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모델의 정치조건’은 수많은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달성한 네덜란드의 개혁과정을 입체적으로 추적해봄으로써, 이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객관성과 상상력을 높여보고자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물론 네덜란드 모델이 과연 ‘성공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서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네덜란드에 사는 노동자들이 우리보다 훨씬 평등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당과 정치인들이 개혁과정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의 정책결정과정 속에서는 그야말로 정치가 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정치의 본래 역할은 무엇이고 그것이 갈등의 현장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왜 우리의 정치는 이렇게도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져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필자주(손정욱)

정경연 에세이2 네덜란드 모델의 정치조건


3장. 개혁의 지속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장애연금의 개혁: 기민당-사민당 연립정권 시기(1989-1994)


손정욱 국회 비서관(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1. 반복되는 위기와 개혁의 사이클

경제위기는 반복된다. 그리고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일수록 이런 위기에 취약하기 마련이다. 네덜란드는 바세나르 협약을 통해 1970년대 경제위기를 어느 정도 극복했지만, 그렇다고 그 이후 모든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개혁 이후 안팎으로부터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다. 바세나르 협약이 성사되자 당장 노동계는 크게 반발했다. 심지어 노조 일부에서는 바세나르 협약의 노동자 대표였던 빔 콕(Wim Kok)을 “노동자를 팔아먹은 배신자”라고 비난했다. 협약의 내용 중에 임금 삭감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콕은 한 인터뷰에서 바세나르 협약을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구도 그 협약에 기뻐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왜 임금인상 투쟁을 막느냐고 이야기했고 사용자 측도 이런 험한 일은 정부가 하도록 내버려두지 왜 우리가 하냐고 불평했다... 그 협약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노동자들은 아직 이익을 많이 내고 있는 회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었다. 그 사람들은 '바세나르협약 때문에 임금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노조원들이 거의 동의했다”

또한 세계화의 심화 속에서 네덜란드 경제는 점차 노동생산성 증가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국제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고임금 경제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들은 노동생산성을 향상시켜야만 생존이 가능했다. 이를 위해 가장 일반적이고 손쉬운 방법은 합리적 투자를 통해 노동투입을 줄이고 노동생산성이 낮은 근로자를 정리해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덜란드의 복지체제는 이런 흐름과는 반대 방향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전통적인 가장(家長) 중심의 복지체제를 갖춘 네덜란드는 생산성이 낮은 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들기보다는 각종 복지혜택을 통해 보호해주는 경향이 강했다.

복지수당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국민의 증가와 정규 임금을 받는 국민의 감소는 복지국가의 재정적, 사회적 기반을 무너뜨리는 핵심 요인이다. 네덜란드의 경우는 특히 질병 및 장애연금 프로그램의 폐해가 심각했다. 네덜란드가 고령근로자의 ‘은퇴 경로’로 얼마나 장애연금을 활용했는지는 다른 복지국가들과의 비교를 통해 잘 드러난다. 1987년 55-64세의 임금근로자 1만 명당 장애연금 지급자 수는 벨기에가 434명, 서독이 262명에 불과한 반면 네덜란드는 980명에 달했다. 심지어 1986년 네덜란드의 55-64세 보험인구 가운데 장애연금 수령자는 취업근로자보다 더 많았다.2 물론 이것은 네덜란드 근로자의 건강상태나 국가 의료수준이 다른 국가들보다 낙후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아르츠와 데 종(Aarts and de Jong)에 따르면 이는 장애에 대한 광범위한 정의와 질병수당 및 장애수당의 밀접한 연관성에 의한 것이었다.3 이로 인해 네덜란드의 노동자들은 실업상태를 유지하기보다 차라리 노동시장을 떠나 질병휴직과 장애연금의 혜택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1980년대까지 네덜란드의 경제활동참가 비율은 다른 복지국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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