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가 하는 일 중의 하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한국적 함의를 정치 및 정책적 맥락에서 찾아내는 일입니다. 과연 자유는 진보적인 걸까요? 그렇다면 그 구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진보적 의미의 자유를 스스로 누리고 있거나 타인을 위하여 퍼트리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나의 자유와 타인의 자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자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은 상호 어떠한 관계에 있어야 하는 걸까요? 정치경영연구소의 청년 연구원들이 자유와 관련된 이 많은 문제들을 현실에서 해결 또는 극복해가고 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 나서기로 작정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자유 이론가 혹은 실천가 분들께 (자신과 타인을 위한) 자유를 실천하는 방식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여쭤보겠다는 겁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젊은 저희들에게 자신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겁니다. 앞으로 모든 인터뷰 내용은 잘 정리하여 여기 이 자리에 항상 올려놓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저희와 함께 이 자유의 향연을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내용은 프레시안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세월호, 부패한 '관료 행복 국가'의 참사"


개천가의 붉은 장미가 만발하다. 아름다운 5월이라 더욱 슬프다. 만개한 꽃들과 안산 단원고 정문에서 시작한 노란리본 물결은 서울 시청과 청계광장으로, 전국 구석구석으로 너울져 그렇게 4월에게 잘 가라 인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잔인하기만 한 2014년 봄과 어떻게 작별(作別)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망자(亡者)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까.

 

세월호 참사가 도저히 믿기 어려워, 이상돈 교수는 지난 429일 팽목항으로 향했다. 역시나 이번 세월호는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였다. 그것도 예고된 인재. 이것은 개인의 슬픔을 넘어 사회의 비극이다. 어떻게 이 비극의 끝을 끊어낼 수 있을까?

 

세월호는 나쁜 것을 다 갖고 있었다. 크게 본다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던 세력들이 총체적으로 부패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세력들이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본다. 사건 당일 해양수산부(해수부)와 해양경찰 당국자들도 우왕좌왕했고, 청와대, 국무총리와 관계 장관들도 실제로 그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구조에 1차적 책임이 있는 현지 해경당국자들이 취한 조치도 미흡했다.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

 

그는 희생자의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었던 이번 세월호가 분명 이 사회에서 이미 자리 잡고 앉아있어 그 자리를 지키려는 어른들의 잘못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분명히 이야기 한다.

 

어느새 우리나라가 관료들만을 위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 '관료가 행복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지금 이런 비상사태에서도 관료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희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이나 하고 있고, “80명을 구했으면 많이 구한거다라는 언행을 서슴없이 한다. 관료제의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과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별도로 노는 것이다.

 

현재 관료체제에 큰 수술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다음 공공기관을 정리해야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인력을 대폭 감축하고, 화마와 싸우는 소방대원과 살인 등 강력범죄를 쫒는 경찰관들의 사기를 올려 주어야 한다.

 

언젠가부터 한국은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아니게 됐다. 행복은 돈과 권력과 목소리가 큰 자들의 것이 되었고, 거기서 청소년,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 등은 심지어 살아있을 권리까지 빼앗겼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진정한 자유는 사치다.

 

부당하게 살아 온 사람이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어떻게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는가 하는 것이다. 불공정한 상태에서 자유는 의미가 없다. 언론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 공정거래질서 확립 같은 것을 잘 지켜 자유로운 표현과 경쟁을 가능하게 해야 한다. 결국 자유는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와 그것을 수호하는 시민들의 주인의식이 만들어낸다.

 

과연 한국은 언제쯤 모든 시민이 자유롭고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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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 ⓒ프레시안(최형락)

-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한 달이 됐다. 이는 한국의 정치·경제·행정·교육·노동·언론 등 우리 사회의 총제적 부실이 드러난 사건이다. 해양환경 관련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나.   

너무도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일단 선장과 선원이 단 1명도 제복을 입지 않고 자기들만 살려고 먼저 탈출했다. '제복을 입는다'는 것은 명예와 의무를 갖는다는 말인데, 제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은 '최소한의 명예와 책무가 사라졌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처럼 선장과 선원이 승객을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탈출한 사례는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일이다. 세월호에서만 일어난 특별 상황이라고 믿고 싶다. 근처에서 조업하던 어선도 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거들었으니, 선원 전체를 비난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건 당일 해수부와 해양경찰 당국자들도 우왕좌왕했고, 이제는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의혹마저 제기된 상태다. 청와대 및 국무총리·관계 부처 장관들도 그 바다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랐다. 구조에 1차적 책임이 있는 현지 해경 당국자가 취한 조치도 미흡했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번에 비로소 알려졌는데, 해경 지휘부가 함정을 지휘해 본 경험이 없어서 바다를 잘 몰랐다고 한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 현장에서 일하는 해경 대원의 사기가 저조한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 이명박 정부에서 해수부를 없앴다. 그렇지만 역대 정부에서도 해수부의 역할은 늘 모호했다. 

