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내용은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신앙은 보험이 아니다…예수의 삶을 보라"
"세월호 유가족, 가장 고통받는 사람"


교황이 왔다.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를 비판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편에서 예수의 삶을 실천하는 그의 행보에 많은 이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그를 맞이하는 한국 정부와 교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책 <교황과 나>(메디치미디어 펴냄)를 쓴 평신도 신학자 김근수는 '가난한 자와 함께'라는 메시지를 전한 교황의 방한을 계기로, 우리 사회와 교회가 진정으로 눈을 돌려야 할 곳은 어디인지 고민해보자고 말한다. 

"'교황이 어디를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지금 예수가 한국에 온다면 어디를 제일 먼저 가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중략) 지금 예수가 한국에 오면 청와대로 가겠는가? 그렇지 않다. 가장 아파하고, 고통 받고, 멸시받고 있는 사람들한테 갈 것이다. 아마도 가장 먼저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에게 갈 것이다." 

중년의 신학자 김근수는 근엄하고 진지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인터뷰 내내 유머를 잃지 않았다. 신학 공부를 위해 떠났던 남미에서 지독한 가난을 경험했지만, 가난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배운 삶의 자세라고 했다. 그러나 깊이 있는 답변을 할 때 달라지는 눈빛에서 신학과 철학을 두루 아우른 이의 진정성이 드러났다.  

"남미의 가난한 사람들을 보니, 독일에서 성경을 보는 관점이 확 달라졌다. 독일에서 예수에 관한 학문적 연구가 남미에서는 실존의 영역이 됐고, 비로소 가난한 자들의 눈으로 성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보통 자유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자유'와 '해방'이라는 단어는 구분되어야 한다. 'freedom'과 'liberty'는 다르다. 자유는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해방은 부정적인 것에서 탈피가 주된 목적이다. 남미의 '해방'과 유럽의 '자유' 모두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는 청년들에게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스스로 만족감을 찾기를, 또한 의로운 길을 걸으라고 당부했다.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로운 길을 가라'는 것이다. 내가 어쭙잖은 인생을 살면서 자랑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불의한 사람을 위해서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유쾌하면서도 시대의 아픔에 슬퍼하고, 교계 문제를 깊이 고민하면서도 변화를 위해 묵묵히 행동하고 있으며, 중년의 고단한 삶에 지친 듯 보이면서도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어느새 그는 자신이 사랑하고 따르는 자의 모습을 닮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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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학자 김근수 씨. ⓒ조경일

- 최근 <교황과 나>라는 책을 썼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과 맞물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데, 2014년 현재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으로 기대하나.

<교황과 나>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교황과 내가 일대일로 앉아서 커피 마시는 정도의 평등함과 당당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보통 가톨릭 신도는 교황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저자세가 있는데, 교황이나 나나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번에 방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격적이고 개혁적인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첫째, '종교가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것이 본래의 일'이라는 인식이 부각될 것이다. 둘째, '가난한 교회'를 추구하라는 메시지가 한국의 불교나 개신교에 충격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교황 또한 그렇게 살아왔지만, 예수의 삶 자체가 그런 메시지를 갖고 있다. 

- 일부 가톨릭 신도들이 교황의 방한 일정을 수정해 달라는 서명 운동이 있었다. 꽃동네 방문 외 제주 강정마을과 밀양 송전탑 건설 현장 방문이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한국 천주교 준비위원회를 강하게 비판했다.  

교황 방한 일정을 제안하고 조정하는 핵심에 방한 준비위원회가 있다. 교황청이 현지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준비위가 제안한 일정을 받아들인 것이다. 

