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서열' 없는 이탈리아 교육, 모든 고교가 특목고!
이탈리아,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국가가 책임지다


한국의 교육 문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맹목적인 입시 경쟁과 획일적 교육, 공교육 불신에 따른 탈학교화와 비대한 사교육 시장, 교육의 지역적 불균형 등 오래전부터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어 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 문제는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이 모든 현상의 이면에는 학력과 학벌에 따른 뿌리 깊은 차별의식, 그리고 대학 서열화라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특정 대학 출신이라는 간판은 평생에 걸친 특혜를 보장한다. 이것을 쟁취하기 위해 학생들은 취학 이전부터 파행적인 경쟁으로 내몰리고, 부모들은 자신이 가진 경제적 자원을 총동원해 아이들에게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려고 노력한다. 이 구도 안에서 사교육비와 대학 등록금은 개인의 미래를 위한 투자로 인식되면서 이러한 교육비 지출이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가계의 경제적 능력에 따른 불균형한 교육 투자비용은 결국 공정한 경쟁과 평등한 교육을 어렵게 만든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교육은 국가의 몫

다른 많은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교육은 개인이 아닌 국가의 책임이다. 이탈리아 헌법 34조는 '교육을 받을 만한 능력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최고 과정까지 학업을 계속할 수 있어야 하고, 국가는 장학금과 가계 보조금 등을 통해 이를 도울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

경제 위기 이후 일각에서 국가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립학교와 가톨릭 종교 법인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장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고 실제로 최근 여러 형태의 사립학교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탈리아에서 대다수 교육기관은 공립으로 운영된다. 이탈리아는 사립학교보다 공립학교의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에 속하며, 정부는 모든 이에게 평등하고 열린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 이념에 따라 유아 교육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높은 수준의 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이탈리아의 유아교육은 공식적으로 만 4세부터 시작된다. 만 6세까지 이루어지는 유아교육과 이후 5년간의 초등교육은 의무교육 기간으로 규정되어 완전한 무상교육이 실시되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비용을 나누어 부담한다. 이후 3년간의 중등교육과 5년간의 고등 과정은 준(準) 의무교육 기간으로, 부모가 교재비와 교통비를 부담하지만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가계 보조금이 지급된다.

INPS(국립사회보험청)는 각 가계의 소득을 9개의 등급으로 나누어 관리하는데, 이 등급에 따라 보조금의 지급 액수가 결정된다. 연간 가계 소득이 1만7500유로 이하면 국가가 교육비 전액을 지급하고 7만5000유로 이상이면 부모가 전액을 부담한다. 연간 1만7500유로에서 7만5000유로 사이의 소득의 경우는 등급에 따라 교육비의 일정 비율만을 부모가 부담하게 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연간 평균 가구당 가용 소득은 2만4216달러(USD)이며 환산하면 약 1만8810유로가 되니 어림잡아 절반가량의 가구가 자녀의 교육비를 면제받는다고 추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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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사회보험청(INPS) 홈페이지 www.inps.it


가계의 소득 수준에 따른 보조금 혜택은 대학까지 적용되며,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의 경우, 소득 등급에 따라 등록금 납부액의 일부가 면제된다. 아래는 소득이 가장 적은 I등급을 받은 한 외국인 학생의 등록금 납부 영수증이다. 피렌체 국립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2012/2013학년도에 1차에 357.62유로, 2차에 9.00유로를 내 연간 총 366.62유로의 등록금을 납부했다. 소득이 가장 많은 IX등급의 경우, 연간 2075.62유로의 등록금 중 82%를 면제받는 셈이다(학생이 낸 등록금 366.62유로는 총 등록금 2075.62유로의 18%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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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렌체 국립대학교에 제학 중인 한 학생의 등록금 영수증


대학생들을 위한 장학제도

그런데 연 366.62유로도 납부할 능력이 안되는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가 아무 소득이 없는 학생의 경우 등록금 외에 교통비, 식비로 지출되는 비용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러한 경우에는 각 지방정부의 장학 혜택을 이용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연평균 대학 등록금은 2012년 기준 660유로로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다소 많은 편이지만 소득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구의 학생들은 지방정부에서 운영하는 장학제도를 통해 등록금을 감면받거나 면제받을 수 있다.