<조선일보> 비상임 논설위원(1995~2003년)을 하면서 처음 쓴 칼럼이 '해양행정 총괄 기능 있나'였다. 1995년 7월 씨프린스 호 기름 유출 사고 직후, 해양 오염에 속수무책이던 당시를 비판하고 바다의 중요성을 감안해 각료급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씨프린스 호 사건을 계기로 해양수산부를 설치하는 논의가 다시 시작됐고, 이듬해 해양수산부가 발족했으며 해양경찰이 해수부 산하로 들어갔다. 해수부 발족에 대해선 나름대로 추억이 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노재봉 국무총리가 해양 관련 행정기능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당시 노 총리가 해양과 남극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해양 정책 총괄부서가 없어서 국무총리실이 임시로 맡았다. 당시 선박과 항구는 건설부 산하 해운항만청이, 수산업은 농수산부 산하 수산청이, 해양환경은 환경부가 주관했고, 해경은 경찰청에 소속되어 있었다. 총괄적 정책기능을 행사할 부서가 없었다. 

특히 해양환경 행정과 해양경찰 기능이 미미했다. 노 총리 지시로 몇몇 학자들이 해양 관련 정부기능을 개편해 해양부를 만들자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당시 해양환경 파트를 담당했다. 이 제안을 김영삼 대통령이 받아 1992년 대선 공약에 포함했고, 1996년 5월 30일 바다의 날을 선포하면서 해양수산부를 만들었다. 

해양 관련 부처를 만들었으니, 장관을 제대로 임명했어야 했는데 역대 해수부장관을 보면 그렇지 못했다. 바다와 관련한 일을 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어떤 장관은 자기가 생선회를 좋아해서 바다를 좀 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심한 노릇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 해양부를 없애려 했으나 반대 여론에 부딪혀 유지했다. 이를 이명박 대통령이 인수위에서 없애고, 국토해양부로 통폐합했다. 당시 해수부를 폐지할 이유는 없었다고 본다. 그러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해수부 부활을 약속, 취임 후 해수부가 부활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통솔력을 상실한, 무능한 부처라는 사실이 이번 일로 만천하에 드러났다.  

- '세월호 참사' 같은 재난이 발생했을 경우, 제대로 된 해수부였다면 어떤 조치를 해야 했나.   

사고 초기, 해수부와 해경의 태세가 너무 한심했다. 직무유기나 마찬가지였다. 관료적 타성에 젖어 있었다고 본다. 해수부보다는 해경에 1차적 책임이 있다. 해경은 현황 파악에도 늦었고, 현장에 필요한 장비와 인력도 보내지 못했다. 총체적 부실이다. 

미국 해안경비대 같았으면, 즉시 구조선박과 항공기를 투입했을 것이다. 미 해안경비대는 함정과 항공기 등 막강한 구조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해경은 기본적으로 태세가 되어 있지 않았고, 정부 고위 정책결정자도 상황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청와대 또한 국가 재난과 바다 상황을 아는 사람이 없었고, 그저 올라오는 보고나 받았던 것 같다. 변명할 여지가 없다. 정부가 무능했다고 본다. 총체적으로 무능했다. 

- 해수부뿐 아니라, 기획재정부·국토부 등 관료체제의 비정상성을 지적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을 정상화한다고 하지 않았나. 

여러 차례 공공분야를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의 1차적 타겟은 관료조직이고, 그다음이 공기업이다. 1950년대 우리나라는 관료제가 없었다. 대충 연고(緣故)로 공무원을 임명했다. 그러다 박정희 정부에서 공무원임용시험을 도입해 행정고시를 통해 뽑힌 인재가 나라를 이끌게 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들어오면서 관료제가 혁신을 거부하는 조직이 되면서 결국 경제 위기까지 몰고 왔다. 1997년 외환위기도 모피아 주도의 경제부처가 무사안일해서 발생한 것이라는 평가가 있다.  