'교황이 어디를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지금 예수가 한국에 온다면 어디부터 가겠는가'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그에 맞게 일정이 정해져야 한다. 지금 예수가 한국에 오면 먼저 청와대로 가겠는가. 가장 아파하고, 고통 받고, 멸시받는 사람에게 갈 것이다. 아마도 먼저 세월호 유가족에게 갈 것이다. 그래서 나도 일정을 그렇게 짜면 안 된다며 조정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내내 사회적 약자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다. 14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탈북자와 외국인 노동자가 포함된 환영단과 인사했으며, 세월호 유가족에게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가슴이 아프다.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15일 대전에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전 교황은 유가족을 다시 만나 단원고 웅기·승현 군 아버지들이 38일간 도보 순례 내내 메고 다녔던 십자가와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아 달라'는 의미의 노란 리본 배지를 건네받았다. 교황은 16일 오전 시복식 카퍼레이드 도중 차에서 내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4일째 단식하고 있는 단원고 유민 양의 아버지 김영오 씨를 위로했다. 오후에는 충북 음성 꽃동네를 찾아 장애인 및 노약자에게 은총을 베풀었다. 18일 교황은 서울 명동성당 미사에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제주 강정마을 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일본 위안부 피해자를 비롯한 탈북자 및 납북자 가족, 장애인, 경찰, 환경 미화원 등 약 1000여 명을 초청했다. <편집자>) 

-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성서 신학을 전공했다. 독일에서 성서 공부를 하다 남미로 건너가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의 땅, 엘살바도르 예수회가 운영하는 중앙아메리카대학(UCA)에서 해방 신학을 공부했다. 철학에서 신학으로, 유럽에서 남미로 가는 결정을 하게 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가톨릭 신부가 되고 싶었다. 그에 앞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기도 했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군대를 전역한 뒤, 광주 가톨릭 대학교에 진학했다가 2학년 때 독일에서 신학 성서를 공부했다. 돌아보건대,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철학을 안 하고 신학을 했다면 경험과 사색을 충분히 거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신학 성서에는 예수와 가난한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영화로 치면 '예수'와 '가난한 사람들'이 주연 배우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성서 관련 학문이 무척 발달했기 때문에 학문적으로 충실히 연구된 여러 자료를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부자 국가이고 안정된 사회이다 보니, 도통 가난을 느낄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공부하면, 성서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가난한 사람이 사는 나라, 가난한 신학을 공부하는 나라'를 찾기 시작했다. 그것이 남미, 그중에서도 엘살바도르였다. 

특히 엘살바도르에 간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예수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해방 신학자 혼 소브리노(Jon Sobrino) 선생이 있었고, 군부 독재에 저항하다 피살된 오스카 로메로(Oscar Romero) 대주교가 있었다. 또 1981년에서 1992년까지 내전으로 3만 명이 죽은 나라다. '소브리노-로메로-내전'라는 이 모든 요소가 신학을 공부하기에 정말 좋을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남미 현장에서 '가난'을 경험하며 신학을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한국·유럽과 달리, 남미에서 경험한 것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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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엘살바도르에 가기 전, 독일에서 소브리노 선생에게 연락했다. 거기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당시 내전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치안이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아시아 사람은 돈이 많다고 생각해 강도의 표적이 되고 있어 신변을 보장할 수가 없다고 만류했다. 하지만 내가 운명에 모든 것을 맡긴 채 가겠다고 하니, 오라고 했다. 경제생활은 알아서 하되, 대신 학비는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3년 동안 수업을 듣고, 토론하며 아시아인 최초로 소브리노 선생의 제자가 됐다. 

남미 사람들의 가난한 삶을 보니, 독일에서 보던 성경과 다른 점이 보였다. 독일에서 예수를 봤다면, 남미에서는 진짜 가난한 사람을 본 것이다. 독일에서는 가난한 사람과 예수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남미에서는 이를 실존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성서를 보기 시작했고, 이를 토대로 한국에서 4개 복음서를 재해석했다. 아마 국내에서 이런 책을 쓴 사람은 처음일 것이다. 

- 해방 신학자로 알려졌지만 '해방 신학, 민중 신학'이라는 용어 대신 '현장 신학'을 사용하고 있다. 예수와 가난한 사람을 만나는 신학적 장소 또는 삶의 자리를 뒷받침하는 신학을 가리켜 '현장 신학'이라고 말했는데,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해방 신학'은 가난한 사람을 편드는 신학이다. 가난한 자 편에 서서 그들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며, 교회보다는 가난한 사람을 관찰하는 것이 먼저다. 해방 신학이 남미에서 생긴 신학이라면, 민중 신학은 한국적 상황에서 생긴 것이다. 해방 신학은 1960년대 후반부터 남미에서 경제적 가난, 정치적 억압, 사회적 소외 등과 같은 현상을 통해서 생겼기 때문에, 한국의 민중 신학보다 20여 년 빨리 연구됐다. 해방 신학은 교회 개혁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지만, 민중 신학은 교회 개혁보다는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데 더 앞장선다. 그러다 보니, 교회 안에서 해방 신학자들이 탄압을 많이 받았다. 