즉, 단순히 수치만 가지고 비교하자면 현재 한국의 평균 대학 등록금에서 반값 등록금을 세 번 실시한 후 저소득 계층에 한해 또다시 장학 혜택을 부여하는 것과 같다. 토스카나(이탈리아 중부에 있는 주. 수도는 피렌체)에는 DSU라는 장학 기관이 운영된다. DSU의 주 업무는 토스카나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에 대한 장학 지원 및 급식시설, 기숙사 등의 학생 편의시설 운영 등이다. DSU의 장학생 선발 역시 성적이 아닌 소득을 기준으로 한다. 

해마다 기준이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2012/2013학년도 기준으로 직계 가족의 연소득이 1만7000유로를 넘지 않은 학생들은 등록금 면제 혜택을 받고, 더불어 DSU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와 급식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기숙사에 자리가 없는 경우에는 월 190유로의 주거 지원금이 주며, 근교 도시에서 통학을 하는 경우에는 교통비가 지원된다. 연소득이 1만7000유로에서 3만4000유로 사이에 해당하는 학생들은 급식 시설 이용과 교통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토스카나 이외의 지역에서 공부하러 온 학생들에게는 할인된 금액으로 기숙사를 이용할 수 있다. 피에몬테의 EDISU, 베네토의 ADISU 등 DSU와 같은 장학기관이 전국 모든 주에서 운영되고 있으며, 지방 정부의 장학 혜택 역시 내국인과 외국인 사이의 차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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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SU에서 운영하는 급식시설의 모습이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와 교직원 등 학교 관계자들도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 제공되는 음식과 서비스의 질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급식시설의 운영은 
공무원, 학생, 학부모, 교직원까지 참여하는 관리 위원회(Commissione Mense Scolastiche)의 
감독을 받는다. 위원회는 매달 시설의 위생 상태를 점검하고 음식을 시식한 후 시 당국에 평가 보고서를 
제출한다. ⓒwww.pisatoday.it


이탈리아에서는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하는 경우는 없다. 학비를 벌기 위해 학업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쏟을 필요도 없고, 학자금 대출로 인해 졸업과 동시에 빚쟁이가 되는 일도 없다. 이탈리아의 공교육은 공부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최고 수준의 학위에 도달하기까지 경제적 걱정 없이 학업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혜택은 그만큼의 책임과 노력을 동반한다. 한국과는 달리 이탈리아의 대학은 입학이 쉬운 반면, 졸업이 대단히 어렵다. 유럽연합통계청(Eurostat)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대학 진학률은 매년 약 50%에 이르지만, 2012년 기준 대학 입학자 대비 34세 미만 졸업자의 비율은 21.7%로 유럽연합 가입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이탈리아의 대학을 정해진 기간 내에 졸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1년에 5~7개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시험은 담당 교수가 학생들에게 그동안 공부한 내용에 대해 구두로 질의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보통 여러 차례 재시험을 보는 경우가 많다. 매년 장학금 수혜 자격을 갱신하기 위해서는 연간 최소 2개 이상의 시험을 통과해야 하며, 장학금은 공식적인 졸업 연한인 5년(학부 3년, 석사 2년)을 넘겨 지급되지 않는다. 최근 교육연구부(MIUR)의 발표에 따르면, 2012년 기준 대학생들의 평균 졸업 연한은 7년을 넘으며, 장학혜택을 받으며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는 공부의 양이 만만치 않은 셈이다.


모든 고등학교가 특수목적고

중학교를 마친 학생들은 각자 자신의 적성과 희망에 따라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이탈리아의 고등학교는 크게 일반교육기관인 리체오(Liceo)와 직업교육기관인 이스티투토(istituto)로 나뉜다. 리체오는 다시 인문계, 외국어계, 이공계, 사범계, 예술계로 나뉘며 계열별로 학습 과목에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인문계 리체오에서는 주로 라틴어와 희랍어 고전을 학습하고, 이공계 리체오에서는 라틴어와 더불어 심화된 자연과학을 배운다. 그리고 교사 양성을 위한 사범계 리체오에서는 라틴어, 교육학, 심리학 등을 학습한다. 이스티투토는 과거 회계, 관광, 간호, 해양, 항공, 농업 등 과거 특정 직군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의 양성을 위해 설립되었으나 요즘에는 모든 전문 직종에서 대학 학위를 필요로 하게 되면서 원래 목적은 유명무실해졌다. 그러면서 일반교육기관인 리체오와 별다른 차이 없이 설립목적에 따라 각기 다른 과목들을 심화하여 가르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수목적고가 입시학원처럼 되어버린 한국과 달리, 이탈리아에서는 모든 고등학교가 사실상 특수목적고로 운영되는 셈이다.

