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내용은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1억짜리 집이 3억 되면, 통장에 2억이 꽂힙니까?" 

 

 

공약은 '뻥'이 아니라 '아이디어'다.

 

많은 정치인들이 공약으로 '뻥' 치는 사회에서 시민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아이디어'로 만들어 현실화시킨 사람이 있다. 바로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제윤경 대표다. 그는 서울 시장 선거 당시 박원순 캠프에서 '금융복지상담센터'와 '공공임대주택' 공약을 만들어 현실화했다. 에듀머니는 재무 상담․경제 교육․캠페인 등을 통해 삶을 중심에 놓고 돈을 통제하는 사람 중심의 가정 경제를 만들기 위한 곳이다. 최근에는 장기 연체된 부실 채권을 싸게 사들여 채무자의 원금 상환 부담을 덜어주는 '주빌리 은행'을 설립해 상임이사로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계 부채 1000조 시대', 수년간 '빚을 권해온' 우리 사회의 결과물이다. 정부가 빚내서 집을 사고 소비하도록 조장했음에도, 빚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가혹하다. 빚으로 빚을 갚는 끝없는 악순환에 빠진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지만, 제대로 된 사회 안전망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한 제윤경 대표의 노력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을까. 어떻게 시민운동으로 그치지 않고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었을까.

 

사회적 기업가로, 민생 정책가로, 새정치비전위원으로, 시민 사회와 정치권을 아우르며 여러 차례 개혁을 시도했다. 물론, 회의가 들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정치를 통한 제도 개선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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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듀머니 제윤경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 개인사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제윤경은 학창시절 어떤 학생이었나?

 

개인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다. 1991년 대학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학교에 만족하지 못했다. 내가 다닐 만한 학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입학 후 '나만 이렇게 잘난 척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으로 운동권 분위기를 접했는데, 어린 마음에 멋있어 보였다.

 

강경대 열사가 91학번이다. 또 김기설 분신 자살 사건이 발생하면서 당시 웬만한 대학교 1학년생들은 선배 손에 이끌려 거리 집회에 나갔다. 특히 우리 학교는 운동권이 유난히 많은 여대로, 학교에 대한 불만을 사회 불만으로 표출하는 분위기였다. 입학한 첫해 1학기 수업을 거의 안 했다. 학내 분규로 총학생회장이 제적을 당해 장기간에 걸친 단식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매일 대자보가 쏟아졌다. 방송반이었는데, 집회 현장마다 관련 장비를 낑낑대며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 분위기에 이끌렸나? 아니면 '동참해야겠다'는 의지로 학생 운동에 참여했나.

 

처음부터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가끔 거리 집회에 쫓아다니는 정도였다. 당시 워낙 큰 집회가 많았고, 다른 학교 출신이지만 같은 학번의 동기가 죽었으니, 집회 참여는 자연스러운 분위기였다. '운동권만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학생 운동이다'라는 느낌이 없었다. 사회적인 운동이었다. 그리고 방송반은 위계 질서가 분명한 곳이다. 선배들과 소위 '학습'이라는 것을 했다. 특히 '사적유물론' 등 사회과학 학습은 필수여서 빠질 수 없었다. 그렇게 1학기를 보냈고, 1학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학생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이렇게 사는 것이 나에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2년 연세대에서 '전국연합발족식' 집회를 1박 2일로 했는데,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방송반이었으면 공개 발언도 많이 했을 것 같다.

 

방송반에서 1학년은 짐꾼이다. 마이크를 옮기고 설치하고. 1학년 2학기 때에는 방송을 조금씩 했지만, 일상적인 일이었다. 2학년 때 새로배움터(오리엔테이션)에서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지음, 문학과 지성사 펴냄)을 방송 극화했던 기억이 있다. 소녀를 매수하는 남자 역(박우철)을 맡았다. 내 목소리가 가늘고 몸집도 작아서 주인공 소녀(김영희)를 연기하라고 했는데, 그런 이유로 맡는 것은 싫다며 다른 동기에게 넘겼다. 그리고 선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시연을 보여서 배역을 따냈다. 이후 방송반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후배들과 '학습'을 했다. 선배들이 꾸린 비밀 학습단에서 학습을 받고, 방송반의 공개 학습단에서 후배들의 학습을 지도했다.

