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 개소(2010년 3월 1일) 이후의 칼럼 및 인터뷰 모음입니다.


마크롱 혁명 "정치 안 바뀌면 미래 없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속된 左右 나눠 먹기 오랜 구도 속
국가 쇠퇴 지켜보던 佛 국민… 마크롱 선택으로 정치세력 교체
기득권에 안주하는 정치로는 더 이상 설 곳 없다는 경고

 
 프랑스 새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 마법처럼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의 젊은 장관 마크롱이 대선 출마를 위해 사임했을 때만 해도 많은 사람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 번도 선거에 나선 적 없는 무명의 30대 정치 신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10개월 뒤, 마크롱은 압도적인 표차로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물론 총선에서도 프랑스 정치 사상 최다 의석의 역사적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다. 한마디로 선거의 기적이고 정치의 혁명이다.


 마법의 중심에는 당연히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 마크롱이 있다. 그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과 국립행정학교(ENA)라는 프랑스 정통 정치 엘리트 코스를 밟았으며, 대통령 비서실 차장과 경제장관이라는 책임이 막중한 전략적 위치에서 국정 운영 경험을 쌓았다. 마크롱은 대선 후보 토론에서도 다양한 정책 분야에 대해 일사천리의 논리를 내세우며 수권 능력을 자랑했고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아마추어가 아닌 준비된 신인이었던 것이다. 이로써 신선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선사하는 새 인물이 프랑스 정치에 등장했다.


 마크롱은 특히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을 긍정적 정치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프랑스는 1986년부터 지난 2012년까지 7차례의 총선에서 2007년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집권당을 갈아치웠다. 좌우 정부를 오가면서도 프랑스는 '유럽의 환자'였다. 영국과 독일이 구조 개혁을 통해 경쟁에서 앞으로 치고 나가는 동안 프랑스는 개혁 마비로 뒤처졌다. 2007년 "게으른 프랑스를 일하게 만들겠다"며 집권한 사르코지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쓴잔을 들이켰다. 2012년 당선된 사회당의 올랑드는 우유부단한 태도와 우왕좌왕의 정책으로 본격적인 혁신의 시동도 걸지 못했다. 실망은 누적되었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갈증은 증폭했다.


 최근까지 국민전선과 마린 르펜은 기득권 정치에 대한 환멸의 가장 커다란 수혜 세력이었다. 하지만 마크롱은 극우의 증오와 비판을 넘어 중도의 공간에 건설적 대안 세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정치에서 중도는 전통적으로 실패의 늪이었다. 프랑스 대혁명에서 좌우의 개념이 만들어진 이래 프랑스 정치는 이 대립 축을 중심으로 운영됐기 때문이다. 마크롱은 캠페인 초기에는 "중도란 좌도 우도 아니다"고 주장하며 존재감을 확보했고, 캠페인의 중반부터는 "중도란 좌와 우 모두"라고 주장하며 통합을 시도해 훌륭한 전술가의 면모를 입증했다.


 이번 대선에서 마크롱은 사회당과 공화당의 실수 덕을 크게 봤다. 사회당 예비선거에서는 극좌 성향의 브누아 아몽 후보가 당선되며 기존의 지지 세력을 중도에 내줬다. 공화당 예비선거에서도 극우에 가까운 프랑수아 피용이 중도 성향의 알랭 쥐페를 누르고 선출되며 마크롱에게 확장 가능한 공간을 제공했다. 게다가 피용의 각종 부패 스캔들은 마크롱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횡재였다.


 대선에서 마크롱은 승리했지만 이는 절반의 기적이었다. 개인의 카리스마로 치를 수 있는 대선과 달리 총선은 조직의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총선을 위해 '전진하는 공화국'(LRM)이라는 조직을 꾸렸다. 마크롱은 승자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철새 정치인들과 선을 명확하게 긋고 정치 신인을 중심으로 후보 명단을 꾸리는 데 집중했다. 이처럼 마크롱은 간판만 새 정치가 아니라 실제로 새 술을 담은 정치운동을 만들어냈고 총선도 승리로 이끄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민주주의 역사상 독립이나 혁명이 아닌 정상 조건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력이 출범한 지 1년 만에 파죽지세(破竹之勢)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동시에 압도적으로 장악한 사례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마크롱과 '전진하는 공화국'은 세계 민주주의와 정치 개혁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프랑스 국민이 마크롱을 앞세워 실현한 속전속결의 정치혁명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번갈아 집권하면서 기득권에 안주해온 전 세계의 기성 정치 세력이 설 곳은 이제 없다.


/ 조홍식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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