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공동기획한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 특강입니다.

"상생의 원리" (프레시안 2012.1.11)

조회 수 3159 추천 수 0 2012.01.12 10:15:00

 

상생의 원리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22>

     

 

지난달 23일 자 "자유주의 비판"에서 자유주의가 인간의 사회성과 자본주의에서의 인간소외를 간과하고 있음을 보았다. 이 중 자본주의에서의 인간소외의 문제는 지난 칼럼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오늘은 인간의 사회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

 

모든 개인은 개인성(개체성)과 더불어 사회성이라는 또 하나의 측면을 갖고 있다. 모든 개인은 개인으로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개인성이란 세상의 그 누구와도 독립된 개체로서의 개인의 존재성을 말한다. 개인성은 그 누구도 대신하여 줄 수 없다. 나의 생명과 육체, 인격, 감정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직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의 모든 생활에서 나는 내가 스스로 지키는 것이 원칙이다. 개인주의는 바로 이런 개인의 개체성을 중시한 입장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동시에 사회성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도 사회이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모든 개인은 누구나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회가 있기 때문에 나의 생활이 가능하며 또한 내가 살아가는 보람과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이런 인간의 사회성을 고려하면 개인주의의 한계는 분명하다. 개인주의는 인간의 사회성을 간과하고 있다.

 

공동의 문제

 

사회문제는 개인이 결정(선택)하는 문제와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으로 결정(선택)해야만 하는 문제의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직업이나 종교의 선택과 같이 혼자 결정하는 문제이며, 후자는 개인이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후자를 경제학에서 사회적 선택(집단적 선택 혹은 공공선택)의 문제라고 부른다. 사회적 선택의 대상이 되는 문제들을 공동의 문제라고 부르자. 종교의 선택과 같은 개인적으로 결정할 문제도 사회적 문제이므로 이런 개인적으로 결정할 사회적 문제와 구별하기 위하여 사회적 선택의 문제를 공동의 문제라고 부르자.

 

시대나 체제에 상관없이 모든 문명사회가 당면하는 공동의 문제들로서, 사회질서의 유지(국방, 치안, 사법), 공공시설(교통시설, 통신시설, 상하수도 시설 등)의 건설, 교육 공급, 계급갈등 완화, 최소한의 사회보장 등의 문제가 있다. 과거의 봉건 경제나 현대의 사회주의 경제에서는 심각하게 나타나지 않았으나 자본주의 경제에서 특히 심각하게 등장하는 문제인 자본주의의 실패(빈부격차, 불황과 실업, 독점, 환경파괴, 윤리의 타락, 인간소외 등)에 대처하는 것도 공동의 문제이다. 현재 신자유주의의 여파로 그동안 자본주의의 실패를 어느 정도 완화하여 오던 정부의 기능이 축소됨으로써 자본주의의 실패가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세계적으로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다.

 

공동의 갈등 문제

 

공동의 문제는 두 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개인 간에 이해 상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주의로 해결이 가능한 경우이고, 둘은 개인 간에 이해 상충이 존재하여 개인주의로 해결할 수 없는 경우이다. 공동의 문제라도 이의 해결이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된다면 개인 간에 이해 상충이 발생하지 않을 것이므로 개인주의의 입장에서도 이의 해결이 가능하다. 질서의 유지(국방, 사법, 치안), 필수적인 공공시설의 건설, 불황의 해결 등의 문제가 그러하다.

 

이런 문제의 해결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득이 되므로 모두가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개인주의 관점에 서더라도 이의 해결에 전원 합의하는 것이, 현실에서 이의 실행을 위한 경비의 분담이라는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적어도 원칙적 차원에서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구성원 간에 이해 상충이 존재하는 공동의 문제에 대해서 개인주의는 현실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원칙적 차원에서도 해결 방향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빈부격차, 노사갈등, 독과점, 환경훼손, 인간소외, 약소국 침탈, 전쟁 등의 문제들이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이처럼 개인 간에 이해 상충이 존재하여 개인주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공동의 문제를 공동의 갈등 문제라고 부르자. 이해 상충이 발생하는 공동의 갈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주의의 자유의 원리가 아닌 다른 원리가 필요한데 상생의 원리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공생의 망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에 입각하고 있으므로 인간생활에서의 공생(共生)이라는 측면을 간과한다. 공생은 앞서 고찰하였던 인간의 사회성 내지 인간 삶의 공동체적 측면을 보다 확대한 개념이다.