 

- 대학 시절 전공은 심리학이었는데, 재무 컨설팅이라는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했다. 

 

많이 다르지 않다. 전공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경제와 관련된 일은 경제학과 출신이 다뤄야 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거시 경제와 가계 경제는 다르다. 오히려 가계 경제는 사람들의 심리적 기제가 잘 작용한다. 그렇다고 심리학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은 아니다. 굳이 전공과 연계성을 찾는다면, 재무 설계 회사에 입사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금융사가 만든 재무 관리 틀에 맞춰서 상담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보다는 '사람들이 왜 돈을 쓰는지', 그 심리적 배경이 궁금했다. 상담하면서 '왜 그렇게 빚을 내서라도 투자를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관찰했다. 그리고 그것을 자극하는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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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했는데, 상담한 고객 대부분이 만족스러워했다. 속마음을 끌어내는 상담을 했기 때문이다. 상담하러 온 이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사실 나도 돈 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교과서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은 성격에 맞지 않았다.

 

재정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상담하러 온다. 소득은 높은데 빚이 늘어난다든가, 사기 당한 걸 감당할 수는 있는데 조급한 마음이 든다거나 하는 이들이다. '지출을 줄이라고 하겠지. 정답은 정해져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에 이들 역시 반신반의(半信半疑)하면서 온다. 하지만 상담할 때 '지금은 크게 문제없다. 방식을 약간만 바꾸면 된다'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조언한다. 사람들이 실행할 수 없는 안(案)은 나도 줄 수 없다. 사람들이 지출 관리를 잘 못 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나 자신을 불신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만든 장치가 있다. '이것만은 아예 저지르지 말자', '이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쓰자' 등의 결심이다. 돈 관리를 하는 게 직업이라고 해서 '돈 돈' 하는 것도 싫고, 돈에 구속당하는 것도 싫다. '최대한 쉽게 관리할 수 있는 방식', '쓰고 싶을 때는 마음껏 쓸 수 있는 방식'에 대한 조언을 많이 했다. 쓰고 싶은 대로 다 쓸 수도 없고, 안 쓰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맬 수도 없다. 사람들을 극에서 극으로 괴롭히는 사회에서 이 두 가지 방법은 모두 틀렸다고 봤다. '쓰고 싶은 데에는 많이 쓰고, 마음껏 쓰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 덜 쓰자'. 이런 원칙 몇 가지 만들어놓으면 된다고 조언하니, 사람들이 상담받으러 왔다가 즐거워했다. 자기 스타일에 대해 고민하고 어디에 돈을 쓸 때 가장 즐거운지, 어떤 지출은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지를 고민하게 해주니까 말이다.

 

자기 스타일을 찾아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심리학과의 영향이 있었던 것 같다. 공부는 안 해도 심리학 전공이 주는 무언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꾸 사람을 분석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대학 시절, 수업에는 안 들어가도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어렸을 때 상처가 있었던 것 같아', '너 혹시 이런 열등감이 있었던 것 아니니?' 하면서 동기들과 서로에 대해 분석하다 엉뚱한 곳으로 흐르곤 했다. 이런 습관이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됐던 같다.

 

- '재무'라는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기가 힘들었을 것 같다. 수치들이 복잡하지는 않나?

 

숫자를 자주 보지 않는다. 지금도 숫자에 약하다. 그런데 오랫동안 일하다 보니, 경험에 의해 숫자가(통계가) 쌓이는 것 같다. 예컨대 '2000년대 초반 가계 부채 지수'라든가 '가처분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과 같은 것은 머릿속에 억지로 넣어도 못 외웠을 것이다. 거시 경제 교과서에는 복잡한 공식이 많이 나올 수 있지만, 거시 경제학자도 아닌 내가 우리나라 경제에 대해 진단을 내릴 필요는 없지 않나. 거시 경제 학자들과 나는 공부하는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주눅이 들지 않았다. 가계 경제에도 수치는 있지만, 어려운 공식은 없다. 오히려 가계 경제는 이론도 별로 없고 표준 지표도 부재한 상황이다. 가계 지표를 표준화할 때는 굉장히 많은 가구의 총 조사가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인구 총조사는 인구의 20%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도 오류가 많다. 따라서 표본 집단을 추출하는데, 너무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직접 조사해 상담한 결과를 산출한 수치가 더 정확할 때도 있다.

