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 개소(2010년 3월 1일) 이후의 칼럼 및 인터뷰 모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날에

 

 

 ■ ‘조기 대선, 즉시 취임’이 괜찮았던 이유

 

 박수를 보내고 싶은 문재인 대통령의 첫 날


 인상적인 문재인 대통령의 첫 날이었다. 5월 10일 문 대통령은 모두가 한 목소리로 말하던 것, 모두가 간절히 원하던 것, 협치와 소통을 실천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했다. 문 대통령은 겉치레를 걷어치웠다. 소박하고 진솔하게 시작한 하루였다.

 

 조기 대선 아닌 집중 대선이었다


 당초 조기 대선을 과연 잘 치를지 우려가 많았다. 국정농단 사태가 처음 드러났을 때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꺼렸던 이유의 하나도 한국 사회가 조기 대선에 준비되어있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조기 대선을 해보니 과거 정상적 선거 보다 못할 게 없었고, 어떤 측면에서는 더 나았다. 후보들은 정책 논의에 적극 참여했고, 시민들은 후보를 비교 평가하는 데 열성이었다. TV토론 시청률이 매우 높았고 그만큼 TV토론은 후보를 결정하는데 상당한 준거가 되었다. 색깔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귀기울이지 않았고, 출신지역에 매몰되지도 않았다. 후보들의 국정 구상과 비전, 리더십, 자질들이 비교적 잘 드러난 선거였다.


시민들도 전례 없이 선거에 집중하면서 나름대로 후보를 검증했고 선택했다. 제한된 시간에 맞춰 정당과 후보들이 준비한 공약을 내고 토론하고 치열하게 경쟁했고, 그 결과 차별성도 드러낼 수 있었다. 투표율은 매우 높았고, 선거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한마디로 조기 대선이라기보다 대한민국이 좀 더 나은 대통령을 뽑기 위한 ‘집중 대선’이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인수위 없으니 더 낫다


 대통령직 인수과정 없는 즉시 취임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그러나 긴 인수위 과정은 장단점이 있다. 인수위 과정이 취임전 국정 과제를 정리할 시간을 준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인사와 정책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이 노출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점에서는 문제가 있다.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깎아 먹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는 당연히 새 정부에 부담을 준다.

 

 반면 즉시 취임으로 대통령이 신속하게 메시지를 발표하고 인선을 하는 경우 새 정부의 방향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유리하다. 집권하는 쪽이나 지켜보는 시민이나 조심스럽고 긴장감 있게 새 정부 출범 과정을 함께 겪는 시간이기도 하다. 인수위 기간을 거쳐 완벽해 보이는 국정 의제와 과제를 던지는 것도 좋지만 당선 즉시 취임으로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면서 시민과 함께 새 정부를 만들고 시민도 참여하는 인상을 주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 정치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대선

 

 정당이 있는 정치로 치른 선거


 과거 대선후보들은 당과 무관한 캠프를 차려 선거전을 치렀다. 그리고 대선에 승리하면 당 아닌 캠프가 집권세력이 되었고 바로 그 때문에 국정 수행 성적이 좋지 않았으며, 당과 갈등하기 일쑤였다. 그럼 다음 정권의 지지율이 추락하고서야 당에 손을 내밀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은 정당이 중심된 선거였다.

 

 5개 정당이 각각 자기 색깔에 맞는 후보를 내고 정당의 이름으로 정책을 내고 경쟁한 정당들의 선거전이었다. 당은 허수아비처럼 버려두고 후보와 사사로운 관계를 가진 인물들로 캠프를 꾸린 것이 아니라 당이 선거전을 주도했다. 특히 민주당은 과거와 달리 용광로 선대위를 꾸려 당의 자원을 최대한 결집했고 그런 노력의 결과 승리했다. 이것만큼 정당의 중요성을 웅변해주는 사례는 없을 것이다.

 

 이번 대선은 또 정당 리더십 역량, 정당의 활동 공간인 의회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다. TV토론의 영향력이 컸던 이번 대선에서 5명의 후보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의회 경험이 얼마나 풍부한가에 좌우됐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심상정·유승민 후보는 정당, 의회에서 풍부한 정책 논의를 해본 경험이 있는 인물이다. 반면 그런 경험이 일천한 안철수 후보는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후보 5명의 득표율도 5개 정당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점에서 정당 조직의 할용이 대선 결과를 좌우했다. 5개 정당 득표율 차이도 기반 조직이 굳건한 정당이냐 그렇지 않은 정당이냐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당조직을 충분히 가동할 수 있었던 민주당, 자유한국당이 1,2위를 차지하고 신생정당으로 당조직이 정비되지 않았거나, 허약한 지역조직에 중앙당 중심의 활동을 하는 정당은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바로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이다. 정당을 잘 키우지 않고는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교훈을 줬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경청할 만한 주호영의 건의


