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벨기에처럼 '종로 피맛골'에도 거리축제가 열린다면?
<유럽르포18> 벨기에, 동네 길 걷기


2013년 9월의 어느 토요일 늦은 아침, 집 앞 길가에서 흔치 않은 음악 소리가 들렸다. 테라스로 나가보니, 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내놓고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한쪽에 마련된 간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고, 학생들은 북을 치며 행진하고 있었다. 매년 집 앞길(티엔세, Tiense straat)을 중심으로 열리는 거리축제였다.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집 앞 길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였지만, 이날만큼은 동네 일원이 돼 설레는 마음으로 작은 거리축제를 즐기며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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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루벤의 티엔세 거리축제 풍경. 거리축제 기간 동안 지역 주민들은 이 길의 약 700m 구간 안에서
물건을 판매한다. 작은 광장에는 아이들을 위한 간이 놀이시설 등이 설치돼 있다. ⓒ김준우

행사 자체는 동네 장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상점 앞에는 주인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내놓고 홍보를 하기도 하고, 다른 지역 주민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작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꼬마 아이들이 자기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내놓고 판매하는 것도 눈에 띄었다. 길 한편에는 벨기에 와플이나 이탈리아 피자를 파는 먹거리 가게, 골동품을 파는 가판대들도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인 지역 합창단이 노래까지 부르니, 거리축제 분위기는 한층 흥겨웠다. 축제 규모도 크지 않고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아 약간은 촌스러운 느낌이었지만, 옆집 케밥 가게 사장님과 처음 인사도 하고 직접 만든 음식을 시식도 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소속감과 애착을 느꼈다. 루벤의 '티엔세'는 이전에 보았던 거리축제와 느낌이 사뭇 달랐다. 축제를 경험한 후, 우리 집 앞길과 동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이에 도시건축 전공자가 아닌 지역 주민으로서의 호기심으로 집 앞의 길과 동네, 유럽 도시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한다. 벨기에 작은 도시 루벤의 어느 길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유럽의 길과 건물의 관계를 가볍게 살펴보고, 한국 도시의 길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겠다.

'대학 도시' 루벤을 통해서 본 유럽의 길과 건물

축제가 열린 길은 티엔세(Tiense)로, 루벤(Leuven)이라는 작은 대학 도시의 오래된 길이다. 벨기에 브뤼셀 동쪽에 위치한 인구 10만의 작은 대학도시 루벤은 옛 성곽을 따라서 원형으로 도시가 이루어졌다. 중심지를 감싸고 있는 제1 성곽과 외곽의 두 번째 성곽을 따라 도시가 형성됐다. 현재 제1 성곽 자리는 도심 속 공원에서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있고, 외부 성곽자리는 외부순환도로로 활용되고 있다. 루벤의 직경은 2km 정도로, 자전거를 타면 20분 안에 도시를 관통할 수 있을 정도로 작다. 도시의 시작은 9세기 이전으로 알려졌고, 1425년 루벤가톨릭대학(KU Leuven)이 설립되면서 현재 대학도시의 모습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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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7년 루벤 옛 지도. 도시 중심을 감싸고 있는 제1 성곽과 도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제2 성곽이 지도에 표현되어 있다. '티엔세 길'은 도시 중심 광장에서 동남쪽 방향의 성벽
밖 티엔넨이라는 도시까지 연결되어 있다. 즉, 이 길의 이름은 티엔넨으로 가는 길을 표시하는
명칭이다. 이런 방식으로 서쪽 브뤼셀(Brussels)로 가는 길은 '브뤼셀 길(Brusselsestraat)',
남쪽 나무르(Namur)로 가는 길을 '나무르 길(Naamsestraat)'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이 지도에 표시된 길과 광장은 대부분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Citie of the World, p216