 

- 가계 경제와 금융 쪽을 자세히 보게 된 계기가 IMF 영향을 받았기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우연히 입사한 회사가 재무 설계 회사였고, 교육을 하라는데 뭘 해야 할지 몰라 상담사를 쫓아다니면서 연구하고 분석하다 보니 조금씩 알게 됐다. 재무 설계 회사에서 재무 관리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금융 상품 판매에 종속돼 있다. 내가 입사한 회사도 그런 경향이 강했다. 나는 일하는 방식이 스스로 납득이 되어야 일을 하는 스타일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상담사를 쫓아다니다 보니, 상담사들이 판매에 급급한 상담을 하고 있고 그걸 위해서 분석을 작위적으로 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답이 정해져 있는 분석을 하는 것이었다.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 판매에 급급한 상당이 아닌, 다른 식으로 일하는 사람들은 실적이 좋지 않았지만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이렇게 상담하면 고객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표준화 작업을 했다. 대부분의 교육 교재들은 금융사가 단지 판매를 잘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고객들의 사례 중심으로 만들었다.

 

이런 면은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이 많은 도움이 됐다. 당시 청소년 YMCA와 교회에서 연극 창작 활동을 했는데, 시나리오 대본도 쓰고 연출도 해봤다. 대학에서 학생 운동을 할 때에는 대동제를 기획하기도 했다. 선거도 정책에서부터 캐치프라이즈·이미지까지 기획의 종합판 아닌가. 학회장과 학생회장을 하면서 이런 부분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는 조용한 애였는데, 외부에서는 '짱(대표직)'을 많이 했다. (웃음) 이런 경험이 기존의 틀을 따르기보다는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상사와 마찰이 심하기도 했다. 원래 사업할 생각은 없었는데, 결국 내가 사업을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 뜻밖에 겁이 많고 소심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사업하고 있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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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에듀머니는 '시민의 눈높이에서 교육한다'고 하는데, 재무 설계는 일반 사람이 알기 어렵다. 콘텐츠를 어떻게 해야 알기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콘텐츠 자체가 쉽고 어렵고의 문제는 아니다. 내가 어렵지 않게 얘기할 수 있는 이유는 어려운 것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웃음) 내 경험을 토대로, 다른 사람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거시 경제의 원칙은 어려울 수 있지만, 고객에게 굳이 이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런 내용은 학자들이 경제 구조를 분석하기 위한 도구이지,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도구가 아니다. 시민들에게는 기본적인 삶의 내용을 이야기해야 한다. 또한 쉽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의 귀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꽂히게 말하는 방법, 즉 '공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감해야 하니까 분석했고, 상담하는 과정에서 '저 사람이 왜 집을 못 사서 안달일까? 내 집 마련이 왜 중요한 이벤트인가?'하는 의문을 가졌다.

 

나는 사람들에게 '왜 집이 있어야 하나요? 집값이 오르잖아요'라고 꼭 물어본다. 때로는 경제 이론서를 보면서 해답을 찾기도 하는데,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집을 사야 한다'는 조급증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또 이사 가는 게 번거롭기 때문에 전세살이가 불안하다. 이런 주거 불안이 투기적 욕구와 결합해 집을 사야 한다는 강박증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런 불안이 사람을 잘못된 선택으로 이끄는 것은 아닌지, 상담을 통해 묻는다. 실제로 사람들이 느끼고 있을 법한 것, 혹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접어든 것을 행동유형을 통해 분석하거나 이론에서 찾아서 알려준다. '만약 집을 살 경우 향후 현금 흐름이 이렇게 된다. 이만큼의 빚을 갚기 위해서 20년간 이만큼의 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이것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집이 중요한가? 집값이 올랐을 때 돈을 버는가. 집값이 오르면 왜 좋은가? 돈을 버나? 그럼 언제 팔 건가? 이런 것을 계속해서 물어본다. 그리고 난 후, '사실은 뭐에 홀린 거다. 다시 차분히 앉아서 생각해보라'고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사람들이 눈치 못 채고 있지만, 자기 안에 숨겨진 것을 끄집어내는 것이 우리(재무 설계사)의 역할이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중들의 욕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확성기가 없다. 교수도 아니고, 명문대 출신이나 유학파도 아니다. 따라서 여러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파하려면 '꽂히는 얘기', 즉 언어를 연구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본다.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열악한 조건과 환경 속에서 스스로 연구했다. 절실하게 파고드는 것이 더 재밌다. 필요해서 시작했지만, 묘한 쾌감이 있다. 일하는 방식을 불편하게 바꾸는 것이 좋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왜 관심이 없을까?'를 생각해본다. 거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결국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보면 '각성 상태냐 아니냐, 의식이 활성화되느냐 아니냐'가 된다. 매력이 없으면 각성이 안 된다. 자극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끊임없이 고민한다.

