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공동기획한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 특강입니다.

 

"상생적 자유주의란?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24>

     
     
경제민주화

 

요즘 경제민주화가 시대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내용이 애매하고 추상적인 이 말의 구체적 내용을 우리나라 헌법 119조 2항은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즉, 대기업과 중소영세 기업 간의 균형발전, 산업간 균형발전, 공정한 소득분배, 재벌의 횡포 방지, 계층 간 조화와 상생이 경제민주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70년대에 경제민주화란 말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에 주로 노조의 경영 참여라는 의미로 쓰였던 것과 비교하면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여 내용이 훨씬 더 풍부해진 것은 반가운 일이다.

 

1987년 헌법 개정에서 신설된 후 20여 년 동안이나 잊혀 있던 이 말이 근래 우리 사회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국민 대다수의 불만이 임계점에 이른 것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지난 [칼럼20]의 끝 부분에서 본 바와 같이, 서양에서 16세기에 자본주의가 등장한 이후 자본주의국가의 경제정책은 자유방임주의와 개입주의를 교대하여 왔다. 대략 16세기에서 18세기까지는 전형적인 개입주의인 중상주의가, 19세기에는 자유방임주의가, 20세기에 들어 와서 1970년대까지는 다시 개입주의인 신중상주의(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케인지안들의 개입주의)가, 1980년대부터는 다시 자유방임주의인 신자유주의가 지배적 조류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장은 시장의 실패라는 문제를, 정부는 정부의 실패라는 문제를 갖고 있으므로 개입주의와 자유방임주의 그 어느 것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하나의 주의가 상당 기간 지속되면 자체의 문제가 누적되어 이를 해소하기 위하여 그 반대의 주의가 등장하는 역사가 되풀이되어 왔다. 이제 신자유주의도 세계적으로 막을 내리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자유방임주의 정책하에서 대중의 빈곤화와 경제의 불안정이라는 자본주의의 실패가 확대되어 이에 대한 대중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래 보이고 있는 경제민주화에 대한 대중의 요구도 이에 다름이 아니다. 지난 20년간 우리나라는 시장의 실패로 인한 대중의 빈곤화와 사회의 불안이 세계에서 최악의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다. 자살율과 이혼율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고 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생적 자유주의

 

현재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막을 내리고 그간 신자유주의의 자유방임 정책으로 인하여 누적된 시장의 실패를 시정하는 개입주의가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새로 등장할 개입주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상생적 자유주의'가 되어야 할 것 같다.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의 축소 지향 : 사회적·경제적 차별의 철폐가 사회의 발전의 핵심 내용이므로 가능한 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의 축소를 지향한다.(칼럼 4 참조, "평등에 관하여")

 

경제적 자유주의의 배척과 정치적 자유주의의 견지 : 경제적 자유주의는 배척하지만 보편타당성을 지니는 정치적 자유주의는 그대로 수용한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의 실패를 방조하는 자유방임의 경제정책을 지지하며, 정치적 자유주의는, 인식과 도덕에서의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만인평등, 자유와 인권, 개인주의, 독립심과 자기책임, 사상과 비판의 자유, 관용을 기본원리로 한다(칼럼 9 참조,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상생의 원리로 자유주의 보완 :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원리인 개인주의로는, 빈부격차, 노사갈등, 독과점, 환경훼손, 인간소외 등과 같이 개인 간의 이해상충이 발생하는 '공동의 갈등문제'에 대하여 해결방향을 전혀 제시하지 못하므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상생의 원리로 보완되어야 한다. 상생의 원리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생명 및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와 똑같이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이들과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아감을 말한다.(칼럼 22 참조, "상생의 원리")

 

수정자본주의의 채택 : 생산의 효율성과 개인 자유를 보장하는 자본주의경제를 기본으로 삼지만 자유방임의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적절하고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인정한다.

 

국가의 실패 방지 : 2차대전 이후의 서방 복지국가의 경험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국가의 개입은 필연적으로 국가의 실패를 발생시키므로, 자본주의의 실패만이 아니라 국가의 실패를 방지하는 사회적 장치도 마련하여야 한다.

 

재벌의 횡포 방지 :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와 공공선을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국가권력과 재벌이며, 민주주의의 발달과 함께 사회 권력이 국가권력에서 재벌로 이동하고 있으므로, 재벌에 대한 사회적 견제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

 

진보주의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 인간사회는 장기적으로 진보한다고 믿는다.
⦁ 경제적·사회적 차별의 축소가 사회발전의 핵심이라고 본다.
⦁ 인간의 이성을 이용한 의식적인 개혁의 유용성과 필요성을 믿는다.
⦁ 입법과정을 통한 평화적이며 점진적인 개혁인 개량주의를 지지한다.

 

상생적 자유주의는 위의 넷을 모두 지지하는 자유주의이므로 상생적 자유주의를 '진보적 자유주의'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상생적 자유주의는 상생의 원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는 역동감이 있다는 점에서 각기 장점이 있다.

