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덴마크 '국민행복' 비밀, 알고보니 정치!
<유럽르포19> 덴마크의 생활 정치


"덴마크에서 찾은 행복의 비밀"

2006년 봄 출판계를 대표하는 10대 키워드는 '행복'이었다. 마침 군대를 제대하고 세상과 소통하며 사회에 관심을 갖겠다고 마음먹은 터라, 행복 전문가 6인이 밝힌 행복의 심리학 책 <행복>에 눈길이 갔다. <행복>(리즈 호가든 지음, 이경아 옮김, 예담 출판)은 영국 BBC에서 방영된 4부작 다큐멘터리 "슬라우 행복하게 만들기(Making Slough Happy)"의 내용을 책으로 옮긴 것이다.

실제로 '내 자신이 행복한가?'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나에게 책은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을 설명하고, 행복은 막연한 주관적 느낌을 벗어나 실질적이며 측정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유니세프에서 발표하는 행복지수에서 한국이 항상 하위로 분류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국가로 높은 GDP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행복지수는 늘 하위에 머물러 있다. 많은 사회학자는 낮은 행복지수의 주된 원인으로, 소득 불평등과 양국화 문제를 꼽는다. 경제 성장에 비해 소득분배와 사회의 안정성 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념적으로는 이런 사실을 이해하고 있지만, 한 나라에서 오랫동안 교육받고 그 환경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행복'은 말로만 강조하고 되뇌다 기억 속에 잊힐 뿐이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덴마크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나는 교환학생으로 덴마크에 오게 됐다.(<포브스>는 매년 '가장 행복한 나라' 순위를 매긴다. 덴마크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전 세계 155개 국가 중 '가장 행복한 나라' 1위에 꼽혔으며, 최근 4년 동안은 2위를 차지했다. 현재 '가장 행복한 나라'는 노르웨이다. 편집자)

때마침 '행복'을 주제로 한 KBS 다큐멘터리 제작에 코디네이터로 동행했다. '행복지수'라는 개념을 인지하고 덴마크에서 3년 반이란 시간 동안 이들과 어울리며,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 시스템 안에서 덴마크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의 이유를 조금씩 알게 됐다. 2011년 1월 2부작으로 방송된 KBS 스페셜 <행복해지는 법>은 국내외 최고 행복 전문가들과 함께 행복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밝히고, 행복에 이르는 비밀을 인터뷰 및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했다.

덴마크 사람 대부분은 학벌과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걱정 없이 소신 있고 평등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한 뒷받침으로는 투명한 정치, 정부의 효율적인 운영, 그리고 높은 수준의 사회 신뢰도를 꼽는다. 국민들은 많은 세금을 내지만, 다양한 복지시스템을 통해 의료비와 교육비 등의 혜택을 받으며 사회공동체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갖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덴마크의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를 알수록 한국이 갖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한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게 됐다. 개인의 행복이 아니라, 다수 혹은 사회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부분들이 개선되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세계에서 가장 투명한 정치를 하는 덴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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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국회의사당인 크리스천보 궁(Christiansborg Palace) 앞에 덴마크와 한국 
양국의 국기가 게양되어 있다. 2013년 10월 20일~22일 당시 정홍원 국무총리가 
덴마크를 방문하던 시기였다. ⓒ김희욱

지난 2011년 5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하는 새로운 차원의 협력모델을 제시하며 '한-덴마크 녹색성장동맹회의'가 출범한 이래, 실제로 많은 공공기관에서 신(新)재생에너지·교육·복지 등 많은 분야에 관심을 갖고 덴마크를 찾는다. 올해 10월 3차 회의가 코펜하겐에서 열렸으며, 정홍원 국무총리가 참석해 '그린십(친환경선박ㆍGreen Ship) 및 해양플랜트 협력'을 논의했다.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로 많은 부분에서 선진국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정부에서 추구하는 탄탄한 복지제도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질 높은 복지 혜택을 받아도 실제로 행복감을 못 느끼거나 금방 둔감해질 수 있기 때문에, 덴마크가 높은 행복지수를 유지하며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이유를 '복지'만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높은 사회적 신뢰에서 만들어진 건강한 사회공동체, 즉 덴마크 사람들이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믿음' 때문이다.