현장 신학이라는 용어는 해방 신학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씻고, 민중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어감에서 벗어나 현장을 강조하는 의미로 새롭게 명명했다. 이 용어를 다른 사람이 받아 줄지는 모르겠다(웃음). 현장 신학의 특징은 교회보다 현장을 우선한다는 사실이다. 현장이란, '고통과 갈등', '가난'이 어우러진 곳을 말한다. 또 현장 신학은 개신교와 가톨릭 간에 교파 구분이 두드러지지 않아, 더 좋다는 생각이 든다. 

- 엘살바도르에 살면서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엘살바도르에 갔을 때가 결혼 직후였기도 해서 현지 강도를 우려해 상류층이 사는 동네에서 석 달을 살았다. 이후,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시골에서 방을 알아보니, 정말 험악하더라. 전기는 들어왔지만, 밤은 어둡고 컴컴했으며 치안도 불안했다. 그래서 근처 성당을 찾아가 신부님께 공부하러 왔는데 신변이 위험하다고 했더니, 의외로 멋진 해결책을 줬다. 바로 동네 조직폭력배 두목을 부르더니, '한국인 부부가 신학을 공부하러 왔으니 너희가 이들을 보호해줘야 한다'는 다짐을 받았다. 

또 '부부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조폭 두목이 부하들을 집합시켜 우리 부부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다 죽이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렇게 3년 동안 조폭들에게 보호를 받으며 지냈다(웃음). 졸지에 유명 인사가 된 것이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한국인 호세'라고 하면 유명하다. 신부님이 지역에서 굉장히 존경을 받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머진 다 힘들었다. 당시 엘살바도르 시골은 한국의 1960년대 이전의 삶을 살고 있다. 우리도 현지인들처럼 바닥에는 거적을 깐 채 낡은 이불을 덮고 잤다. 아내가 고생을 많이 했는데, 고맙게도 나를 많이 이해하며 함께 버텨 줬다.  
    
- <교황과 나>를 탈고하기 전인 지난 6월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현지를 다녀왔다. 추문과 비리로 바람 잘 날 없던 교황청에 이른바 '개혁 교황'이라고 불리는 '프란치스코'로 인한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했는데, 교황은 어떤 분인가? 

프란치스코 교황 스스로 많은 것을 내려놓고 개혁에 앞장서려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교황청과 결탁된 마피아를 공식적으로 파문시킨 일이라든지, 부패한 교황청의 바티칸 은행 관리를 모두 해고한 일 등이 그렇다. 무엇보다 개혁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실제로 가난하고 청빈한 그의 삶이다. 하숙방에서 자며 공공 식당을 이용하고, 교황 전용 엘리베이터도 쓰지 않고 직원용을 같이 이용하는 등 한국의 어지간한 성직자보다 가난하게 산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교황들과 엄청난 차이다. 교황이라는 지위 자체가 지나친 예우와 존경을 받았는데,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관례를 없앤 것이다.  

- 개신교 기독교인들을 포함해 일반인이 갖는 천주교 교황의 이미지가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다른 종교 입장에서는 교황의 서민적인 모습을 칭송하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반인이 교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가톨릭에서 교황을 칭송하는 것은 영웅 숭배와 아무 관계가 없다. 나 또한 그렇다. 그분이 좋은 면이 있기 때문에 좋다고 하는 것이지, 그를 좋게 보이기 위해 꾸며낸 얘기는 하나도 없다. 합리적, 철학적으로 꼼꼼히 분석해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훌륭한 분이다. 

오히려 가톨릭은 개인 숭배를 나쁜 것으로 본다. 마리아도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신자 중 한 명일 뿐이다. 다만, 우리보다 좀 더 예수와 가까이 있었고 실제로 자신이 예수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의미를 부여할 뿐이다. 일부 개신교에서는 천주교가 마리아를 해석하는 데 있어 엉터리 교육을 하고 있다고 지적하는데, 다소 불쾌하다. 물론, 신자들이 오해받을 정도로 가톨릭은 마리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고쳐야 하는 부분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마리아는 신앙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똑같은 어머니, 할머니 중 한 명일 뿐이다. 
 