 문재인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나 당선 후 문재인 정부 아닌 민주당 정부가 될 것이라고 선언, 정당 정당의 부활을 예고했다. 문재인 개인 혹은 문재인과 측근들의 집권이 아닌, 평소 시민의 의사를 모으고 정책을 생산하고 국정을 다뤄온 정당이 집권했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정당이 주인임을 확인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또 이례적으로 당선되자 마자 야당부터 찾았다. 그는 야당 지도자 방문이 “오늘 하루로 그치는 일회적 행사가 아니라 5년 내내 이렇게 야당과 늘 대화하고, 소통하고, 한편으로 타협하고 협력하는 그런 자세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문대통령을 만난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는 정당정치와 관련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야당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여당과의 소통이 잘 돼야 합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이 각각 이유는 다르지만, 집권당과 원만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지 못했고 결국 그로 인한 갈등으로 정권 균열까지 초래한 바 있다. 주원내대표의 말대로 여당과만 잘해도 성공적인 국정을 할 수 있다.

 

 ■ 개혁과 통합, 두 마리 토끼 쫓기

 

 개혁과 통합은 샴쌍둥이


 문 대통령이 당면한 과제의 하나는 개혁과 통합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초기 문대통령이 국정 중심을 개혁에 두면 개혁으로 피해를 보는 세력, 개혁 방향에 이견이 있는 세력, 개혁 거부 세력과의 대립 갈등이 발생하고 이 때문에 통합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고 한다. 반면 통합에 중점을 두면 타협·양보해야 하고 그러자면 개혁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개혁과 통합을 모순적 관계, 갈등 관계로 보는 관점이다. 실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개혁은 시민이 원하는 변화를 이루겠다는 의미이다. 그런 개혁이 성공해야 그걸 바탕으로 지지세를 확산하며 통합도 가능하다. 일부 개혁 성과를 먼저 내야 핵심 개혁 과제 아닌 부문에서 타협할 여지도 생기고 그런 타협을 통해 통합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혁은 통합의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반대와 이견을 방치한 채 분열과 갈등, 대결 상태를 해소하지 못하면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 통합 없이 개혁을 밀어붙이면 개혁은 그 취지와 상관없이 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개혁도 좌초되고 그로 인해 통합도 실패한다. 개혁 없이 통합 없고, 통합 없이 개혁도 없기 때문이다.

 

 개혁과 통합의 관계는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개혁에는 실패하고 통합에 성공한 것도 아니고, 반대로 개혁에 성공하고 통합에 실패한 것이 아니다. 개혁을 못했기에 통합도 못하고 통합을 못했기에 개혁도 못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실패는 개혁도 통합도 다 실패한 결과이다.

 

 개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자


 그렇다면 어떻게 개혁과 통합을 잘 조화시키며 선순환할 것인가? 우선 개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개혁은 갈등적이고 통합은 개혁 포기라는 인식을 바꿔야 한다.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바로 잡기 위한 개혁은 최소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가령 검찰 및 국정원 등 공안기관 개혁, 재벌 개혁, 언론개혁은 거의 사회적 합의에 이른 의제이다. 여야가 모두 합의하고 있는 사안이고 이 밖에도 이견 없는 개혁 과제를 더 찾을 수 있다. 이런 개혁을 달성하면 곧 통합의 효과도 낸다.

 

 ■ 진짜 대선은 내년 지방선거

 

 이번 대선은 중대선거인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이미 의미 있는 정치적 변화가 나타났고 19대 대선이 민주당 정권을 탄생시켰지만 그것만으로 중대 선거 혹은 2017년 체제의 등장이라고 예단할 수는 없다. 현 정치지형이 고착될지, 재편될지 현 시점에서는 불확실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최소한 다음과 같은 현상 가운데 하나라도 지속적으로 나타나야 전환기적 선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구 보수정치세력의 약화와 새로운 보수정치세력의 등장이나 민주당의 제1당 유지 및 보수정당의 분열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지 못할 경우 자유한국당이 강력한 야당으로 부상하면서 다시 보수 우위의 영광을 재현할 여지는 충분하다. 집권세력이 일정한 국정 성과를 내느냐에 따라 보수 재결집 여부가 판가름 날 것이다. 그러므로 적어도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21대 총선 결과를 지켜보고 판단한 필요가 있다. 가까이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 중심의 야당이 승리하다면, 멀리는 21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대승을 한다면 구 보수정치세력은 부활할 것이고 19대 대선 역시 중대선거로 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의 성공적인 국정으로 지방선거에서 승리, 국정 개혁의 동력이 생기고 다음 총선도 선전하면 보수 우위 체제도 무너질 것이다. 만일 자유한국당이 선거 패배로 정치적 존재감이 없는 영남 자민련으로 전락하거나 해체되고 다른 당에 흡수된다면 19대 대선은 87년 정치적 변화 못지않은 정치적 지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 왜 연합정부 아닌, 통합정부인가?