어느새 우리나라가 관료들만을 위한 나라가 됐다.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아니라 '관료가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이다. 이런 비상사태에서도 관료들은 '강 건너 불 보듯' 한다. 희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이나 하고, "80명을 구했으면 많이 구한 것 아니냐"라는 말을 서슴없이 한다. 관료제 사고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국민과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에서 별도로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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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공무원들이 가장 긴장하는 때는 새 정권이 들어오는 시점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무총리나 장관이 누가 되는지를 살핀다. 이번에는 모두들 안도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총리·부총리·장관들이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박 대통령이 크게 잘못한 점이다. 잘못된 시그널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부친 시절에 관료들이 일을 잘해서 나라를 발전시켰다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지금 관료는 자기들 이익만 지키는, 그러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거대한 세력이 되어 있다. 

지금 관료체제에 큰 수술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과거 영국에서도 60~70년대 복지 행정이 커지면서 관료제가 비대해졌다. 거기에 마거릿 대처 총리가 철퇴를 가했는데, 공무원을 관리하는 부서를 없애고 5000명을 해고했다. 우리나라도 그런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다음 공공기관을 정리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 산하 기간이 너무 많고, 특히 용도를 다 한 기관이 많다.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가서 사장으로 있지만, 그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존재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이 공공부문을 개혁해 정부 부채도 줄여야 한다. 그리고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의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 책상에 앉아 있는 인력을 대폭 감축하고, 화마와 싸우는 소방대원과 살인 등 강력범죄를 쫓는 경찰관의 사기를 올려줘야 한다.  

- 공공분야나 공무원 개혁을 할 수 있는 주체는 대통령 한 사람인가. 

대통령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이것을 국정 아젠다로 걸고 솔선수범해야 한다. 대처는 총리 시절, 보좌관 자리에 단 한 사람의 관료도 기용하지 않았다. 관료를 '필요악'이라고 본 것이다. 정부는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고, 환경을 보호하는 사회규제 강화에 힘쓰고, 공무원은 현장에서 일하도록 해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을 대통령 혼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통령이 이에 대한 문제 인식과 각오를 하고 있지 않다면 불가능하다. 

- 지금껏 그런 식으로 높은 자리에 오른 관료(기존 공무원 포함)들이 반발할 텐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웬만한 관료는 '관료체제에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중앙관료뿐 아니라 지방 공무원도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다. 공무원을 줄여야 한다. 할 일 없이 노는 공무원 너무 많다. 중앙부서도 그렇지만 지방 공무원의 근무 기강은 너무 느슨하다. 

관료개혁은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 대통령과 그 주변의 의지가 없어서 이렇게 된 것이다. 이번에 못하면 나라 망한다. 

- 1970년 12월 남영호 사건, 1993년 10월 서해 훼리호 사건에 이은 '세월호 참사'는 수많은 청소년이 목숨을 잃은 비극 중의 비극이다. 이 비극을 끊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고를 없앨 수는 없다. 사고는 비행기, 선박, 기차 등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기본적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확률을 줄이고 만약에 발생했을 경우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시스템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 시스템이 굉장히 취약했다. 게다가 선장과 항해사가 임시직이었고, 안전관리가 전혀 없었다. 민간이 스스로 선박검사를 하는 구조였다. 이 기회에 연안 여객선 제도도 손봐야 한다. 

- 규제완화가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규제는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규제는 정부 기능 중 가장 중요한 것이다. 안전규제와 환경규제는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여기에 구멍 뚫린 것이다. 규제를 할 때는 항상 기준이 필요하다. 기준을 설정하지 않고 공무원의 재량에 맡길 때 부정부패가 생긴다. 기존 업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도 존재하는데, 이번 세월호가 그런 셈이다. 세월호가 속한 청해진해운은 인천-제주 간 운항을 독점하고 있었다. 즉, 규제로 신규 회사의 진입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항공에서 이런 규제를 풀었기 때문에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외 여러 항공이 생길 수 있었다. 그런데 항만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어떻게 청해진해운이 운항을 독점하게 됐는지 정확히 따져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나쁜 것을 다 갖고 있었다. 크게 본다면, 우리나라를 이끌어 왔던 세력이 총체적으로 부패한 결과다. 통렬하게 반성해야 한다. 

- 기업의 잘못된 경영방식에 기인하는 것은 곧, 자본에 대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 때문 아닌가. 앞서 지적했듯이, 세월호에서 승객을 두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과 선원 모두 비정규직 노동자다. 사람보다 경영 논리가 더 우선시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런 문제는 어떻게 극복될 수 있을까.

청해진해운은 분명 대표적인 천민 자본주의다. 솔직히 자본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병적인 집단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집단이 다중의 생명을 다루는 해상운송사업을 하게 된 경위, 또 이명박 정권 때 산업은행에서 융자를 얻게 된 경위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이번 사건을 두고 자본주의의 본질을 말하기는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선장과 항해사 같은 직종을 임시직으로 고용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임시직 선원이라도 정규직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이라면 좀 이해가 된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고 해도 임시직 선원에게 맹골수로처럼 유속이 빠른 곳을 운전하게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 세월호 침몰 사고를 한국 자본주의 체제 문제로 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본다. 청해진은 자본주의도 아니다. 