- 교황은 종교의 수장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영향을 가진 봉건제의 잔재 같은 느낌이 있다. 교황의 위치나 지위가 정치권력 등 여러 부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 않은지. 

교황청이 '나라'로 존재하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와 생긴 일이다. 1923년 이탈리아에 파시스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무솔리니 정부와 교황청이 '라테란 조약'을 맺어 교황청이 자리한 땅을 하나의 나라로 인정해 독립시켰다. 이후 유엔이 바티칸 시를 국가로 승인하며 가입시켰다. 현재 교황청은 가톨릭 교회라는 종교 단체의 중심지이자, 한 나라의 영토이다. 이 자격으로 교황은 교회의 수장이지만, 유엔에서 국가 원수로서 연설을 하고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국가 원수로 대접받는 것이다. 

교황이 가진 이 두 개의 얼굴은 조금 불편할 수 있다. 많은 가톨릭 신학자들은 교황이 가진 국가 원수로서 정체성을 해체하고 종교의 지도자로만 남기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개혁 없이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교황청이 한 나라로 유엔에 가입한 것도 해체하고, 지금 영토는 유엔의 여러 국가들의 인정 하에 치외 법권 지역 또는 중립국으로 둬야 한다. 불교나 개신교 어느 단체도 종교가 국가로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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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일

- 천주교에서 가장 개혁되어야 하는 부분은?

천주교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분위기가 별로 없는데,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 예를 들면, 주교 선출 및 임기와 사퇴 등에 있어 신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하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권력을 분산시켜 축소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있지만, 언제 고쳐질지는 모르겠다. 

- 신자유주의로 인한 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한국 교회도 자본주의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여, 큰 실망감을 주고 있다. 가난한 교회를 추구하며, 실천 방안으로 교회 재산과 수입 및 지출을 10분의 1로 줄이자는 소위 '십일조 운동'을 제안했다. 이런 방법으로 교회를 바꿀 수 있을까?

'십일조 운동'은 교회가 가진 재산을 10분의 1로 줄이자는 것, 즉 교회 재산의 90%를 버리자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현재 기독교나 천주교가 갖고 있는 재산은 가난한 사람이 볼 때 배신감을 느낄 정도로 많다. 무슨 일이든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생각이 큰 문제다. 그리스도교에는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일단 돈부터 끌어들이는 습관이 있다. 이것은 일반 기업이나 NGO에서 하는 일이지 그리스도교가 할 일은 아니다. 예수는 돈을 걷어서 교회나 성당을 짓지 않았다. 

프랑스의 경우는 국가가 교회 재산을 많이 빼앗았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가난하다. '십일조 운동'의 실질적인 방안은 무조건 현재 교회가 가진 재산을 버리는 것이다. 해마다 많은 건축비가 드는 성당을 몇 개씩 짓지 말고, 차라리 그것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성당에 오히려 사람이 꽉 들어찰 것이다. 

헌금을 줄이고 지출을 줄이자. 신부들은 골프장 가지 말고, 고급 차 타고 다니지 말고, 성당 안에 식복사를 고용하지 말고, 인건비도 크게 줄이자. 재산, 수입, 지출 다 줄이고 가난하게 살면 어떤가. 골프장에 다닌다는 신부가 가난한 사람에게 눈을 돌릴 수 있겠는가.

- 마태오복음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빈자와 약자를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문제 즉, 구조적인 '악의 문제'로 보고 정치·종교 권력에 저항했다'라고 할 수 있다.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구조적인 사회악에 더욱 도전하고 저항하려고 할 때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나. 

