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 개소(2010년 3월 1일) 이후의 칼럼 및 인터뷰 모음입니다.

막강한 장관, 강력한 내각 기대한다

 

 

 고위 공직을 지내고 오래전 은퇴한 그는 긴 호흡으로 얘기를 풀어갔다.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나타난 현상이라고 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로 대통령이 바뀌면서 점점 더 심해졌다고 했다.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력 집중 얘기였다.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파렴치에 관한 얘기였다. 그는 청와대가 정부 외청의 산하기관 부기관장에 불과한 자리를 6개월 동안이나 비워놓더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이 자기가 소속된 기관에 충성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위직들은 청와대 비선 실세의 줄을 잡아 승진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고 했다. 말단 공무원이 공무원이기 때문에 취득한 어느 회사의 부패 정보로 그 회사를 협박해 자식을 취직시킨 생생한 사례도 들려줬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공무원들의 이런 풍토를 바로잡아야 대한민국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일까? 그는 장관들에게 소관 분야 공직의 인사권을 100%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공무원들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충성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청와대 인사수석도 필요 없다고 했다.

 

 그의 말이 다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이 경청해야 할 내용이다. 대통령과 청와대에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은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4월23일 텔레비전 토론에서 문재인 후보는 “책임 총리제, 책임 장관제를 통해서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들을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5월10일 취임사에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했다.

 

 책임 총리제, 책임 장관제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임기 5년 대통령 단임제에서 권력 분산은 쉽지 않다. 대통령 재임 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이다. 관료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력 집중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권력 집중 현상이 나타난 것도 그런 이유다.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수석을 지낸 박남춘 의원이 2013년 <대통령의 인사>라는 책을 냈다. 박남춘 의원은 “참여정부 인사의 최고 실세는 ‘시스템’이고 가장 중요한 원칙은 적재적소(適材適所)가 아니라 적소적재(適所適材)”라고 했다. 위인설관(爲人設

官)하지 않고, 위관택인(爲官擇人)하겠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헌법과 법령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직위는 8500여개다. 대부분 총리 및 장관들에게 위임되어 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이 실질적인 인사권을 행사한 직위는 행정부 장차관 등 정무직 142개, 공공기관 임원 149개, 대법원장 및 대법관 13개, 헌법재판관 3개, 중앙선관위원 3개 등 300여개에 불과했다고 한다. 행정부 공무원 가운데 검사·외무공무원·경찰공무원·소방공무원·군인 및 국가정보원의 직원 등 특정직 공무원의 주요 직위는 관계 부처가 청와대와 협의하여 인사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참여정부의 전례를 그대로 따를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청와대와 협의’를 거쳐야 하는 직위, 법률상 장관에게 인사권이 위임되어 있지만 청와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직위에서 발생한다. 인사 대상자들이 장관이나 소속 기관이 아니라 대통령과 청와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부활시키며 ‘대통령에 대한 확고한 보좌’, ‘정부 부처의 자율성과 책임성 보장’, ‘미래 준비와 국정과제 체계적 추진’에 역점을 뒀다고 밝혔다. 비서실을 개별 부처 대응에서 정책 과제 중심으로 개편함으로써, “정부 부처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한편, 국정 핵심 과제에 대한 추진 동력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잘될까? 뭔가 모순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조직은 일단 만들어지면 생존과 증식의 본능에 따라 움직인다. 대통령이 아무리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를 강조해도 청와대 비서실은 행정부처 위에 군림할 가능성이 크다. 걱정이다.

 

 남은 방법은 대통령이 막강한 인물들을 장관직에 앉히고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책임 장관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장관 임기도 길게 보장해야 한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에 출마할 사람은 장관 시키면 안 된다. 장관직은 정치인이 경력을 쌓는 자리가 아니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다. 역대 어느 정권보다도 강력한 내각의 출현을 기대한다.

 

/ 성한용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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