이탈리아 고등교육체계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고등학교에서 계열선택이 대학의 전공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에서 어느 과목을 공부했느냐와 관계없이 원하는 대학의 학과에 교차 지원할 수 있다. 즉 이공계 졸업자가 대학의 철학부에 지원한다거나 인문계 리체오 졸업자가 공학부를 지원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리체오 졸업자와 이스트투토 졸업자 사이의 차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학생들은 자유롭게 원하는 고등학교에 지원해 원하는 과목을 학습하면서 스스로 적성을 시험해볼 수 있다.

이렇게 5년간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학생들은 졸업 자격을 얻기 위해 논술과 면접(토론)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자격시험을 치르게 된다. 60점 만점에 36점 이상을 받은 학생은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게 되며, 대략 95%의 학생들이 합격한다. 한국에서는 수학능력시험 성적에 따라 등급이 분류되고 이 등급에 따라 진학 가능한 대학교와 전공 학과가 결정되지만, 이탈리아에서 국가자격시험은 말 그대로 자격시험이다. 시험에서 일정한 점수 이상을 획득한 학생들 모두에게 대학 진학 자격이 부여된다. 시험에서 얻은 점수는 대학의 입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평준화된 대학 구조

이탈리아의 학생들은 어떤 기준으로 자신들이 진학할 대학을 결정하고, 대학은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할까. 한국인들은 대학 순위에 굉장히 민감하다. 출신 대학이 그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고등학교 성적이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한계를 결정해 버리는 이 비합리적인 구조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하기보다는 동참하는 길을 택한 것 같다. 대학생들에게 무슨 전공을 공부하는지 보다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는지를 먼저 묻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사실은 출신 학교에 따른 등급 매기기가 한국인들의 사고 속에 얼마나 깊게 뿌리박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탈리아에서는 대학의 서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대학에서는 대부분의 학과가 학생 모집 시에 정원을 정해놓지 않는다. 의학 등 일부 전공의 경우 대학에서 주관하는 시험을 통해 정해진 인원을 선발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와 같은 소수의 예를 제외하면,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취득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별다른 입시 없이 자유롭게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대학은 철저하게 평준화되어 있어 신입생들이 특정 대학에 편중되는 현상 역시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교육연구부(MIUR)의 통계에 따르면, 이탈리아 대학생들의 지역별 분포는 밀라노가 위치한 롬바르디아가 14.23%, 로마가 위치한 라치오 14.8% 그리고 나폴리가 있는 캄파니아가 11.18%로 지역별 인구 분포를 그대로 따라간다. 최근 경제 위기로 취업이 어려워져 그나마 일자리를 찾기가 수월한 북부 지역 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많은 수의 학생들은 어려서부터 자라온 지역의 대학에 진학한다.

한편 대학 진학을 위해 로마·밀라노·피사·피렌체 등 대도시로 떠나는 학생들도 있는데, 이는 부모의 품을 떠나 새로운 문화적 경험을 원하는 학생들의 경우일 뿐 대학 서열과는 관계가 없다. 이는 이탈리아 대부분의 대학이 국립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교육의 지역적 편차가 발생하지 않고, 또 한국처럼 특정 대학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받을 수 있는 특혜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학교에서 공부했는지 보다 어느 교수와 무엇을 공부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특히 석사나 박사 등 상위 과정에 진학하는 학생들의 경우 자신의 논문을 지도한 교수가 누구였는지가 학생의 자질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엘리트 교육 - 피사 고등사범학교

한국 사회에서 대학 평준화에 관해 논의할 때 항상 등장하는 것은 평준화로 인한 엘리트 교육 문제이다. 대학의 평준화가 획일적 평등으로 흘러 결국 사회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여기서 엘리트 교육과 보편 교육의 가치를 저울질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의 리더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이 존재하고, 이탈리아 역시 마찬가지다.