예수는 정치범이었다. 이런 관점에 대해 불경스럽다거나 낯설게 받아들일 사람도 있겠지만, 실제로 당시 십자가 처형은 정치범에게 부여되는 형벌이었다. 유대교에서 신성 모독에 해당하는 죄는 돌로 쳐 죽였다. 정치범은 로마군이 데려다가 십자가 처형으로 죽였다. 요즘은 사회 개혁 운동이나 정치권력에 대항하면 '좌빨'이나 '종북'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를 견뎌야지 어떻게 하겠는가. 사실상 이런 수모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를 두려워한다면. 신앙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 지금 가톨릭이나 개신교 신자 상당수가 신앙을 마치 보험의 한 형태로 택하고 있다. 예수를 팔아먹는 장사꾼같이 말이다.  

현재 종교인에게 성서 시험을 보게 한다면, 적지 않은 사람이 낙제 점수를 받을 것이다. 신학교에서도 교수는 피고용인이기 때문에 고용인의 눈치를 본다. 자기를 해임할 수 있는 사람의 눈치를 보면 행동과 글이 자기 검열에 들어가게 된다. 최대한 튀지 않게, 개혁적이지 않게, 반항적이지 않게 스스로 말과 글을 다듬는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그런 사람들을 가리켜 '어용 신학자'라 부른다. 할 말은 안 하고, 최대한 다듬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들, 그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지 않는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올바른 신앙심이다. 예수에 대한 존경심이자 예수에 대한 공감이다. 우리가 예수에 대해 정확히 알면 행동이 저절로 바뀔 것이다.  

- 4개 복음서(마르코복음, 마태오복음, 루카복음, 요한복음)를 바탕으로 한 시리즈 중 <슬픈 예수>(21세기북스 펴냄)와 <행동하는 예수>(메디치 펴냄)를 출판했고, 현재 <가난한 예수>와 <기쁜 예수>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예수의 삶'을 다룬 책이 2014년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 쓴 것도 있지만, 쓰다 보니 그 안에 메시지가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느낀 것을 쓸 뿐이다. 이번에 교황도 바뀌고 그를 중심으로 가난한 사람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생기다 보니, 나 역시 그 흐름을 타게 된 것 같다. 겨우 책 한두 권 낸 사람인데, 언론에서 많이 주목해 줬다. 일반인이 볼 때는 책 대부분이 그저 특정 종교의 경전 해설서에 불과하다. 보통 이런 경우에는 자기가 속한 교계 언론에서만 다루는데, 일반 언론에서도 많이 거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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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일

이 책들은 신학 공부 30년을 통한 사색의 결과다. 특히 '이 사회를 가난한 사람의 눈으로 보자'는 것이 주요 메시지다. 그런 차원에서 내가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강연료 받지 않기다. 작년 8월부터 강연만 20회가량 다녔는데, 차비도 받지 않았다. 책을 팔아서 생긴 돈은 그냥 기부한다. 언론사 원고료도 전부 기부했다. 이는 나의 신학 활동이다. 이를 통해 들어온 돈은 내 호주머니에 1원도 넣지 않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신학자가 자꾸 돈맛을 알면, 마음이 흐트러지고 건방져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예와 인지도 같은 것에 휘둘리면, 사람이 '버린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 책과 관련한 돈은 받지 않는다. 

- <행동하는 예수> 표지에 김수환 추기경, 문익환 목사, 전태일 열사, 체 게바라,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프란치스코 교황 등 예수와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을 담았다. 닮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성품으로 각자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이들을 '행동하는 예수'라고 비유한 이유는?  

예수와 비슷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한 사람을 뽑다 보니, 실제로 가난한 삶을 살며 역사의 희생자를 편들었던 사람을 선택하게 됐다. 이들이 종교를 갖고 세례를 받았는지 여부는 상관없다. 좁은 의미에서나 의미가 있지, 하나님 눈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개신교냐 가톨릭이냐'가 중요하겠지만, 결국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살았는지 아닌지 외에 중요한 것은 없다. 

- '체 게바라 평전'을 보면, 인격적인 결함과 관련한 증언이 많이 나온다. 예수와 닮은 사람으로 꼽힌 사람들조차 완벽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인격적인 결함은 단점이 아니다. 인간성의 표현이다. 나도 단점이 많다. 용기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길 때 주저하고, 더 행동해야 하는데 뒷소리가 싫어서 주춤거릴 때도 많다. 태생적으로 외로움을 많이 타다 보니 숨어버리고 절필하고 싶은 욕망도 아주 크다. 매일같이 붓을 꺾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그런데 가만히 기도하다 보면, '그러면 안 되지!' 하는 마음이 든다.  
    