루벤은 다른 중세 유럽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지역 영주를 중심으로 도시가 조성되었다. 방어를 위해 성벽을 쌓고, 교회를 중심으로 시장 광장이 조성하고, 그 광장에서 외곽 방향으로 길이 만들어졌다. 성문과 광장까지 연결된 길이 형성되면, 이 길은 성문 넘어 다른 도시와 연결된다. 그 후 중심 광장과 성문을 잇는 주요 길 사이로 다양한 형태의 길이 생긴다. 이 길들은 지형적 요인, 사회-문화적 요인, 경제적 요인 등 다양한 요소로 자연 발생되거나 또는 계획된 것이다. 각각의 길은 오랜 시간 다양한 형성배경이 지층처럼 쌓여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길이 형성되면 그 주변으로 건물이 세워진다. 도시 사람들의 이동과 활동이 이 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물은 길옆에 세워진다. 특히 유럽 도시는 성벽 내에서 활동했어야 했기 때문에, 성벽 내부의 건물들은 비교적 높은 건축 밀도를 가진다. 길가에 되도록 많은 건물을 세우기 위해 건물 입구와 길 사이에 정원 등의 매개 공간을 두지 않고, 길에서 바로 건물로 진입하게 구성되어 있다. 길과 건물의 직접적인 연결은 둘 사이의 연관성을 높이며, 길을 중심으로 도시 활동이 일어나고 확산되는 효과를 발생한다.

특이한 것은 시청부터 서민주택까지 여러 종류의 건물들이 각자의 중요도와 경제력에 따라 위계가 다른 길에 위치한다는 것이다. 루벤의 경우, 중앙 광장 변에는 성당과 시청 건물이 자리하고, 광장 변 옆 혹은 주요 도로 변에는 당시 부유했던 상인 조합(길드, Guild) 건물이 들어섰다. 그리고 노동자 혹은 하층민들이 사는 가옥들은 주요 도로에서 가지를 쳐 내려온 좁은 도로변에 위치한다. 루벤 옛 지도를 보면 길을 중심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이 형식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길옆의 건물들

길옆에 세워진 건물들은 서로 벽을 맞대고 붙어 있다. 많은 인구가 성곽 내에 살고 있는데, 길은 한정되어 있고, 그래서 가로 변 공간 절약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건물 벽을 맞대어 세우다 보니 길을 중심으로 건물들이 줄을 맞춰 자리하게 되었다. 이는 공간 절약뿐 아니라 각 건물의 입면 장식 혹은 재질 등이 다르더라도 길을 중심으로 한 건물의 규칙성을 형성하게 됐다. 티엔세 길의 옛 사진에서도 길을 중심으로 건물이 연속되어 있으며, 이를 통해 다양한 입면의 건물들이 조화롭게 자리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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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0년 경 티엔세 길 모습. 2013년 9월 티엔세 거리축제 풍경 중 우측 하단 사진과 비슷한 위치로,
과거와 현재 모습을 비교해 볼 수 있다. ⓒhttp://leuven.weleer.be/?n=337

중세시대에서는 길에서 보이는 건물 전면 폭을 기준으로 세금을 산정했기 때문에, 전면 폭이 넓지 않은 건물들이 많이 세워졌다. 이 세금 때문에 많은 건물들이 전면 폭을 최소로 하는 대신, 건물의 깊이와 높이는 늘려 부피를 확보했다. 아직까지도 많은 유럽의 건물들은 전면 폭은 좁지만, 안쪽으로 길고 여러 층을 갖고 있는 형태다. 이런 영향을 받은 싱가포르, 베트남 등 일부 아시아 국가도 지금까지 유사한 건물 형태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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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49년과 2013년 건물 블록 비교. 티엔세 길 중 첫 번째 성벽 외각에 면한 블록 확대 사진이다. 
왼쪽 1649년 지도를 보면, 가로를 중심으로 건물이 마주보는 형태로 건축되었다. 블록 안쪽은 개별 정원,
혹은 농장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현재도 가로를 중심으로 건물들이 붙어 있으며,
블록 안쪽은 개별 정원이나 창고 등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Map of Leuven, 1649, 
The Atlas Van Loon / 항공사진, 2013, Bing M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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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전면과 후면 사진. 왼쪽 사진은 티엔세 길 가에 세워진 건물의 전면이다. 오른쪽 사진은 전면
건물의 후면으로, 내부 공간이 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김준우

