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박원순 시장님, '서울-TOP CARD' 만들어 주세요!
삶을 바꾸는 작은 정치


박원순 시장님, 얼마 전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통령 선호도 1위를 차지하셨더군요. 축하합니다. 소탈한 면모뿐 아니라, 시민들과 소통하려는 진심을 점점 더 사람들이 알아가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저는 (당연히 굵직한 의제들도 다루시겠지만) 시장께서 시민들이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작고 구체적인 변화에 많은 관심을 보여 기대가 큽니다. 이렇게 공개편지를 드리는 것도 시장님의 '삶을 바꾸는 정치'에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보태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초등학생 아들을 둔 아빠로, 아내와 함께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있는 대부분의 가족처럼, 주말이면 저희도 이런저런 고민에 빠집니다. 집에 있으면 아이가 심심해하고, 함께 놀아주자니 사내아이의 넘치는 에너지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컴퓨터를 허락하곤 합니다. 편안함도 잠시, 곧 후회가 밀려오죠. 아이가 컴퓨터 앞에서 떠나려 하질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결국 밖으로 나서야 합니다. 

아이가 신나게 놀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이어지는 곳을 찾게 됩니다. 물론 비용도 무시할 수 없죠. 독일에서도 조건에 맞는 곳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아이의 성장단계와 흥미가 맞아야 하기 때문이죠. 혼자서 찾을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기도 하고요. 결국 지인들이 추천한 곳을 가는데, 비슷한 몇 군데를 매번 가는 난감한 상황이 됩니다. 

그러던 중 독일에서 오래 생활한 부부에게 카드 하나를 소개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부터 이 카드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름은 'Ruhr-TOP CARD'. 제가 거주하고 있는 독일 루르(Ruhr) 지역 인근 도시에 있는 수영장, 박물관, 유람선, 놀이동산을 무료나 반값으로 이용할 수 있는 카드입니다. 일종의 '연간 지역 문화 회원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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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Ruhr-TOP CARD 견본. 왼쪽은 어른용, 오른쪽은 아동용, 뒷면은 각각 본인 서명을 해야 한다. ⓒ장보문

유효기간은 1년으로, 구입 후 1년이 아니라 2014년, 2013년 이렇게 달력 날짜로 1년입니다. 따라서 가급적 연초에 구입하는 것이 유리하죠. 가격은 대략 어른이 50유로 (7만 원, '1유로' 1400원 기준), 아이는 34유로(4만7600원) 입니다. 대충 계산해서 입장료 10유로(1만4000원)인 곳을 다섯 번만 가도 7만 원에 달하는 기본 회원비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부터는 무료로 들어가는 셈이라, 이때부터는 많이 다니면 다닐수록 이익입니다.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시설만도 100여 곳에 이르고, 입장료 절반에 해당하는 가격만 받는 곳도 40여 곳이나 됩니다. 1년 내내 매주 쉬지 않고 50주만 다녀도 무료입장이나 다름없는 곳 전부를 갈 수 없습니다. 단, 한 사람이 카드 한 장만 구입할 수 있으며, 카드 하나로 한 곳에서만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최대한 여러 곳을 다니게 하려는 의도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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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입장 가능한 100여 곳 중에서 일부만 정리하여 소개한다.(www.ruhrtopcard.de)

저희 가족은 2013년도 카드를 구입해서, 레고랜드 디스커버리센터(Legoland Discovery Center), 고고학박물관, 자연사박물관, 노동박물관, 수영장, 야외놀이공원, 동물원, 유람선 등을 이용했습니다. 당연히 지금은 2014년도 카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2년 이상 연이어 사용하는 회원은 5유로(7000원)를 할인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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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스페셜 프로그램이 추가되는데, 2014년에는 퀄른 동물원(Köln Zoo) 무료입장(원래 가격 17,5유로 / 2만4500원)과
뮤지컬 '시스터액트' VIP관람권을 할인해 준다. 왼쪽 상단과 오른쪽은 방문했던 쾰른 동물원, 왼쪽 하단은 '시스터액트' 홍보물이다.

2년을 써 본 사용자 입장에서 Ruhr-TOP CARD의 장점은 이렇습니다.

▲ 일단, 비용이 저렴하다.
: 최소 다섯 번만 사용해도 기본 회원비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 매주 갈 곳을 찾는 수고를 덜 수 있다. 
: 이용 가능한 곳 중에서 고르면 되니까요.
▲ 아이의 흥미를 찾아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다. 
: 부모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어디에 흥미를 보이는지를 찾아 계속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롭고 다양한 경험이 필수적인데, 카드 덕에 저렴하게 다양한 곳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사람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의 작은 박물관이나 체험공간도 알 수 있다. 
: 사용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규모는 작지만 내실 있는 곳이 인근에 의외로 많다는 것이죠. 

물론 이곳에서도 유명하고 큰 놀이공원은 Ruhr-TOP CARD 등록리스트에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이런 곳은 스스로 홍보할 수 있는 자금도 인력도 충분하니, 굳이 이런 회원권에 가입할 필요가 없죠. 규모는 작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친근감 있게 운영되는 지역의 내실 있는 곳에 이런 카드가 필요하죠. 이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홍보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고, 이를 통해 방문객도 늘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박원순 시장님. 저는 이런 카드가 서울에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세히는 몰라도 서울 곳곳에 숨겨진 크고 작은 박물관과 수많은 공연, 문화재 등을 비롯해 대장간, 구두·목수공방 등 특색있는 체험 공간이 많을 것입니다. 이곳 모두를 카드 한 장에 담아 촘촘히 엮어 주셨으면 합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의 유혹을 뿌리치고, 가족들이 주말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아이들마다 가지고 있는 흥미를 발굴할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또한 작지만 개성 있는 박물관과 다양한 공연 등이 서울 곳곳에서 터 잡고 자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건이 된다면, 경기도로 강원도로 전국으로 넓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5 서울-TOP CARD를 기대하며, 
독일에서 한 아이의 아빠 장보문 드림

/ 장보문 독일 보훔대학교 의학대학 본과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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