- 예수를 닮은 삶, '예수의 삶'을 요약하자면? 

인간은 외로움을 가장 두려워한다. 외로움은 나이에 관계없이 자기가 갖고 있는 고뇌의 깊이와 관계가 있다. 예수는 참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의 외로움은 가족, 제자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것에서 비롯됐다. 심지어 예수가 사랑했던 가난한 사람들조차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어갈 때 너무도 외로웠을 것이다. 가족도, 제자도, 가난한 사람도 다 도망가고 그나마 남은 사람은 그를 향해 삿대질했다. 누가 죽는다고 하면, 와서 애도하고 인사하지 않나. 하지만 그는 죽을 때까지 외로웠다. 

예수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자기 목숨을 버린 삶'이라고 할 수 있다. 
  
- 평신도 신학자가 하는 이야기가 때로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성 교단에 소속된 사제나 목회자와 달리, 교계를 향해 자유롭게 비판하며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교계 기득권 세력의 불편한 시각도 있을 것 같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중 개혁파는 20퍼센트 정도도 채 되지 않는다. 성직자 중에서 그렇고 성도의 80퍼센트 이상도 보수파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내 편이 한 명, 반대 편은 네 명이다. 하지만 내가 다수에 속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옳은 말을 하는 게 중요하다. 예수와 다른 예언자들도 항상 주변에 반대자가 많았다. 나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다. 내가 보수파의 비난을 미리 막을 수도 없고, 그 비난을 내가 다 감당할 수도 없다. 결국 신앙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생각보다는 견딜 만하다. 내 사회적 지위나 서 있는 자리 때문에 말이 바뀐다면, 나는 이상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사제가 됐어도 할 말은 했을 것이다. 어떤 사제가 자신이 사제이기 때문에 할 말을 못 한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종교 단체처럼 핑계가 많은 데가 없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는 곳이다. 

- 라틴어, 스페인어, 독일어, 그리스어, 영어 등 5개 외국어를 구사하며 제주에서 외국어 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특별히 여러 외국어를 공부한 이유가 있는가.

이유라기보다는 삶과 학문의 터전을 그곳에 뒀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살면서 공부하기 위해 외국어 공부를 했다. 머리가 나쁜 편이지만, 장점 중 하나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될 때까지 했다.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면, 극복하고자 끝까지 노력했다. 그것뿐이다. 

- 천주교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다. '청년 김근수'는 어땠는가.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조상 중에 순교자가 많았다. 조부와 조모가 박해를 피해 산에 숨어 살면서 옹기를 구웠다. 가난하게 살았다. 원래 그런 순교자 집안에서 그대로 성장하면, 극도의 보수가 되는 게 정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대학에서 데모도 하고, 광주 신학대학에 다니면서는 5.18 민주화운동 분위기도 2년 정도 경험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지식적 고뇌로 더 개혁파가 된 것 같다. 학문적 탐구를 통해 개혁파로 자리 잡은 다음, 남미에서 해방 신학을 공부하면서 완전히 자리를 굳혔다.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는 것이 예수의 길'이라고 생각하면서 방향이 바뀐 것이다. 

- 사제의 길을 포기하고 지금과 같이 평신도 신학자의 길에 들어서기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이 과정에서 새로 겪은 어려움은 없었나.  

사제의 길을 포기했을 때 가족과 친지를 비롯한 주위 많은 분이 아쉬워했다. 그때 내게는 정서적 외로움뿐 아니라, 경제적인 외로움도 있었다. 2002년 제주도로 내려가 8평짜리 반지하 월세에서 딸과 아내까지 세 명이 살았다. 그러면서 영어 개인 과외를 시작으로, 학원까지 열게 됐다. 돌이켜보면, 하나님이 내가 한 끼도 굷지 않게 해주신 것 같다(웃음).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까지 지금 나는 아주 행복하다. 