길에서 보는 건물의 전면은 비슷한 크기의 여러 건물이 연결된 긴 건물처럼 보인다. 그리고 보행자들이 볼 수 없는 건물 뒤의 공간이 존재한다. 건물 전면이 공공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면, 건물 후면은 이와 구분된 거주자 개인의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중세의 집 후면 공간은 정원, 녹지, 혹은 경작지로 활용되었으며 개별 가구들의 선호에 따라 현재까지도 활용되고 있다. 적정한 인구 밀도와 쾌적한 주거환경 유지를 위해 집 후면 공간에는 건물을 지을 수 없도록 법적으로 규제해 여전히 정원, 마당, 주차장 등 개방적 성격을 가진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다시 말해, 전면의 연속된 건물 형태는 후면 공간을 안락하게 구분해주는 연속된 보호 벽 역할을 하고, 후면의 비어 있는 개인 공간은 내적 개방감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 비록 내부 개인 공간의 경계에 담을 설치하여 옆집과 교류가 일어나기 쉽지 않으며 공간의 관리가 잘 안되면 인접 거주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지만, 나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다는 점에서 거주자들에게는 소중한 공간이다. 길을 중심으로 한 건물 전면이 사회적 공간이라면, 건물 후면은 도시 분주함에서 분리된 개인의 심리적 안정을 꾀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는 셈이다.

유럽과 한국의 가로 환경 비교

티엔세 길과 한국의 일반 건물의 가로 환경을 비교하기 위해, 서울에서 비슷한 물리적 조건을 가진 도로를 찾아보았다.

티엔세 길의 경우, 도시 중심부의 잘 조성된 길이라기보다는 유럽의 일반적인 거주지에서 볼 수 있는 아스팔트 포장·일반 통행·노상 주차 등 특별하지 않은 가로 환경을 가지고 있다. 넓지 않은 지역 상권을 중심으로 자리해 있으며, 가로 변에 비어 있는 상점도 종종 눈에 띄는 특별하지 않은 곳이다.

서울 양재동에서 티엔세 길과 건물 밀도, 도로 폭, 노면 주차, 보도, 상권 등 비슷한 환경을 가지고 있는 길을 찾아보았다.(대략적인 비교를 위해 필자가 임의로 선정한 사례로서 구체적인 데이터보다는 가로 분위기를 중심으로 비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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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엔세 길(왼쪽)과 서울 양재 동산로2길(오른쪽) 비교 사진. ⓒGoogle Map 항공사진

비교 사진을 기준으로 두 사진의 차이점은 길의 밝기, 보도, 가로등, 전봇대, 전깃줄, 간판 크기, 건물 입면 재료 및 색, 건물 사이 공간, 건물의 높낮이, 주차 공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의 가로 환경이 좀 더 햇빛이 잘 들어온다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건물 간 간격을 두고, 주차공간을 건물 전면 및 측면에 별도로 두기 때문에, 가로에 햇빛이 들 빈 공간이 많다. 하지만 유럽 건물들은 방향에 따라 가로에 연속된 그림자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유럽의 오래된 길은 보행자, 자동차, 자전거 통행이 함께 이루어지면 좁고 쾌적하지 못한 반면, 한국의 길보다 가로등과 전봇대, 전깃줄이 좀 더 잘 정리된 느낌이다. 가로등을 별도 설치하기보다, 건물 벽에 설치해 보행에 방해되지 않게 한다. 전깃줄 등 여러 케이블도 지하에 설치해 거리에서 최대한 전선이 보이지 않게 했다. 간판도 한국처럼 튀어 보이기 위해 현란한 색을 사용하기보다, 가게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설치한다. 전기비가 한국 보다 비싸기에 부피가 큰 간판이 거의 없으며, 오후 6시 이후에는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는다. 필요 시 야간에는 외부 조명을 켜 간판 정도를 보이게 하는 게 전부다.