 

공간적으로 보면 우리들은 우주의 허공에서 나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친척, 친지, 온 국민, 나아가서 모든 인류 및 동식물들을 비롯한 자연과 함께 우주에서 살아가고 있다. 시간적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선조와 후손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자연은 나의 선조들이 수고하여 내게 물려준 유산이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나보다 앞서 살았던 분들이 수천 년 동안 애써 축적하여 내게 물려 준 것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우리가 남긴 것들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살아간다. 공간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나는 무수한 다른 존재들과 함께 공생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모든 사람들은 서로 공생의 망(網)으로 연결되어 있다.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들은 모두가 분업과 협업의 고리로 직ㆍ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쌀, 옷, 컴퓨터, 주택, 영화 등 내가 먹고 입고 소비하는 재화들(물자와 서비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내가 먹는 쌀의 생산과 유통에는, 농부, 정미소 직원, 트럭 운전수, 쌀 창고 직원, 쌀 도매 상인, 농약과 비료 회사 사람들 등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재화의 수출과 수입을 통해 분업과 협업은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전 세계 인류들과 나는 공생하며 살아가고 있다. 비단 경제적 거래에서만이 아니다.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나는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과 서로 얽혀서 살아가고 있다. 미국 대통령선거는 나의 일상생활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그리스 가수의 노래는 나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가 삶의 기쁨과 보람을 얻는 것도 공생 덕분이다. 자신 말고 그 어떤 사람이나 생명체 도, 존재도 없는 세상에서 혼자 산다면 우리는 아무 기쁨과 보람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무슨 보람과 낙으로 살아가는가? 모두가 돈, 명예와 권세를 추구하지만, 돈도, 명예도, 권세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것이지, 혼자만 사는 세상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돈, 명예, 권세를 허망하게 보는 소수의 사람들은, 소박한 삶에서 낙을 찾지만, 이들이 소박한 삶에서 낙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과 동식물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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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삶의 보람과 낙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힘은 정(情)일 것이다. 사랑이란 말보다 정이란 말이 더 따뜻하고, 소박하고, 맛깔스럽고, 여운이 있는 우리말인 것 같다. 아무리 부귀영화가 넘치더라도, 정을 나눌 가족이나 친지가 없는 사람의 삶은 쓸쓸하고 허망한 반면, 아무리 가난하고 권세가 없더라도 정을 나눌 가족과 친지가 있는 사람은 기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사람은 정으로 산다. 정붙일 사람이 없으면, 동물이나 식물에게서라도 정붙일 상대를 찾아야 하고, 그것도 못하는 사람은 종당에 외로움에 못 이겨 생의 의욕도, 사람다움도 잃게 된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이 가능한 것도, 우리가 생의 보람과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우리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존재와 공생하는 덕분이다. 이처럼 공생하는 모든 존재는 서로 도우면서 살고 있다. 즉, 상생하고 있다.

 

상생의 원리

 

상생(相生)의 원리란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생명 및 모든 존재의 소중함을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와 똑같이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면서 이들과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아감을 말한다. 공생하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서로 아끼면서 돕고 사는 것을 상생이라고 부르자.

 

원래 상생이란, 공자가 정리한 서경(書經)에 나오는 오행설(五行說)이 가리키는 현상, 즉, 쇠는 물을, 물은 나무를, 나무는 불을, 불은 흙을, 흙은 다시 쇠를 낳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상극(相剋)의 반대되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요즘 통용되는 의미로 사용한다.

 

내가 나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존재도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소중하며, 다른 존재가 있으므로 비로소 나의 존재가 가능하므로 나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도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원리에서 우리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개인성(개체성)과 사회성(공동체성)의 두 가지 측면을 갖고 있는데, 이 중 개인성에서의 원리를 자유라고 한다면, 사회성에서의 원리를 상생이라고 하겠다. 상생의 원리는 전체주의와 전연 다르다. 전체주의는 국가나 집단을 개인보다 우선시하여 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하지만, 상생의 원리는 구체적인 인간인 개인만이 궁극적인 가치의 원천이라고 보고 개인의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하며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반대한다는 점에서는 개인주의와 똑같다.

 

상생의 원리는, 내가 소중한 것과 같이, 다른 사람, 생명체 및 존재도 모두 소중함을 인정하고 서로 도와야 함을 말할 뿐이다. 이 상생의 원리는 자유주의의 관용의 원리와 공동체주의의 관점을 더 적극적으로 확대한 것이다.

 

이러한 상생의 원리로 보완하여 개인주의의 한계를 극복한 자유주의를 상생적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기본원리(만인평등, 인본주의, 개인 기본권의 존중, 사상과 표현의 자유, 행동과 집회/결사의 자유, 관용, 자기 책임의 원칙 등)의 확립,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살리면서 적절한 정부 개입을 통하여 시장의 실패를 시정하는 복지국가 형 수정 자본주의, 상생의 원리의 실천을 통한 공동의 갈등 문제(분배갈등, 인간소외, 윤리 타락, 환경 파괴, 국제분쟁 등)의 해결, 그리고 정부의 실패를 예방하기 위한 적절한 장치가 상생적 자유주의의 주요 내용일 것이다. 상생적 자유주의가 새 시대의 새 패러다임이 될 것을 기대한다. 
     
/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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