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모델의 정치조건’은 수많은 대내외적 어려움 속에서도 성공적인 노동시장 개혁을 달성한 네덜란드의 개혁과정을 입체적으로 추적해봄으로써, 이를 통해 우리의 정치적 객관성과 상상력을 높여보고자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물론 네덜란드 모델이 과연 ‘성공적’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진보와 보수 진영 모두에서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한국과 비교했을 때, 네덜란드에 사는 노동자들이 우리보다 훨씬 평등하고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당과 정치인들이 개혁과정 속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네덜란드의 정책결정과정 속에서는 그야말로 정치가 시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 과정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서, 정치의 본래 역할은 무엇이고 그것이 갈등의 현장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왜 우리의 정치는 이렇게도 시민들의 삶과 동떨어져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도 함께 고민해봤으면 합니다. 필자주(손정욱)

정경연 에세이2 네덜란드 모델의 정치조건

 

 

2장. 바세나르 협약의 의미 ③  협의주의 정치의 성공적 작동

 

 

손정욱 국회 비서관(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

 

 

1. 노동시장과 정당정치

 

지난 연재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세나르 협약은 기본적으로 노동과 자본집단 간에 맺어진 것이다. 바세나르 협약의 당사자인 빔 콕(Wim Kok)과 판 베인(Chris van Veen)이 각각 노동과 자본을 대표하고 있었고 그들의 약속이 향후 각 집단의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세나르 협약이 성공하기 전까지 1970년대 내내 노사 양측의 협상은 결렬을 반복해왔다. 왜 1980년대 초에 들어서야 그들의 협약은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후 네덜란드는 어떻게 지속적으로 사회합의주의를 성공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에 만족할만한 답을 찾기 위해서는 노사관계 외에 바세나르 협약의 세 번째 의미, 즉 정치변수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노동과 자본 간 갈등 조정도 결국은 정치를 통과해서(through) 일련의 정책결정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연구들이 주목하고 있지 않지만 실제로 바세나르 협약이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연립정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변수였다.  1982년 9월 선거에서 기민당의 당수였던 루버스(Ruud Lubbers)는 자유당과의 연합을 형성하여 연립정권을 창출했다. 네덜란드 사회경제 상황이 최악이었던 시기에 집권한 루버스 정부는 임금의 지속적 상승이 여타의 문제들에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루버스 정부는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라고 주장하면서 공무원 임금과 최저 임금, 그리고 사회보장을 동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곧 정부가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여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정부의 압력은 노조를 궁지에 몰리게 했다. 실업률의 급격한 증가와 계속되는 파업으로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져 있는 상태에서 자신들의 입장만을 계속 주장할 명분이 점차 줄어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업들도 정부가 노사관계에 직접 개입하여 임금 및 기타 문제에 대해서 제약을 가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결국 정부의 이러한 개입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억제와 일자리 공유를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따라서 정부가 임금 안정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 며칠 전, 노사의 대표가 바세나르 협약을 맺게 된 것이다. 즉, 바세나르 협약이 나타나게 된 것은 경제적 위기 상황 하에서 노사간 자발적인 타협의 산물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압력행사 덕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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