한국의 길은 건물 입면의 경우, 석재·알루미늄 패널·벽돌·타일·콘크리트 등 다양한 재료와 색이 나열되어 있어 통일성을 찾기 힘들다. 유럽은 벽돌 및 콘크리트 건물이 혼재되어 있지만, 색체가 고른 편이어서 붙어 있는 벽체로 건물 간 연속성이 느껴진다. 건물 사이사이 비어 있는 공간이 없고, 건물의 벽면선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건물 입면이 다른 재질과 디자인으로 구성되어 있어도 전체적인 규칙성이 보인다. 건물의 높이 또한 한국과 다르게 일정해, 가로에 따라 건물의 연속된 통일성도 느낄 수 있다.

벨기에는 주차 공간 부족 문제를 노상주차, 일방통행 등을 통해 풀고 있다. 물론 차량 이동거리가 늘어나 거주자의 불편이 있긴 하지만, 주민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노상 주차의 경우, 주차 기준을 최대 2시간까지 적용하여 주중 시간에 주차 공간 확보를 유도하고 있다. 장기 주차의 경우, 거주지 내 주차장 확보 혹은 외곽지역 공용주차장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각 건물의 주차장 확보는 구조상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건물 후면 혹은 1층 차고 변경을 통해 주차 공간을 확보 하고 있다. 주차장 설치는 건물 연속성을 해치지 않는 틀 안에서 이루어지며, 공간이 부족하면 옆집 주차장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등 기존 가로 조직 안에서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해결방안은 자전거 이용 권장과 함께 진행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주요 도시 내 교통수단으로 사용해 기존 도시 조직 안에서 주차문제를 해결 하고 있다.

활동하고 공유하는 길

한국에도 인사동 길과 가로수 길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길뿐만 아니라, 집 주변에서 생활의 중심이 되는 길이 많이 있다. 하지만 이런 길들 중 아파트 단지 개발, 대형 마트 개발 등을 통해 옛 활력을 잃은 길도 많다. 길이란 주변 건물과 함께 영향을 주고받기에, 주변 건물이 큰 규모로 재개발 되면 길 또한 큰 변화를 맞는다. 한국 도시의 길 중 주변 개발로 오랜 시간 축적된 의미를 잃어버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몇 년 전 사라질 위기에 몰렸던 '종로 피맛 길(피맛골)'도 같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길에서 개인의 활동이 일어나고, 이런 활동은 길과 연결되어 기록되며 의미가 재창조된다. 오랜 시간 수많은 사람들의 활동이 길 위에서 일어났고, 여기서 생성된 가치가 많은 사람들과 계속해서 공유되고 있다. 거리의 상점들을 통해 만들어진 '상권'이 개인의 소유가 아닌 길에 면한 상점들의 공통 자산인 것처럼, 길에서 공동의 가치가 생성되고 이는 다시 사람들과 공유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고 상권도 활성화되어 있지 않은 유럽의 작은 동네 길에서, 시간의 가치를 중시하고 그 안에서 지역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가는 길의 의미를 읽어봤다.

유럽의 길은 자동차라는 새로운 문명의 이기를 물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그 안에 있었던 보행자를 배려하며 그 곳에 살고 있는 거주자들의 삶을 존중했다. 변화의 속도와 크기를 조절해 기존 사람들이 현재의 삶을 유지하도록 배려하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준 것이다. 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새로운 의미를 더하며 더욱 풍성해 질 수 있게 됐다. 도로는 빨리 계획하고 만들 수 있지만, 그곳에 사람들의 활동을 담고 의미를 공유하는 것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길의 가치는 짧은 시간을 투자해 얻는 효율적인 개발 이익으로 치환할 수 없는 소중한 도시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 김준우 벨기에 루벤가톨릭대학 도시설계학 박사과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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