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과 공동기획한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 특강입니다.

"자유주의 비판" (프레시안 2011.12.23)

조회 수 3319 추천 수 0 2011.12.26 11:54:33



자유주의 비판

[이근식의 '상생적 자유주의']<21>

 

 

자유주의는 만인평등과 개인의 사회적 자유의 보장을 추구한다. 이 원리를 기초로 하여 근대 서양사회는 불과 300∼400년 정도의 짧은 세월 동안에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자본주의라는 근대 사회질서를 건설하여, 그 이전 수 천 년 간 인류가 달성했던 것보다도 더 큰 문명의 발전을 이룩해 왔다. 이는 비단 경제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문화 등 사회 전반에 걸쳐서 해당된다. 특히 만인평등이라는 자유주의 원리는 수 천 년 동안 강고하게 유지되어 오던 각종의 사회적 차별들을 크게 축소하였다. 현실에는 재산, 학력, 외모, 능력 등을 이유로 하는 사회적 차별들이 아직 많이 존재하고 있지만, 자유주의의 보급 덕분으로 적어도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인식이 상식으로 확고하게 뿌리를 내렸다. 만인평등의 사상이야말로 근대 사회를 전근대 사회와 구별 짓는 근대성의 핵심이다. 이처럼 자유주의는 대단한 힘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개인주의라는 자유주의의 또 하나의 원리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으며 이 한계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심각하고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자유주의의 개인주의로는 빈부격차와 빈곤, 인간소외, 윤리의 타락, 사회갈등, 자연파괴와 자원부족과 같은, 현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할 길을 찾기 힘들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또 다른 원리가 필요하다. 상생의 원리라고 그것이라고 생각된다. 앞으로 세 번에 걸쳐서 자유주의의 주된 한계는 개인주의라는 자유주의의 원리에서 비롯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생의 원리로 자유주의를 보완하여야 함을 고찰하고자 한다. 이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유주의에 대한 기존의 주요 비판들을 살펴보자.

 

자유주의와 궁극적 가치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으로서 우선 자유주의가 인간이 추구할 궁극의 가치를 제시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으로 하여금 가치상대주의나 허무주의에 빠져 허무와 나태 속에서 방황하게 한다는 비판을 들 수 있다. 자유란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므로, 자유주의는 인생의 목표를 제시하여 주지 않고 스스로 찾도록 개인의 자유에 맡길 뿐이다. 자유를 주체하지 못하여 방종, 나태 혹은 허무에 빠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보람 있는 삶을 위해서는 자유를 이용하여 추구할 목표가 있어야 하지만 자유 그 자체는 사람에게 추구할 목표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이 한계는 자유주의의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이 한계 덕분에 문명사회의 필수요건인 가치와 문화의 다원주의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부당한 피해를 입히지 않는 한, 다양하고 자유로운 가치관을 인정하는 다원주의는 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이 때문에 자유주의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인정하는 관용을 주요한 덕목으로 중시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것은 당연하므로, 롤즈(John Rawls)가 지적한 바와 같이, 다양한 가치관을 인정하는 다원주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평화롭게 같이 살아가는 민주사회의 필수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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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롤즈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목표와 가치관과 취향이 다른 것은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 하이에크(F.A.Hayek)의 말처럼, "위대한 사회에서는 개인들의 목표가 상이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상이하다는 이유 때문에 상이한 구성원들은 서로의 노력으로부터 이익을 얻는다." 사람들 간에 목표와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직업이 존재하고 그 덕분에 분업과 교환이 이루어져서 모든 사람이 자급자족으로 살 때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살 수 있다.

 

이런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 다양성이야말로 문화의 핵심이다. 인류문화가 발전하여 온 것은 사람과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여 왔기 때문이다. 문학, 미술, 음악, 연극 등 모 든 예술은 대개 자유로운 사회에서 발전하여 온 반면에 획일적인 생각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사회에서는 단조로움을 면치 못한다. 자유주의가 확립된 근대 이후 예술이 그 이전보다 훨씬 다채롭게 발전했다. 인생의 목표는 각자 스스로 자유롭게 찾는 것이 당연하다. 어떤 하나의 가치만이 강요되는 획일적인 사회는 삭막할 뿐만 아니라 정체와 퇴행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자유주의가 개인들에게 삶의 목표를 제시하여 주지 않는다는 것은 자유주의의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장점이다.