-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자유로운 신학도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가 궁금하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웃음). 사랑에 대해 말하고 싶다. 가정법(假定法)으로 사랑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거 같다. 기혼자들이 부부싸움 할 때 종종 가정법 질문 탓에 다투기도 한다. '당신 내가 죽으면 장가갈 거야?'와 같은 질문 말이다(웃음). 그런 의미에서 '상대방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바라지 않는다'라는 원칙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아내가 내게 바라는 게 있겠지만 내게 없는 것이라면 아예 바라지 말아야 한다.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것을 바라면 그것은 곧 불만이 되고, 나는 미안해하게 될 것이다. 있는 것에 기뻐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어떤 꿈을 꾸고, 또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항상 '건강, 지혜, 용기를 달라'고 기도한다. 건강하지 않으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은 둘째 치고, 오히려 부담될 것이다. 또한, 지혜가 없으면 내가 하는 말이 그냥 무의미한 소리가 된다. 그리고 내 감정에서 비롯되거나 인기를 얻으려고 글을 쓰지 않고, '오직 진실을 용감하게 쓸 수 있게 해 달라'라고 기도한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활동하느냐는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시키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 또한 열심히 해 보려 한다. 나의 말과 글, 행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옳은가, 그른가' 여부다. '나에게 유익한가, 나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생각하지 않는다. 그밖에 개인적 소망은 유럽과 한국을 오가면서 새로운 신학의 흐름을 읽고 계속 공부하며, 이를 책으로 쓰며 살고 싶다는 것이다.   

- 동시대를 사는 청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에 이탈리아에 가보니, 그곳 청년들은 개인적 자유를 많이 누리지만 직장이 변변치 않고 흔들리는 것을 많이 봤다. 사회보장제도 덕에 먹고는 살지만, 인생의 목표가 뚜렷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의로운 길을 가라'는 것이다. 내가 어쭙지않은 인생을 살면서 자랑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면, 불의한 사람을 위해서 행동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거 하나는 자랑할 수 있다. 또한 결혼해도 행복하고, 안 해도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다. 결국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자기 스스로 행복을 추구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또 여러 외국어를 배우라고 하고 싶다. 보통 한국에서만 산다는 것을 전제로 앞날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세계로 생각의 폭을 넓혀야 한다. 여러 외국어를 하다 보면 살 수 있는 지역이 넓어지고 지역이 넓어지면 직업의 분야도 넓어진다. 직업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된다. 어떤 이는 나에게 '그렇게 공부하고 고작 학원 강사나 하고 있느냐'라고 할지 모르지만, 난 내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아주 높다. 신학도 하고 가족도 부양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있다.  

- 김근수에게 자유란?

우리는 보통 자유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자유'와 '해방'이라는 단어는 구분되어야 한다. 'freedom'과 'liberty'는 다르다. 자유는 억압된 상태에서 벗어나 내 의지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해방은 부정적인 것에서의 탈피가 주된 목적이다. '자유인'이라면 해방과 자유를 함께 설명해야 한다. 경제적 가난, 정치적 억압, 사회적 소외에서 벗어난 해방도 필요하고, 내가 살고 싶은 형태의 삶을 원하는 그런 선택의 자유도 필요하다. 

지금의 한국 사회와 유럽은 자유는 중요시하지만, 해방은 별로 다루지 않고 있다. 반대로 남미는 해방은 다루지만 제대로 된 자유는 영위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와 해방을 함께 추구했으면 좋겠다. 이를 위해 내가 현재 '무엇에 얽매어 있는가'를 반성해보면 좋겠다. 부모의 기대나 바람, 사회적 관습 등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우리는 각자 생각의 포로이기 때문에 생각에 자신을 가두는 경우가 많다. 평생 바뀌기 어려운 것이 '자기 생각에 갇힌 자신'이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쉬운 일이 될 수도 있다. 

또한 가난한 사람 편에 서거나 가난한 사람을 도울 때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거나 어딘가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이다. 가난한 자들보다 내가 우위에 있는 기분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이 들어간 가부장적 태도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 나를 똑같이 생각하는 마음'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볼 때 그 사람이나 나나 똑같이 소중하고 동등하게 본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똑같은 피조물인 것이다. 이 시각으로는 보면, 어디서든 당당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내가 똑같이 중요하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 인터뷰: 2014년 7월 24일
인터뷰어: 한림국제대학원대 정치경영전공 이재환, 정리: 정치경영연구소 손어진 선임연구원, 조경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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