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적 자유주의, 복지국가, 조정시장경제, 합의제 민주주의 등 한국 사회의 질적 발전에 필요한 대안담론들을 제시하고, 그 구현 방안들을 논의하고 도출해내는 열린 토론의 장입니다.

[제 6회 대안담론포럼 한국의 사회갈등 문제와 거버넌스 체계의 모색]



스페인의 사회협약: 경쟁력 조합주의의 발전



신동면(경희대학교)


1. 들어가는 말 


1970년대 초반 서구 복지국가들에서 조합주의 정치는 정당 정치와 함께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슈미터(Schmitter, 1974)가 발표한 논문 제목이었던 ‘아직도 조합주의 시대인가?(Still the century of corporatism?)’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들어와 서구 복지국가의 재편 과정에서 조합주의 국가의 대표적 모델이라고 일컫던 사회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조차 전통적인 조합주의 구조가 약화되고, 영미식 자유시장경제체계의 노동시장 제도들이 확산되면서 조합주의적 정책결정이 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들이 등장하였다(Lash and Urry, 1987; Regini, 1995; Kurzer, 1993; Gobeyn 1993; Grahl and Teague, 1997). 조합주의 연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슈미터는 조합주의적 구조를 뒷받침하였던 케인지언 정책과 포디즘적 생산 조직이 약화되고, 저성장과 고실업 상태가 지속된다면, 조합주의 통치 양식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 하였다(Schmitter and Streeck, 1991). 


그러나 이러한 예상과는 달리 1990년대 초반 유럽 국가들이 경제위기와 유럽연합의 출범에 대응하여 경제사회 제도의 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여러 나라들에서 정부가 사용자 단체, 노동조합 연합 등 사회적 파트너들과 삼자간 사회적 대화(social dialogue)를 진행하여 정책협의(policy concertation)와 사회협약(social pacts)을 체결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조합주의의 부활을 보여주었다. 로요(Royo, 2002)가 책 제목으로 사용한 ‘새로운 조합주의 시대인가(A new Century of Coporatism)?라는 질문은 적절하며, 그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트랙슬어(Traxler, 1995)에 따르면, 새로운 조합주의는 1990년대에 들어와 케인지언 경제정책이 크게 약화되고 유럽통합이 가속화되면서 유럽 국가들이 이에 대응하고자 등장하였으며 공급중심의 조합주의이다. 로즈(Rodes, 1998; 2001)는 새로운 조합주의가 세계화의 압력과 유럽통합에 대처하기 위해 복지국가들이 추진한 정부정책결정 양식의 변화이며, 경쟁력 조합주의(competitive coporatism)라고 불렀다. 


새로운 유형의 조합주의는 사회경제 문제에 대하여 정부와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사회적 대화를 통하여 합의를 도모하고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는 조합주의의 기능적 적합성functional appropriateness)에 주목한다. 사회적 대화가 원활하게 작동하기 위한 조합주의적 구조 조건이 약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화가 심화되면서 조합주의가 갖는  기능적 적합성이 더 중요해 졌으며, 이에 따라 조합주의가 계속해서 진화한다고 본다(Molina and Rhodes, 2002: 315). 특히, 새로운 조합주의 유형은 조합주의적 구조 조건을 갖추고 있지 않은 국가들에서도 성행한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유럽 국가들 중에서 전통적으로 조합주의 국가로 분류되지 않았던 나라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와 남부 유럽의 스페인, 포루투칼 등에서 정부와 사회적 파트너들 간의 사회적 대화가 정착되고 조합주의 정치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나라들은 사회적 조합주의(social coporatism)의 토대가 되는 조정시장경제(coordinated market economy)와 다른 생산체제를 유지해 왔다. 생산체제에서 기업들은 산업별로 조정된 이해를 갖지 못하고 서로 분절되어 협력적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노조 가입률이 높지 않고 갈등적 노사관계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은 기업들이 긴밀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산업별 직업훈련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생산체제의 열거한 제도적 특징은 사회적 조합주의가 작동해 온 조정시장경제와는 뚜렷하게 구분된다. 이 나라들은 생산체제가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정부, 사용자 단체, 노동조합 연합들이 참여하여 삼자간 사회협약(social pacts)을 체결해 왔다. 사회협약에서는 임금 및 노동시장, 경제, 소득 분배와 사회보장 등의 폭넓은 의제를 포함하였고, 정부는 정치적 교환(political exchanges)을 통해 생산성 연합과 분배연합을 동시에 추구하였다(Rhodes, 1998, 2001; Molina & Rhodes, 2002). 


 이 논문에서는 스페인에서 작동하는 새로운 조합주의를 다룬다. 사회협약이 처음으로 체결되었던 1981년 당시 스페인은 사회적 조합주의 국가들에서 찾을 수 있는 조합주의 제도 요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였다. 사용자 단체는 1977년에 결성되어 영향력이 낮았으며, 노동조합의 조직률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고, 전국 노동조합은 독점적이고 포괄적인 노조가 아니라 두 개의 노동조합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다. 노사관계는 법제도적 틀이 확립되어 전국, 산업, 기업 수준의 3단계 교섭 구조를 갖추고 있었지만, 산업별로 지나치게 세분되어 있고 산업 수준과 기업수준의 책임 관계가 불명확하며, 노사간 단체협상의 의제가 협소하여 단체협상의 빈곤을 낳고 있었다(Rohlfer, 2012). 이와 같이 조합주의가 성공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적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였지만, 중도민주연합(Union of the Democratic Center, Unión de Centro Democráticico: UCD) 정부는 민주화 이행과 경제 안정을 위하여 사회적 대화를 주요한 통치 방식으로 채택하였다. 노동조합 연합은 산업별ㆍ기업별 수준 교섭체계의 취약성을 정상조직 간 협상을 통하여 보완하고자 사회협약에 적극적이었다(Molina, 2006: 655). 민주화 이행기에 도입 되었던 사회적 대화와 사회협약 체결의 경험을 계기로 최근까지 스페인 정부는 사용자 단체, 노동조합 연합과 함께 노사관계, 노동시장, 노동법의 주요 쟁점뿐만 아니라 사회보장, 직업훈련, 경제성장 등의 다양한 사회ㆍ경제적 의제를 가지고 사회적 대화를 진행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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