 

사회주의자들의 비판

 

자유주의에 대한 가장 거센 비판은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이다. 사회주의는 자유의 원리 대신에 평등의 원리를 주장하고 등장하였다. 만인평등의 원리는 자유주의의 기본원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은 형식적 평등에 불과하고 진정한 평등인 경제적 분배에서의 평등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에 대하여 자유주의자들은 흔히 기회의 평등이 진정한 평등이라고 자신들을 옹호하여 왔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기회의 평등은 옹색하다. 자유주의자들이 지지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기회의 평등이 진정한 기회의 평등이라고 보기 어렵다.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느냐에 따라서 각기 다른 출발선에서 경주를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단 사회주의자만이 아니라 양심적인 사람은 누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분배가 매우 불공평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주의를 비판하였던 밀(J. S. Mill)도 현 사회 질서는 경주에서 등수에 들지 못한 사람을 살해하는 야만적 경기와 다름없으며, 영국과 프랑스의 분배는 대부분 미개사회보다 더 야만적이라고, 자본주의 경제에서의 분배를 극렬하게 비판하였다.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합친 민주사회주의(혹은 사회민주주의)가 이상적인 사회질서라고 생각하는 양심적 인사들이 적지 않다. 사무엘슨과 더불어 현대 영미 경제학의 양 거두인 애로우(Kenneth Arrow)는 민주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사회 제도일 수 있음을 인정하였고, 롤즈(John Rawls)도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경쟁적 시장경제와 사회주의경제 모두에서 자신이 주장한 분배 정의가 실현 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왈쩌(Michael Walzer)도 민주사회주의가 적절한 사회체제라고 보았다.

 

그러나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는 불완전한 인간들이 실현할 수 없으며, 실현하더라도 유지하기도 힘든 이상이지 자본주의에 대한 현실적 대안은 아닌 것 같다. 붕괴된 소련과 동구의 사회주의 경제에서 본 바와 같이, 사회주의를 실현할 만큼 사람들의 윤리의식이 높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주의를 도입하면 마르크스가 기대하였던 지상낙원이 오는 것이 아니라, 140여 년 전에 일찍이 밀이 예측하였던 것처럼 생산성의 하락, 권력 투쟁, 권력에 따른 불공평한 분배, 개인 자유의 박탈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칼럼 14 "사회주의의 실패" 참조).

 

그러나 현실의 경제를 보면 사회주의적 요소가 모든 자본주의 국가에 상당히 존재한다. 경제 중에서 정부 부문이 바로 사회주의 부문이다. 사회주의 경제의 특징은 재산공유제와 중앙관리 당국의 사전 계획에 의한 경제운영이라는 두 가지인데,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정부부문은 이 두 가지 특징을 모두 갖고 있다. 정부재산은 공유재산이며, 정부의 모든 활동은 사전에 정부가 작성한 예산이라는 계획에 따라 운영되고 있다. 즉, 현실적으로 자본주의 국가도 민간부문만 자본주의 방식에 의하여 운영될 뿐, 정부부문은 사회주의 방식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2차대전 이후 빈부격차와 불황, 환경파괴, 공공재의 부족 등 시장의 실패를 치유하기 위하여, 정부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서 총 국민소득 중에서 정부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증가하여, 현재 서구는 40%가 넘고, 우리나라와 일본도 30%를 넘고 있다. 즉, 현대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은 100% 자본주의 국가는 아니며 상당한 정도로 사회주의 부문이 섞인 혼합경제(mixed economy) 내지 수정자본주의경제(modified capitalism)이다. 100% 완전한 사회주의 경제는 자본주의 경제의 대안이 될 수 없지만, 모든 나라에서 사회주의 경제는 부분적으로 현실에 존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비판은 현실 경제에서 상당히 받아들여지고 있다.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

 