 

빚 탕감 운동인 '롤링 주빌리(Rolling Jubilee)'도 처음부터 불같이 일어날 것을 예상했다. '어떻게 빚을 할인해서 팔지?' 라는 생각에 꽂혀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부가 다수의 열악한 채무자를 염두에 두고, 파산·면책 정책을 입안했기 때문에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2010년이 되자, 이들이 추노꾼에게 쫓기는 노예가 됐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만나는 사람마다 이 얘기를 했다. '이해되느냐? 나는 안 된다. 문제 있지 않나?'고 물었다. 다들 놀랐다. 그래서 불같이 일어날 줄 알고 기획했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채무자 117명을 대상으로 1차 탕감을 할 때만 해도 심리적으로 힘들었다. (웃음) 기대가 높으면 실망도 크니까.

 

- 비슷한 고민을 누구나 한번 쯤 할 것이다. '사회적 문제라는 게 사실은 자신의 문제인데도, 대중들은 왜 관심을 두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왜 그럴까.

 

무심한 것이다. 나도 약간의 좌절감을 느꼈다. 지난해 성공한 소셜 캠페인 중 이효리의 '노란 봉투'가 있다. '연예인이 움직이니까 한방에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와 동시에, '우리나라의 지적 수준은 이것밖에 안 되나?'라는 좌절감이 들었다. '행동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바가 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교육받았다는 것이다. 사람들 속에는 감정적·직관적으로 하는 의사 결정과 뒤집어보고 비판하는 결정 프로세스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후자인 '의사 결정 프로세스' 훈련이 안 되어 있다. 입시 경쟁에 몰두하느라, 생각하는 것 자체를 거세당한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파고 들어가는 성향이 있어서 이런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 발달한 것 같다. 어릴 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집에 어른이 없었다. 그래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는 휴학을 하기도 했다. 남들과 다른 환경 때문이었는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런 프로세스가 즐겁게 몸에 배도록 하고 있다. 생각의 꼬리를 끊임없이 물고 고민할 수 있게 시간을 준다. 타고난 기질도 약간 있는 것 같다. 아들을 보니, 가르쳐준 적도 없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질문한다. (웃음)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감정적이고 즉흥적이다. 그래서 직관이 발달한 대신, 검증하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는 발달하지 않았다고 본다. 본인이 얼마나 감정적으로 의사 결정을 내렸는지 인정하는 것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인다. 사람이니까. 이런 방식으로 중요한 재무 사건에 대한 정보 처리를 한 단계 더 거친다.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집이 3억 원이 되면 우리 안에 '감정 계좌'가 생긴다. 감정 계좌에 2억 원이 입금된 것이다. 근데 실제 계좌에도 2억 원이 입금됐나? 1억 원짜리 집이 5억 원이 될 수도 있는데, 3억 원에 팔면 손해인가 이익인가. 이런 질문을 하면 사람들이 웃는다. 함정이 뭔지 아니까. 우리는 감정 계좌를 손해로 인식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익이다. 결국 감정 계좌 때문에 빚만 남는다. 1억 원짜리 집을 사기 위해 5000만 원의 빚을 지더라도, 의심하는 의사 결정 프로세스가 발달한 사람이면 3억 원에 팔고 1억 원짜리 집으로 이사할 것이다. 그리고 2억 원의 차액을 실제 계좌에 입금할 것이다. 이후 다시는 그런 행위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하나?

