기파괴적 복수 등입니다. 이런 감정과 협력을 문화적으로 보완하는 것이 사회적 감시와 징벌, 비징벌자의 징벌 등입니다.

 

예술과 이야기는 이런 협력의 과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 특히 이야기는 사실이든 거짓이든 인간의 관심을 끌고, 상황을 익숙하게 만들고 더 쉽고 빠르게 상황을 처리하는 능력을 길러줍니다. 허구의 이야기는 지금 여기를 넘어 사고하는 능력을 발전시켜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판단 능력을 높여줍니다. 이야기 속에 인간의 사회적 도덕적 감정과 가치를 끌어들여 배신을 억제하고 협력을 권장하는 문화를 만듭니다.

 

물론 사회가 커지고 다양화되고 분업이 확산되면서 협력의 문제를 해결하는 다양한 제도적 문화적 형식이 발전되었습니다. 예술은 더 전문화되고 탈종교화되었습니다. 과거에 사회적 협력에 한 역할을 했던 종교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근대과학의 발전 역시 큰 변화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예술과 이야기의 힘은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책의 절반을 고대와 현대의 대표적인 이야기인 ‘오디세이아’와 ‘호턴이 듣고 있어!’를 통해 이야기 기원의 구체적인 사례 분석을 시도합니다. 문학을 인간 본성과 사고에 관한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해부해보는 역작입니다. 문학을 좋아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사회적 ‘협력’이라고 생각합니다. 협력의 이득이 너무도 크고 인간의 본성이나 진화의 방향에도 맞는데도 우리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가치입니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을 싸움만 한다고 욕하는 것은 잘못 조장된 정치 혐오주의에 기인한 바도 있지만 싸움보다는 협력이 우리 사회에 더 큰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상식도 작동하고 있을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 자본과 노동, 자본과 자본, 노동과 노동, 수도권과 지방, 남성과 여성 등의 대립 관계를 협력관계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진정한 협력이 가능하려면 협력을 촉진하는 사회적 기반과 문화가 가능해야 합니다. 특히 자기 집단만이 옳다는 진영 논리를 극복하고, 불공정한 기득권을 타파하고, 사회적 격차를 줄여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과정에 꼭 필요한 예술과 이야기의 역할을 고민해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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