자유주의에 대한 또 하나의 비판은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이다. 개인주의는 근대 자본주의 상공업자들의 세계관 내지 사회관인 데 비하여 공동체주의는 과거 자본주의 이전 공동체 시절의 세계관이라고 볼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본주의가 성립되기 이전에 사람들은 대개 마을이나 대가족과 같은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주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갔다. 이때에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단결과 협력이 생존과 생산에 필수적이었고,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일원으로 살아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공동체 윤리가 형성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공동체를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주의적 개별행동은 공동체의 운영과 안전을 위협하므로 비난받지 않을 수 없었다. 공동체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면서, 공동체주의 윤리도 자연적으로 개인주의 윤리로 대체되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보다는 자본가든 노동자든 각자 독립적인 개인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사회의 윤리인 반면 개인주의는 자본주의 상공업 사회의 윤리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자들의 비판을 잘 요약한 왈쩌에 의하면, 자유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자의 비판은 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자유주의의 개인주의로 인하여 근대사회에서 인간소외가 발생하고 있다는 관점이다. 젊은 시절의 마르크스가 이의 대표적인 예이다. 둘은, 근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맺는 유대에는 자유주의가 말하는 개인의 자발적인 선택에 의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가족과 같은 비자발적인(공동체적인) 유대도 존재하므로 개인주의적 입장에서만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왈쩌가 지적한 바와 같이, 이 두 가지의 비판은 논리적으로는 양립할 수 없다. 만일 첫 번째 비판의 주장대로, 현대 사회가 모두 개인주의 사회라면, 두 번째 비판이 주장하는 것과 같은 비자발적 유대는 현대사회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 두 가지의 비판은 모두 타당하다. 현대 사회에는 개인주의적인 자본주의 사회와 과거의 공동체적인 사회와 함께 섞여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주의자들의 개인주의에 대한 두 가지 비판 중 첫 번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소외를 지적하는 것이요, 두 번째 것은 인간의 사회성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 간의 유대란 인간의 사회성으로 확대하여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개인주의에 대한 공동체주의의 비판의 핵심은 자유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소외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것과 인간의 사회성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 두 가지이다. 이 중 사회성의 문제는 다음 칼럼에서 고찰하기로 하고 먼저 공동체주의자들이 지적하는 인간 소외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자신의 행복과 이익을 추구한다는 개인주의로부터 타인을 해치지 말라는 소극적인 윤리를 도출할 수 있다. 이런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근대 자본주의사회는 그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성취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부르주아들은 개인주의에 입각하여 서로 간에 부당한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돕지도 않으면서, 각자 자신만의 행복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여 돈 벌어 저축하여 투자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경제발전을 달성하여 왔다. 이런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그리고 근대 과학문명이 꽃피워 왔다. 이런 개인주의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자본주의 부르주아들에게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개인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소외를 해결할 수 없고 오히려 이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다. 인간소외란 추상적이고 어려운 말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단지 수단으로만 대하거나 적대적으로 대하여 서로 간에 진정한 인간적인 만남이 소멸되어 사람 간에 정이 오고 가지 않는 현상, 그리하여 타인과의 만남이 고통스럽거나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현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 소외를 발생시키는 것은 개인주의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사회 그 자체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 간의 진정한 만남이 어렵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가족과 친구와 같은 인간적인 관계는 존재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적 인간관계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인간관계이다.

 

자본주의적 인간관계는 셋뿐인 것 같다. 하나는 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서로 거래하는 관계이며, 둘은 적대적인 상호경쟁 관계이며, 셋은 전혀 아무 관계가 없는 완전히 단절된 관계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서로 경제적 이해관계가 일치하면, 매매, 금전차입, 고용과 같은 자본주의적인 거래관계를 맺는다. 이런 경제적 거래는 쌍방 모두에게 경제적 이익을 준다. 그러나 이런 거래관계는 모두 자신의 이익을 얻기 위한 거래이지 인간으로서의 만남이 아니다.

 

다음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항상 경쟁자가 있다. 경쟁은 효율성의 어머니이지만, 나의 경쟁자는 나에게 손해를 입힌다. 나의 경쟁기업은 나의 손님을 뺏어 가거나, 나로 하여금 내 제품의 가격을 낮추도록 강제하거나, 나의 제품의 품질향상을 위해 나로 하여금 더 비싼 부품을 사용케 한다. 경쟁관계에 있는 근로자들 간에도 마찬가지이다. 나와 경쟁관계에 있는 근로자들 때문에 나는 나의 요구를 자제할 수밖에 없다.

 

위의 두 경우가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서로 간에 완전히 단절된 관계, 교류가 전혀 없는 서로 간에 완전히 남남인 관계이다. 나와 거래할 필요도, 나와 경쟁할 필요도 없으며, 따라서 나와 아무 관계도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관계가 이에 속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 타인은 자기의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적이거나, 아니면 자기와 아무 관계가 없는 타인일 뿐이므로 인간소외가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자유주의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인간소외의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공동체주의자들의 지적은 올바르다고 생각된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개인주의를 보완하는 다른 원리가 필요할 것이다.

 

인간의 사회성이라는 자유주의가 간과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다음 칼럼에서 고찰하기로 한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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