 

- 이런 얘기를 들은 사람들이 의사 결정을 바꾸나?

 

안 바꾸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한 번쯤 반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꾼 사람은 고객이 된다. 하지만 교육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이런 교육을 받았다면 가능하지만, 성인 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독일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끊임없이 이성 계좌 발달을 교육한다. 합리적 의사 결정에 대한 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을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에 살게 할 거면서 말이다. 언젠가 경제 시스템이 붕괴되면, 사람들은 정신 차릴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광풍'(튤립 버블, 금융 투기의 원조격으로 불린다. 1630년대 초 네델란드에서는 애호가들 때문에 튤립 뿌리 가격이 폭등했다. 사람들은 튤립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튤립을 사들였다) 당시 사람들은 튤립 한 뿌리를 사기 위해 연봉의 6배를 지불했다. 그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튤립 값이 폭락하고 난 후였다. 그때야 튤립이 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재밌지 않나? 이렇게 극적으로 교육해야, 집값이 폭락했을 때 집이 집으로 보일 것이다. 이런 교육을 2006년부터 9년째 하고 있다. 몇 년째 우려먹고 있지만, 전혀 진부하지 않다. 대한민국은 10년째 투기적이니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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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박원순 시장 선거 캠프에서 부대변인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정치에도 입문했다. 계기가 있었나?

 

참여연대에서 나를 추천했다. 참여연대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투기에 대해 문제점을 제기하다 보니 민생 파트에서 위원으로 결합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그때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며, 사람들이 흥분해 있었을 때다. 참여연대의 활동가들이 선거캠프에 들어가긴 어려웠다. 그에 비해 난 알려진 인사가 아니었기 때문에 캠프 참여가 비교적 용이했다. 민생 정책을 만들고 담당할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대변인까지 맡을 생각은 없었다. 언론도, 대변인도 뭔지 잘 몰랐다. 부담스러워서 정책팀에 합류했다, 나중에 박원순 시장 후보의 권유로 부대변인을 했다.

 

- 캠프 정책 중 현재 실행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공약 대부분이 이행되고 있다. 내가 제안한 것이 금융복지센터인데, 현재 많은 채무자들이 센터를 통해 구제받고 있다. 직접 만든 정책이 실현되는 것은 매우 보람있는 일이다. 공공 임대 공약도 당시 정책팀과 싸워 첫 번째 공약으로 내세웠다. 공약은 '뻥'이 아니라, '아이디어'의 문제다. 실행 계획을 어떻게 짜든지, 주거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1년 선거 당시 '8만 호'를 공약했는데, 조기에 실행됐다. 이런 일은 정말 재미있다.

 

-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공동선대위원장을 할 때 '막말 논란'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치를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심한 말은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정치를 할 거면 호재라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너무 싫었다. 어떤 '역할'로 주목받으면 모를까, '사람'으로 주목받는 것은 싫었다. 그래서 유명인들은 사는 게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좋은 기억은 아니다.

 

그 외에도 캠프 내 의사 결정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었다. 사공이 많아 도대체 결재라인이 어딘지 모르겠더라. 누가 정치는 원래 비효율적이라고 했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오늘 결정하면, 내일 바로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줄곧 회의만 하고 안건은 돌고 돈다. 그러다 어디선가 실종된다. 이런 방식이 못마땅했다. 민주적인 것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그건 무책임한 얘기다. 진짜 민주적이려면 그 사람이 하면 된다. 자기가 가진 안(案)을 직접 실행하면 되는 것 아닌가. 전체 구성원이 논의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모르겠는데, '가계 부채 관련한 행사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와 같은 안이 공전하는 것은 웃긴 일이다. 비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무책임의 문제다.

 

- 새정치비전위원회에 있을 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나.