무한한 가격 경쟁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안전과 관한 분야에도 늘어나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사실 제조업도 원래는 비정규직으로 충원해서 안 되는 직종이다. 비정규직 제도의 남용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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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미국에서 국제법과 해양법을 공부했다. 학위 논문도 "해저 석유 개발에서 발생하는 해양오염의 법적 문제"였다. 해양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서울대대학원에서 헌법과 행정법을 공부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환경법과 해양법 등 접해 보지 못한 학문을 공부했다. 특히 환경 문제는 대학 시절, <타임>지를 구독하면서 관심 갖게 됐다. 대학 1학년이었던 1970년 환경 원년이라고 해서 미국에서는 '지구의 날' 시위가 있었다. 또 유엔해양법협약 막바지 협상이 한창이었기 때문에 법학도들이 해양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공부했던 튤레인 대학은 해사(海事)법이 강했고, 마이애미 대학은 해양법이 강했다. 해양법은 바다에 관한 국제법이고, 해사법은 선박 운항에 관한 규제법과 사법이다. 그중에서도 해양환경에 관한 법을 깊이 공부했다. 나에게 해양법을 가르쳤던 교수는 미국 해안 경비대(U.S. Coast Guard)에서 함장까지 하고 나중에 교수가 된 훌륭한 분이었다. 교수가 된 후에는 해양환경법 관련으로, 논문도 많이 썼다.  

- 80년대 초반은 한국에서 환경운동이 시작된 시기다. 미국에서 공부한 해양환경 지식이 한국 현실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었나. 

1980년에 환경청이 발족되면서, 교수가 된 후 입법과 관련한 자문 역할을 많이 했다. 우리나라에서 환경법과 환경행정이 본격적 궤도에 접어든 시기는 1990년대 들어서다.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이 큰 계기였다.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대응은 미국이나 유럽, 일본이 우리와 다르지 않다. 선진국에서 일어난 일이 결국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우리나라 환경법과 환경정책은 미국과 일본의 영을 많이 받았다.  

- 학자 입장에서 현재 환경운동을 어떻게 보고 있나.  

우리나라 환경운동은 최열 씨를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1990년대 경실련이 생기면서 함께 더욱 발전했다. 환경운동은 영향력이 대단했다. 동강댐 건설 반대운동과 새만금 간척사업 반대운동이 절정이었던 것 같다. 동강댐 포기는 김대중 정부가 잘한 조치라고 본다. 새만금 사업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인데, 김대중 정부가 호남 민심을 고려해 밀고 나갔다. 환경운동은 노무현 정부 시절, 기세가 대단했는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죽어버렸다. 

반면, 2001년 사패산 터널 반대운동과 2002년 천성산 터널 반대운동은 대중에게 안 좋은 인식을 심어줬다. 터널 건설을 무조건 반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환경운동단체에서는 극렬히 반대했다. 터널은 환경을 가장 적게 훼손하면서 도로나 철도를 만드는 공법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사패산과 천성산 터널 건설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번복해 여론이 더 악화됐다. 

교조적 환경운동은 오히려 환경을 저해한다고 생각한다. 환경단체가 패스트푸드점 앞에서 1회용품 사용 반대 시위를 하곤 하는데, 패스트푸드점과 한식당 중에 어디 환경이 더 나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한식당이라고 말하겠다. 종이컵은 태우거나 재활용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한식당에서 나오는 음식찌꺼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환경운동은 대중의 호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를 잃었고, 그 틈을 타서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을 할 수 있었다.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모든 것을 반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오히려 신뢰를 떨어뜨린다. 

- 반대나 비판의 이야기를 하기는 참 어려운 것 같다. 특히 정부와 자신의 이권이 밀접하게 관계된 사건은 학계에서도 침묵한다. 입장을 정하고 발언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지식과 경험에 의해서 '어떤 것이 진실이고 정의냐' 하는 판단이 나온다. (내 이야기하기는 그렇지만) 관심을 갖고 공부한 분야에서 나만큼 지식을 쌓은 사람도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기준에서 봤을 때 4대강 사업은 완전한 사기극이었다. 4대강 사업을 통과시킨 중앙하청관리위원회 위원 중 학자가 많았는데, 사석에서는 '4대강 사업을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더라. 연구비도 삭감되고, 위원회 위원에서도 탈락해 자신이 불리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배운 사람들이 부패 시스템 공범이 되어버렸다. 우리 사회 모든 부처, 대학 연구실 곳곳에 이런 현장이 퍼져 있다.  