이런 신뢰 사회 구축의 배경에는 덴마크의 정치가 있다. 지난 여름, 덴마크를 찾는 한국 관광객을 안내할 때 가장 호응이 좋았던 곳은 덴마크 국회의사당인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Christiansborg Palace)'이었다. 이곳은 현재 여왕의 알현실, 총리실, 대법원 및 왕실접견실로도 쓰이고 있다. 특히 한국 관광객의 이목을 끈 것은 국회의사당 입구 정면에 조각된 '사통(四痛, 이(齒)·귀·머리·위(謂))'을 표현한 조형물이었다. '사통' 석상은 탈(脫)권위적인 덴마크 국회의 상징으로, 국민의 고통을 생각하는 건강한 정치를 염두에 두고 국회에 입문하라는 메시지를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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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의 국회의사당인 크리스티안스보르 궁전 ⓒhttp://blog.daum.net/jhmost/17346255


"국민의 참여로 형성되는 신뢰감 그리고 건강한 정치"

민주주의를 외치던 한국 사회 각계각층에서도 이제 '권위주의'는 많이 사라진 듯하다. 하지만 가끔 화제가 되는 국회 영상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마치 상석에서 아래층에 호통을 치며 특권층 행세를 하는 듯 보인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국민일지라도 출퇴근 시 자전거를 이용하는 덴마크 국회의원들의 서민적인 모습에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10월 덴마크 방문했을 때 나란히 걸린 한국과 덴마크 국기 뒤에 자리한 '사통' 석상을 멍하니 쳐다봤다. 석상은 감시자의 매서운 눈으로 덴마크의 부패사건을 적발하는 고발 기자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덴마크 사법당국은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 진상을 확인하고 다시 언론을 통해 그 결과를 공표한다. 최근 전 야당 총리 겸 현 글로벌녹생성장기구(GGGI) 이사회 의장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Lars Løkke Rasmussen)의 1등석 호화출장이 정 총리 방문 일정에 맞춰 논란이 됐다. 국제기구활동을 명목으로, 국민의 세금으로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다니 고발 기자들에게 직격탄을 맞은 사건이다.

제3자가 보기에 다음 선거를 공략한 여당의 트집 잡기일 수도 있지만, 덴마크의 젊은이들의 반응과 사건 이후 현저히 떨어진 지지율을 보면 국민의 관심이 정치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덴마크 국회의 자전거 주차장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보좌관도 없이 의전 차량이 아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이유 또한 정치에 관심이 많은 국민들 때문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80%가 넘는 덴마크 평균 투표율이 말해주듯 국민 대다수는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국회의원의 행동 하나하나를 국민들이 감시한다. 이렇게 감시하는 눈이 많으니, 국회의원들이 필요 이상의 월급을 받거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당 총재가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때문에 1등석 비행기를 타고 다니다 적발된 전 총리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런 생각에, '정치'라는 단어의 뜻도 몰랐던 나를 돌이켜보게 된다. 한국이 OECD국가 중 선거투표율이 가장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통령 후보자에게 관심을 두고 투표해본 적이 없으며, 언론에 늘 등장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싸움과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그저 한숨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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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선거 투표율 ⓒhttp://www.idea.int/vt/countryview.cfm?id=63


최근 덴마크 지방선거 투표율을 보면, 국민들이 행복하고 건강한 사회공동체 형성에 높은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히 사회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강한 신뢰감은 민주주의의 질과 삶의 질이 함께 향상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잘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은 사회공동체 속에서 나라가 잘사는 것인데, 오랜 시간 동안 치열한 경쟁의식 속에 '내가 잘사는 방법'만 고민해 온 자신이 부끄럽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동안 한국이 정치 선진국을 향한 정거장에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믿으며, 스웨덴 구닐라 칼슨(Gunilla Carlsson) 전 총리의 말을 인용하려 한다.

"정치는 특별한 사람이 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더 좋은 사회를 만들이 위해 보통 시민이 참여하는 보통의 일이다."

/ 김희욱 덴마크공업대학교 교통·물류전공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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