 

비전위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시스템이었다. 의미 없는 것을 열심히 하는 비전위원들이 존경스럽다고 생각했다. 비전위 초기에 내가 액세서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일상이 바쁜 사람들이 야당을 바꿔보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모였는데, 결과적으로는 정치인의 쇼였다. 정말 화가 났다. 비전위원장이었던 백승헌 변호사는 정말 일을 잘했다. 회의도 압축적으로 진행하고, 도출할 과제도 분명하게 제시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구경만 했다. (웃음) 정치를 잘 몰라서 개혁안을 낼 게 별로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민주당이 뭘 몰라서 못합니까. 알아도 안 하는 거지. 민주당에는 온갖 개혁안이 다 있잖아요. 캐비닛에….' 이런 말들만 얄밉게 했다. (웃음)

 

- 앞으로도 정치권에서 부르면 같이 참여할 의사가 있나?

 

늘 겪어본 뒤에는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제도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번에 한 번 더 속는다'라는 심정으로 아마도 참여할 것 같다.

 

- 사회적 기업으로는 문제 해결에 한계를 느껴 정치권에 들어간 것은 아닌지…. 시민 사회 활동을 하다 정치권에 들어가면 '결국 정치하려고 그랬던 것이 아니냐?'라는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 두 집단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까.

 

정치 참여의 창구를 다양화해야 한다. 후보 출마나 정치인의 보좌관이 아니어도,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거버넌스(governance)'가 필요하다. 비례 대표 의원을 늘리고 보좌관 수를 줄여, 국회 및 외부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서 논의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비서관이라면 금융위원회에서 받아낼 자료가 산더미다. 정책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줘도 지적조차 못 하는 것이 현재 의원들이다. 국정 감사를 준비하던 한 야당 의원실이 얼마 전 "가계 부채 관련해 정부에 어떤 것을 질책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무슨 낯짝으로 야당이 정부에게 할 말이 있느냐"고 꼬집었다. 바로 "네?" 하고 반문하기에, "야당이 한 게 있어야 정부를 야단치죠"라고 비판했다. 하다못해 대부업법 개정도 새누리당이 했다. 새누리당이 상임위원회에서 관련 안건을 논의한 것이다. 법안을 발의한 야당 의원은 마치 자신이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처럼 생색만 냈다. 그래서 "당신들이 새누리당보다 더 못할 때가 잦다"고 했더니, 대답을 못하더라. 나를 찾아온 것을 후회했을 것이다. (웃음)

 

이런 일은 의원이나 보좌관 외에 거버넌스를 꾸릴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정무위원회에 있는 친한 보좌관에게 거버넌스 구축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흐지부지됐다. 무책임한 것이다. 의원이나 보좌관에게는 이런 거버넌스를 꾸릴 힘이 충분히 있다. 사안 별로, 금융위 관계자들이 정기적으로 참여하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다. 금리와 관련된 거버넌스 체계를 만들어 정부 관계자·대부업체·연구원 그리고 사회적 기업 등 이해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논의를 통한 개선책까지 도출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 회의 때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바로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런 거버넌스 체계가 있다면, 덜 답답하지 않을까?

 

기존 정치 제도 틀에서 정책 결정과 관련한 여러 개선안을 실행할 수 있다면, 정치 꿈나무들이 의원 출마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정치 구조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재밌을 것 같지 않나? 다들 표 때문에 정신이 나가서 할 수 있는데도 안 한다. 그래서 비례 대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친분이 있는 의원 중 한 명에게 '정무위로 가면 월급 안 줘도 되니까, 나를 비상근 보좌관으로 써달라'고 말했을 정도로 답답한 점이 많다.

 

- 계속 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앞에서도 말했던 금융복지상담센터 때문이다. 현재 서울시는 금융복지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성남시를 시작으로 경기도로 확산되고 있다. 새로운 직업을 만든 것이기도 해 뿌듯하다. 물론, 아직 100% 실행된 것은 아니다. 서울시의 경우, 파산센터처럼 운영되고 있어 조금 못마땅한 점도 있지만 '시작됐다'는 데 의의가 크다. 성남시의 경우, 에듀머니가 직접 위탁을 받아 모델을 만드는 작업까지 하고 있어, 금융복지상담센터 모델을 그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대된다. 이런 활동은 제도를 바꾸는 일이기 때문에 굉장히 뿌듯하다.

