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 개소(2010년 3월 1일) 이후의 칼럼 및 인터뷰 모음입니다.

트럼프의 참을성에 건배!

 

 

 트럼프가 기어코 선제공격을 했다. 세계의 시선이 평양에 쏠린 사이 무방비의 서울을 때린 것이다. 오폭이 아니다. 워싱턴에서 좌표를 정확히 읽고 서울을 겨냥해 단추를 눌렀다. 10억달러짜리 사드 청구서라는 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에 서울은 벌집 쑤셔 놓은 모양이 됐다.


 중국도 공세 채비를 하고 있다. 신형 무기와 장비로 사드 배치에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요격 미사일로 성주의 사드 레이더를 파괴한다고 한다. 유사시 선제타격할 미사일은 실전 배치한 ASN-301. 러시아도 군사 대응을 공표했다. 여차하면 성주에 북·중·러 3국의 미사일이 우박처럼 쏟아질 판이다. 성주 참외밭은 동북아의 화약고로 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드에서 북한 미사일 막는 방패라는 이름표를 떼야 한다. 주변 강대국의 화력을 한반도에 집중시키는, 미사일 유인 장치에 그런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북핵 문제로 시달릴 만큼 시달린 한국인이다. 그런데 뭐가 모자라 사드까지 끌어안게 된 것일까? 우리는 이제 삶에 하나도 보탬이 안되는 핵과 사드를 양어깨에 짊어지고 가야 한다. 게다가 둘은 서로를 부추긴다. 북핵 문제의 악화는 사드 갈등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북핵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한다. 이런 여건에서 트럼프가 북핵을 전 지구적 위협으로 보고, 최우선 과제로 삼기로 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띄우는 요란 법석 ‘트럼프 쇼’의 거품을 걷어내면 알맹이가 없다. 북핵이 미국 최고 현안이 됐다고 하지만 그에 합당한 계획과 목표가 없다. ‘최대한의 압박과 관여’는 북핵 문제를 다루는 미국의 태도, 상황적 서술일 뿐 완결성 있는 정책이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 대화할지, 유인책은 무엇인지, 무엇을 얻고 양보할지가 없다. 그 사실은 ‘김정은과 햄버거 회담’을 말한 입으로 선제타격 운운하다 다시 “적절한 때 김정은을 만나겠다”고 하는 그의 종잡을 수 없는 행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다른 문제는 의외로 순진한 구석이 있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요청을 받은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견딜 수 없는 압력을 가할 것이고, 그 결과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중국의 대북 압박 수위에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은 모른다. 시진핑, 트럼프는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 단계별 전략과 목표를 향한 지속적인 실천, 정교한 상호주의 없이는 25년 묵은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누군가 트럼프에게 각인시켜주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추이톈카이 주미 중국대사는 “개인적으로 중국 입장에 중대한 변화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도 트럼프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물론 트럼프에게 대안은 있다. 중국 대신 동맹국과 해결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트럼프에게는 새로워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 없는 한·미·일 3국의 대북 압박은 낡은 방법, 실패한 방법이다. 트럼프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북핵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 즉 어떻게 북한의 불안을 잠재우고, 무장을 풀게 할 것인가에 답하는 것이다. 북한은 경제제재를 받는다 해서 체제 생존이 걸린 핵을 포기하고 굴복하지 않는다.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실질적이고 선제적인 평화 조치다.


 그건 작은 조치로 시작할 수 있다. 바로 사드 동결이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쉽다. 북한이 당장 남쪽에 미사일을 쏠 것도 아니므로 사드 배치는 시급하지도 않다. 10억달러 요구의 배경이 해명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북핵 해결이 우선이라고 한 마당에 사드 문제를 건드려 북핵 상황을 악화시킬 이유도 없다. 북핵 문제의 당사자들이 사드 갈등에 발목 잡히면 미·중관계, 한·중관계뿐 아니라 한국의 새 정부와 미국 관계도 해치고, 북핵 협력도 망칠 수 있다. 사드를 운용하지 않고, 발사대 추가 배치를 중단하면 중국의 태도가 바뀌고 북한도 주시할 것이다. 그때 군사적 긴장 완화 차원에서 한·미 연합훈련 잠정 중단을 선언해야 한다. 북한은 호응할 것이다. 북한은 훈련을 중단하면 핵·미사일 실험을 중단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사드는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 그러나 사드 동결로 훈련 동결, 핵·미사일 실험 동결의 연쇄반응 촉매로 쓴다면 거대한 진전을 볼 수 있다. 트럼프가 새로운 해법을 찾는다면 이걸 권하고 싶다. 다만 지켜야 할 게 하나 있다. 오바마의 것이라고 차버렸지만 트럼프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다. 전략적 인내. 그는 과장된 말과 행동으로 사람을 놀라게 하고 맥락에 닿지 않는 주장을 하거나 말을 자주 바꾼다. 조급증 때문이다. 그러면 일을 그르치기 쉽다. 참을성을 배우기 바란다.


/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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