 

 연합정부의 이점과 위험성


 박영선 민주당 공동선대위원장은 선거일 직전 당 대 당 연합정부 구성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총재간 DJP 연합을 한 바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연정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 당내 경선 때의 대연정, 소연정 논쟁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그 때 당의 주요 후보들이 위헌적 논쟁을 했을리 없다. 그런데 박영선위원장은 왜 그랬을까? 추정컨대 연정에 숨겨진 위험이 있다고 보기 때문인 것 같다.

 

 연정은 여러 정당이 모여 의회 다수파를 구성, 안정적 집권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협치와 타협의 정치다. 그러나 연합정부가 정책과 인선 갈등으로 분열하면 정권 자체가 내부 요인으로 흔들릴 수 있다. 이 경우 집권당 뿐 아니라 연정에 참여한 정당도 몰락의 길로 내몰린다. 가령 내년 지방선거에서 연정이 패배한다고 가정해보자. 자칫 연정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 인기 없는 정부에 참여할 유인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견해는 연정 위험성을 과장하는 측면이 있다. 민주당이 국민의당, 정의당과 함께, 혹은 국민의당, 바른정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면 그야말로 개혁과 통합이 좀 더 수월해 질 수 있다. 여야간 긴밀한 대화를 통한 협치로 국정을 이끈다 해도 연정 같은 공고한 결속력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연정에 적극성이 없는 다른 이유는 국민의 당이 독자 생존할지 불확실하다고 보기 때문일 수 있다. 연정은 국민의당의 생존 기반을 제공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 가만히 두면 공중분해되거나 흡수할 수 있을 텐데 굳이 생명 연장의 자양분을 제공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다.

 

 통합정부란 무엇인가


 그럼에도 왜 연정이 아닐까? 민주당 통합정부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변재일 의원은 ‘통합 정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통합정부를 이렇게 규정했다. ‘국민이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가는 정부.’ 무슨 뜻인지 잘 이해되지는 않는다. 다음을 보자. ‘통합은 국민의 힘을 하나로 합치는 것. 역설적으로 국민의 힘을 합치기 위해서는 권력을 나눠야만 가능.’ 이는 특정당에게 권력 지분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인물에게 입각의 기회를 주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다음의 단서 조항을 보면 뜻이 좀 더 분명해진다. ‘정당간 연합이 아닌, 신뢰를 바탕으로 긴밀한 협조를 이끌어내는 입법연대.’ 다른 정당의 의원을 장관으로 영입함으로써 정당간 연대의 고리로 삼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아마도 DJP연합 실패의 기억이 연정 대신 통합정부를 선호하도록 했을 것이다. 사실 정당간 정책과 장관 인선 문제로 인한 갈등을 조율할 능력과 자신이 없으면 연정은 부담스러운 선택이다. 정부가 너무나 많은 국가적 의제를 안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그런 부담은 오히려 작아 보일 수도 있다.

 

 ‘느슨한 정당 결합’의 유연성


 분명 통합정부는 상호 밀접한 결합으로 서로 위험부담을 지는 연정에 비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상호 협력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한마디로 인물을 매개로 한 ‘느슨한 결합’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느슨한 결합’이 성공하기 위해서 절대 필요한 것은 시민적 지지다. 시민이 민주당과 문재인을 크게 지지했지만 국회 구성은 20대 총선의 결과로 여소야대다. 국회는 아직 촛불민심을 반영하지 못한 과거의 산물인 셈이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불일치 상황에서 출범한 것이다. 그렇다면 불일치의 공간을 시민적 지지의 결집으로 메우는 수 밖에 없다. 여소야대 국회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도 지지받는 국정, 성공적인 개혁이 필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훗날 스스로 흔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 5월 10일 첫날의 신중함, 긴장감, 설레임을 떠올려 보기를 바란다.


/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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