 

- 사회적 기업은 사실 돈이 되는 일이 아닌 보람을 찾는 일이다. 그래서 오히려 쉽게 지칠 만도 한데….

 

어린 시절, 집이 가난하다고 해서 돈 버는 데만 몰두해 부자가 되는 것은 싫었다. 가난하기 때문에 느끼는 열등감도 싫었다. 이런 환경과 무관하게 주눅이 들지 않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돈에서 자유롭다(벗어난다)는 것은 돈이 많은 게 아니라 돈으로 나를 가치 평가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중점을 두고 사람들을 교육해 자기만의 가치에 충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벌어야 하지만 필요한 만큼 벌고, 불편하지 않을 만한 원칙을 수립해 놓으면 된다. 물론 한때는 나도 집이 있고 안정된 생활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지 않나.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의 불편을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보람도 있고 얻는 것도 많다. 돈만 벌겠다고 뛰어다닐 때보다 지속 가능성도 있다. 매년 성장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계속하게 되고 성과에 따른 보람을 느끼니 또다시 추진력이 생긴다. 그리고 내가 일을 좀 잘하는 것 같다. (웃음) 일을 앞두고는 잠을 못 잔다. 꿈에서도 계속 신경을 쓴다. 실수 없이 일하려면, 항상 초긴장 상태에서 살아야 한다. 이런 생활에 가끔 지칠 때도 있지만, 과정 거쳐 일이 끝나면 보람을 느낀다. 그래서 일을 자꾸 벌이고 다니는 것 같다. (웃음) 누군가는 "왜 자꾸 일을 벌이시나요?"라고 묻는다. 그러면 나는 "나 믿고 벌인다"고 대답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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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엄마로, 여자로 일하는데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직원과의 관계가 어렵다. 현재 에듀머니에는 남자 직원이 없다. 내 스타일에 문제가 있어서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 여자들이 일을 더 잘한다. 여자로, 대외 활동을 할 때는 일장일단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남자가 많은 분야라, 여자이기 때문에 기회가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여자로 사회활동을 하면서 겪는 일 대부분은 여성이 생각하기 나름 아닐까?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건 힘든 점이 많다. 반면, 아이들이 힐링해 주는 부분도 크다. 아이들 덕에 일도 더 잘하는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사무실과 집을 합쳐 아이들을 자주 볼 수 있게끔 했다. 아들이 방학일 때는 집에 봐줄 사람이 없어서 강의하는데 데리고 갔다. 그런데 강의 도중 옆에서 자꾸 말을 걸어서 혼났다. 어릴 때부터 형식의 파괴를 경험한 것 같다. (웃음) 아이들과 되도록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한다. 특히 아침은 꼭 같이 먹는다. 딸이 대안 학교에 다닐 때는 내가 학교에서 경제 강의를 해주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아이들과 좋은 소통의 시간을 가진다.

 

-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는?

 

두려움을 일단, 다 내려놓고 하고 싶은 것을 찾아 시작해라. 우리 아이만 봐도 불가능한 것은 아닌 것 같다.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큐레이터에는 여러 종류가 있어. 현대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를 하고 싶다면 넌 잘못 태어났어. 재벌 딸이거나 돈을 1억 원씩 쓰고 유학을 다녀와서 비정규직 큐레이터가 되어야 해.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지?"라고 현실적인 얘기를 해준다. 그런 다음에, "넌 뭐가 하고 싶은 거니? 단지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 거야?" 하고 물으니, 그림 속 여러 사람들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그렇지? 그럼 그런 일을 해"라고 말했다. 직업으로 유명 갤러리의 큐레이터가 아니라, 왜 큐레이터가 되고 싶은지, 큐레이터가 돼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물었다. 아이가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되묻기에, "그냥 하면 되지"라고 답했다. 길거리에 작품을 설치할 수도 있고, 그런 사회적 기업이 있으면 찾아보거나 만들어 볼 수도 있다.

 

- 그래도 안정적인 직업, 주거, 결혼 등 현실적인 장벽에 부딪히지 않을까?