 

상생적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관용이라는 보수주의의 가치와 함께 평등과 진보라는 진보주의의 가치를 모두 추구하므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상생의 원리로 조화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순진한 복지국가와 합리적 복지국가

 

이러한 진보적 자유주의를 실현하는 현실 수단이 '합리적 복지국가'이다. 합리적 복지국가는 다음과 같은 사회제도와 문화를 구비한 복지국가를 말한다.

 

① 1인1표의 공정한 보통선거, 집권경쟁이 가능한 복수의 정당이 존재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② 경쟁적 시장경제의 확립과 정부의 적절한 경제 개입(독과점 규제, 환경 규제 등)
③ 합리적인 공공복지제도
④ 이익단체로부터 독립적인 입법부
⑤ 정치권력과 재벌로부터 독립적인 언론과 사법부
⑥ 국가의 실패를 예방하는 정부 감시 장치
⑦ 국민들의 높은 윤리의식 및 시민 의식

 

위에서 ①은 정치적 자유주의와 재벌의 횡포 방지를 위해, ②는 시장의 효율성 실현과 시장의 실패의 해결을 위해, ③은 빈곤문제의 해결을 위해, ④, ⑤와 ⑥은 국가의 실패 및 재벌의 횡포를 예방하기 위해, ⑦은 모든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면 사람들은 돈의 노예로부터 해방되고 모든 개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게 되어 우리 사회는 천민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히 국민들의 높은 윤리의식은 천박한 천민자본주의로부터의 극복을 위해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합리적 복지국가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수정자본주의이다. 민주주의에 반드시 필요한 정치적 자유가 사회주의경제에서는 어렵기 때문이다. 밀이 130년 전에 이미 예측한 대로 사회주의경제에서는 노동의 국가관리가 불가피하므로 개인 자유가 존재하기 힘들고 따라서 민주주의가 실현되기 힘들다.

 

앞으로 우리가 추구할 복지국가는 과거의 순진한 복지국가와 질적으로 다른 합리적 복지국가이다. 복지국가는 순진한 복지국가와 합리적 복지국가의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순진한 복지국가란 19세기 말에서 1970년대까지의 과거의 복지국가처럼 국가의 실패와 재벌의 횡포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한 복지국가를 말한다. 합리적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실패만이 아니라 국가의 실패와 재벌의 횡포에 대해서도 강력한 예방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복지국가를 말한다.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기 이전의 개입주의자들(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영미의 사회적 자유주의자와 2차대전 후의 구미의 복지국가 주장자들)은 시장은 불완전하지만 정부는 완전하다고 보았다. 즉 이들은 정부는 공평무사하고 전지전능한 추상적 존재라고 암묵적으로 가정하고 정부에게 많은 권한을 주었다. 그러나 현실에 이런 정부는 어디에도 없다. 복지국가에서 비대해진 정부의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전지전능하고 공평무사한 추상적 존재인 정부가 아니라 이기적이며 능력과 정보도 턱없이 부족한 정치인과 관료라는 불완전한 인간들이다. 개입주의자들은 민주주의를 과신하였기 때문에 정부를 과신하였다. 확실히 근대 민주국가 정부에서는 과거 전제 군주 국가 정부에 비하여 정부의 실패가 많이 감소하였다.

 

그러나 선진 민주국가에서도 정치인과 관료들은 윤리와 능력과 정보가 모두 부족한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민주국가에서도 정치인과 관료들은 공공선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민주국가에서도 정부의 비효율과 비리는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2차대전 이후 순진한 복지국가에서 국가의 실패가 점차 증대하였고 이에 대한 반발로 신자유주의가 등장하였던 것이다. 국가의 실패를 지적한 것은 분명히 신자유주의자들의 공로이다. 특히 수십 년 간의 군사독재 시절의 관치경제가 아직도 뿌리 깊게 남아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반면에 신자유주의의 시장자유화정책은 재벌을 국가도 제어하기 힘든 거대한 공룡으로 만들었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재벌의 영향력과 횡포는 세계적으로 과거보다 훨씬 더 커졌다. 행정부, 의회, 사법부, 언론계, 학계, 등 사회의 모든 중요 부문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이용하여 재벌은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고 개인의 자유와 공공선을 훼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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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복지국가는 자본주의의 실패만이 아니라 국가의 실패와 재벌의 횡포를 모두 예방하는 합리적 복지국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 공정하고 독립적인 언론과 시민단체의 셋이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1인1표의 평등한 선거로 정권을 선출하고 주요 국가정책을 결정하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정부의 비리와 비효율, 그리고 재벌의 영향력을 단절시키고 대다수 국민들의 진정한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언론은 정치인과 관료 및 재벌의 비리를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에 시정하는 데에 가장 유효할 것이다. 시장에 맡기라는 것은 재벌에게 맡기라는 것이고, 정부에 맡기라는 것은 부패한 정치인과 관료에게 맡기라는 것이다. 정부도 재벌도 아닌 제3의 주체인 시민단체가 정부와 재벌을 감시하고 견제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으로 나의 '상생적 자유주의 시리즈'를 마친다. 내가 보아도 천민자본주의를 극복하자는 문제 제기에 비해 결론부문 내용이 빈약하다. 나의 내공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은 탓이다. 내공을 더 길러야겠다. 재미없는 글을 읽어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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