- 학자로 '시대정신에 부응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후대에 좋은 나라를 넘겨주기 위해서는 우리가 이 시대에 해야 할 일이 많다.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을 끊어내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확립해야 한다. 지금 우리가 과거에 멀쩡한 사람을 잡아가서 고문하는 시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민주주의 법치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 부패는 아직도 만연해 있다. 더욱 정교하게 부패가 판치고 있다. 

정경유착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참사'는 정경유착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범죄적 결탁이다. 요즘 정경유착은 매우 정교하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규제완화를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규제는 개혁해야지 완화해서는 안 된다. 

교수는 신분을 보장받고 있다. 이런 특권을 좋은 목적에 써야 한다. 교수들은 그런 특권을 이용해 바른 말을 하고 바른 주장을 해야 한다. 내 자신을 학자로 지칭할 수 있는지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 비판적 보수주의자, 한국의 정통 보수주의자 등으로 불린다. 보수는 개혁보다는 이미 갖고 있는 좋은 것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은 진보의, 에드먼드 버크(Edmund Burke)는 보수의 철학적 뿌리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인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등은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웠지만, 프랑스 대혁명에서와 같은 과격한 실험을 배척하고 진화하는 개혁을 선택했다. 그들은 한쪽에서는 진보였고, 또 한쪽에서는 보수였다. 토머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은 내가 존경하는 정치인이고 사상가다. 몇 년 후가 될지 몰라도 더 한가해 지면, 그들의 일생을 다시 공부해 정리하고 싶다.  

보수는 어떤 항구적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측면에서 진보와 차이가 있다. 그 가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개인과 사회의 윤리, 개인의 자기 결정권, 사유재산 제도'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보수주의자들이 과다한 복지에 반대하는 것은 그것이 거대한 관료국가를 만들고 개인을 정부에 예속시킨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도 '부(富)의 재분배' 같은 용어에 저항감을 느낀다. '복지확충'이란 용어보다는 '사회 안전망 확충' 같은 개념을 좋아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요양원이 국가 보조금 타기 위해 환자 상태를 억지로 질질 끌어서 입원을 늘리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런 상황에 빠지면 개인이 자기 힘으로 서지를 못한다. 요양원 밖에서 버텨야 사람이 자립해서 사회에 복귀하는 것 아닌가.  

-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젊은 세대가 살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역동적이어야 한다. 사회가 역동적이기 위해선 민간분야에서 크건 작건 성공하기도 또 실패하기도 하는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대통령이 창조경제를 한다고 했는데, 창조경제는 민간에서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 관료가 중심이 되어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비창조적인 집단이 관료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지정학적으로 위태로운 사회이지만 소규모 창업들이 일어나는 사회적 전통이 있다. 과거 이스라엘 총리 자손 중 IT 엔지니어가 많다. 사회 분위기가 그래야만 젊은이들에게도 미래가 있고, 나라에도 미래가 있다. 젊은이들의 소원이 공무원이 되겠다는 데 있다면, 그 사회는 문제가 있는 거다. 이런 사회분위기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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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시안(최형락)

- 이상돈에게 자유란?

어떤 사람이 진정으로 자유를 느끼려면 모든 면에서 당당해야 한다. 부당하게 살아온 사람이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 사회에 자유로운 토론이 없으면 민주주의가 설 수 없고, 자유로운 경쟁이 없으면 그 나라의 경제와 사회가 제대로 설 수가 없다. 자유는 역동성의 기초고, 그게 없으면 개인도 사회도 쇠퇴한다. 

문제는 '어떻게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불공정한 상태에서 자유는 의미가 없다. 언론의 자유, 사법부의 독립, 공정거래질서 확립 같은 것을 잘 지켜야 자유를 지킬 수 있다. 결국에는 시민들의 주인의식이 그런 장치를 수호한다고 생각한다. 

/ 인터뷰: 2014년 4월 8일
인터뷰어: 정치경영연구소의 손어진 선임연구원, 인터뷰 정리: 손어진, 조경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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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 20명만 반대해도 멋대로 못해"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안타깝게도 소위 진보진영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쪼개졌다 합치기를 반복해왔다. 생각과 비전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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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한국 사회 풍향 바꾼 대사건" "질문이 있는 교실, 우정이 있는 학교" 아침 7시 30분, 그 이름도 우습기 짝이 없는 0교시 수업을 시작으로 꼬박 다섯 번의 수업이 진행된다. 점심을 먹고는 세 번의 수업이 더 이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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