 

청년들에게 강의할 때 항상 하는 얘기인데, 이 모든 게 결국 다 재무 문제다. 여기서 벗어나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다. 집 문제도 앞으로 많이 바뀔 것으로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내 생활 수준을 어느 정도 조정해야 한다고 본다. 50평대 예쁜 집을 가꾸기(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동을 하는지, 많이 봤다. 매일 반복되는 쓸데없는 노동,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은 노동. 왜 필요한지를 생각해 보니, 다 허상이더라. 사실 그렇게 크고 예쁜 집은 필요 없다. 이런 생각으로 짐을 최소화하면, 가전제품도 최소화하게 된다. 결국 필요한 돈은 줄어들고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자유로워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런 삶이 일반적인 삶과는 다르기 때문에 불안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삶이 좋나? 알고 보면 더 불안하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해서 좋은 거면 그렇게 살면 되겠지만, 알고 보면 다 빚에 허덕이며 산다. 많은 청년들이 공무원 준비와 대기업 취직에 매달리는데, 합격하면 집이 생기나? 빚내서 집을 사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면서도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내 아이는 더 잘 살았으면 하는 생각에 교육비만 잔뜩 지출하고. 이런 삶이 과연 행복할까?

 

우리 딸에게도 '꼭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데, 일단 수능 보지 않고 해보고 싶은 걸 하기로 했다. 배우자도 최소화하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을 만나면 된다. 사무실 딸린 방 한 칸에 살면 어떤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얻는 게 크면, 얻는 데 집중해야 한다. 삶의 '나머지'도 그에 맞추는 게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삶을 '나머지'에 맞추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나머지'에 맞춘 삶도, 알고 보면 빚더미지만…. 이 허상을 보여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젊은 친구들에게 "그 길로 가봤자 다 노예다. 살아 있듯이 살고 싶지 않나.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일은 좋아서 하니까 전문성도 생긴다. 애정이 있으니까 더 파고들게 된다. 40대가 되어도 전문성을 갖고 성장할 수 있다.

 

- 제윤경이 생각하는 자유란?

 

자유에는 대가가 따른다. 예전에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지음)를 읽으면서 허슬리가 던지는 문제 제기가 무겁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갈구하지만, 이를 얻기 위해 대가를 치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꺼이 자유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자유롭지 않으면, 안 되는 기질이 있는 것 같다. 우리 애들을 봐도 DNA가 그런 것 같다. (웃음) 대가는 충분히 있다. 그리고 그만큼 치러야 한다. 그것이 불편을 감수하는 방법이다.

 

지금 청년 세대는 자신의 문제가 어느 시대보다 최악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청년 세대에게 안타까운 것은 우리 세대에는 사회 변혁을 얘기했지, 청년 운동만을 얘기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청년 세대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사회 전체의 변혁 운동이다. 왜냐하면, 청년의 나이에는 누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기성세대가 되면 자식을 누일 집이 필요하게 되니까 여기에서 이탈하게 된다. 20대는 가장 과격하고 급진적일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기성세대들을 야단칠 수 있는 운동이 필요하다.

 

예컨대, 지금 청년들에게는 정의당 당 대표 선거에 도전했던 조성주 씨처럼 '80년대 운동권들, 반성해라'라는 식의 운동이 필요하다. 청년들이 노동 운동의 밖, 386 운동권이 짜놓은 프레임 밖에 있는 더 비참한 사람들을 돌아봐야 한다고 얘기해야 한다. 청년은 자유롭다는 것을 자각하고, 자유에 따른 대가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세대는 아무것도 없이 새로 만들어야 했다. 제도권 진입은 상상할 수조차 없었고, 국회의원들과 제도 개선을 위해 논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길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져야 정치권이 겨우 돌아봤다. 집에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잡혀가던, 말도 안 되는 시기였다. 과거를 너무 잊어서는 안 된다. 그에 비해 지금은 제도권 안에서 얘기할 수 있는 것이 많다. 조금 덜 아픈 대가를 치르고도 자유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단체도 예전에 비해 훨씬 많아졌다. 매체도 많다. 자유로운 삶은 아프고 불편하지만 재밌고 신이 나지 않나.

 

/ 인터뷰: 2015년 8월 19일

인터뷰이: 정초원 정치경영전공 석사, 정리: 정초원, 정치경영연구소 오진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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