'사탑'으로 유명한 도시 피사에는 공립 엘리트 교육기관인 고등사범학교(Scuola normale superiore)가 있다. 학교의 역사는 나폴레옹 지배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탈리아에 프랑스식 교육제도를 이식하고자 했던 나폴레옹은 1810년 10월, 자신의 교육이념을 실현시킬 교원 양성을 목표로 파리 고등사범학교(École Normale Supérieure)를 모델로 한 교육기관을 피사에 설립했다.

이후 이 학교는 이탈리아의 통일, 전쟁, 파시즘 시기를 거치며 여러 부침을 겪은 끝에 전 유럽적 명성을 가진 엘리트 교육 기관으로 발전했다. 오늘날 고등사범학교는 순수학문 분야의 대학 교원 양성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으며 상당히 엄격하고 까다로운 시험을 거쳐 학생들을 선발한다. 해마다 재능 있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전국의 고등학교에 공문을 보내고 학교를 홍보한다. 매년 60명 내외의 학생을 선발하는데, 보통 전국에서 2000~3000명의 지원자가 몰린다. 학교 측은 학생의 선발에 있어 사회적 출신이나 출신 고등학교에 따른 차별을 두지 않고 재능과 능력, 가능성만을 평가한다고 강조한다. 선발된 학생은 학비와 식비·주거비뿐 아니라, 생활비까지 지원받으며 오로지 학업에만 전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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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사 고등사범학교의 모습 ⓒ고등사범학교 홈페이지 www.sns.it


피사 고등사범학교는 피사 국립대학이 중심이 되는 피사 유니버시티 시스템(Sistema universitario pisano)의 일부이다. 따라서 고등사범학교의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피사 국립대학의 학생들과 동일한 커리큘럼을 따르지만, 그 외에 별도로 전문 학자 양성을 위해 특화된 고등사범학교의 세미나에 참여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다. 학사관리 역시 상당히 엄격하다. 학생들은 매년 일정 학점을 유지해야 하며, 유지하지 못할 경우 학사 경고와 함께 즉각적인 퇴교 조처가 내려진다.

고등사범학교는 순수 학문 분야의 대학 교원 양성이라는 설립취지에 따라 인문계 5개 학과, 자연계 4개 학과에서 극소수의 학생들만을 선발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 후 전문 연구자의 길을 걷는다. 따라서 사회에서 파벌이 형성되어 분야를 막론하고, 이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 특혜를 받는 일은 없다. 공립 대학의 교원 임용 시 고등사범학교 출신들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나, 이 역시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 않는다. 고등사범학교의 졸업장은 학자로서 쌓을 수 있는 수많은 경력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엘리트 교육이 사회적 리더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라면 일반 학생들과 차별화되는 커리큘럼이 적용되어야 의미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 우수하다고 하는 일부 대학의 경우 그들이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가 과연 다른 대학들과 차별화가 되는지 즉, 사회적 리더의 양성이라는 취지에 맞는 커리큘럼을 제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 교육이라는 것은 단지 '지적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파벌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덧씌운 이미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건강한 한국의 공교육을 위하여

우리가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수많은 사람이 지금의 교육시스템으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성적 비관과 입시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하는 청소년들의 수는 해마다 늘어나고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사교육비 지출은 가족의 경제적 고통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의 왜곡을 초래한다.

'기러기 아빠' 같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를 희생시키는 비정상적 가족 형태가 하나의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의 승자들에게는 출신 대학의 간판이 주는 특혜가 평생 보장되는 반면 패자들에게는 사회적 낙인으로 남는다. 만약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아이가 받을 수 있는 교육의 양과 질에 차이가 생긴다면 더더구나 그 사회의 미래는 없다.

물론 유럽 사회가 무조건 이상적인 사회라고 보지는 않는다. 유럽이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것은 자칭일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 사회도 한국 사회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받은 교육의 양과 질은 그 사람의 사회적 역할을 결정한다. 그럼에도 모든 이들에게 열린 교육, 평등한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이탈리아의 공교육이 한국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모든 이들에게 최고 과정까지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부여하는 것, 이리하여 모든 이들을 동일한 출발 선상에서 경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야말로 공교육이 지향해야 할 최우선 가치가 아닐까.


/임동현 피사대학교 사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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