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영연구소 개소(2010년 3월 1일) 이후의 칼럼 및 인터뷰 모음입니다.


글로벌 네트워크와 한반도 정세



 얼마 전 사업하는 지인을 만났다. 표정이 어두웠다. “아무래도 사드 문제와 부동산 시장이 불안합니다. 느낌이 안 좋아요. 눈앞의 한·미 정상회담이 큰 걱정입니다.” 작년 이후로 저잣거리 시민에게는 밤잠을 설쳤던 나날들의 걱정이 끊어지지를 않는다. 환호 속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각박한 현실에 직면했다. 내각과 비서진 구성에서부터 차질이 생겼다. 국가운영의 비전을 체계적으로 가다듬어 내놓는 데까지는 한참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 한·미 정상회담이다. 정부 출범 직후 특사 외교는 한국이 처한 옹색한 상황을 넘어설 수 없었다. 정상회담이라고 해서 특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오히려 국내에서 스스로 난맥상을 드러낼 조짐도 보인다. 외교안보 라인과 노선을 구축하는 과정에서의 혼선이 잘 정리되지 않고 있다.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의 한·미관계 구상에 대해 청와대가 엄중 경고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게다가 홍석현 특보는 사임 또는 고사 의사를 밝혔다. 여론 지형에서 자주파 대 동맹파라는 공리공담의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현재로서는 국가 간 정상회담으로 외교안보 딜레마를 해소하겠다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된다. ‘한반도경제’의 현재 상황을 유지·관리하면서 글로벌 또는 로컬 차원의 네트워크를 차분히 증진시킨다는 입장을 갖는 것이 좋다고 본다.


 우선 ‘한반도경제’는 한국만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지정학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과거 한국과 북한의 산업화 체제는 양 진영으로 갈라진 글로벌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의 발전모델이, 베트남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발전모델이 형성되었다. ‘한강의 기적’은 아시아에서의 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보이지 않는 손’과 함께 이루어졌다. 중국과 북한의 사회주의화와 중공업 우선 발전모델도 미국과의 대결 속에서 형성되었다.


 북핵과 미사일 위기 역시 글로벌 정치경제 체제 변동과 연관되어 있다. 미·중 협조관계의 진전과 함께 1990년대 초부터 동아시아 역내에서의 생산 네트워크가 확대되었다. 이 시기 북한은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에 연결·참여하지 못한 채 중국에만 편향된 개방경제를 형성했다. 여기에서 발생한 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북한은 핵 개발에 매진하였다. 북핵은 글로벌 체제의 소산이다.


 사드 배치 문제 역시 2008년 이후 새로운 미·중관계 및 글로벌 체제의 형성과정에서 분출한 것이다. 단순히 국가 간 외교나 남북 간 군사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한국이 미국과 중국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단기 카드는 없다. 양 국가 관계의 현상 유지, 국가 간 네트워크의 증진을 거쳐 4자 평화체제로 넘어가는 것이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장기 경로다.


 다음으로, ‘한반도경제’는 네트워크 경제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글로벌 경제 네트워크는 집중적이고 비대칭적이다. 네트워크 분석을 해보면, 독일·미국·영국·프랑스 등 주요 국가들이 교역 네트워크에서의 허브 위치를 점하고 있다. 중국은 네트워크의 중심부 가까이에 진입하면서 동아시아 경제 네트워크에서는 허브 역할을 맡고 있다.


 네트워크상에서 한국이 처한 위치를 과대평가하면 안된다. 한국은 아직 글로벌 네트워크의 반주변부에 머물러 있다. 북한은 완전히 동떨어진 주변부에 위치해 있다. 남북한 모두 중국에 의존하는 바가 상대적으로 크며, 특히 북한의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교역 부문에서 중국은 남북한에 영향력을 미치는 네트워크의 힘이 커졌다. 물론 경제·군사 전체적으로 미국의 글로벌 중심성은 여전히 막대하다.


 한편 2008년 이후 뉴노멀 경제의 진전에 따라 동아시아 생산 네트워크의 밸류체인이 각국 안으로 재조정되는 압력이 증대했다. 미국과 중국이 모두 자국 중심성이 강화되는 추세를 보인다. 이것이 한국의 외교안보 딜레마로 나타났다. 글로벌 차원에서 자국 중심성이 강화되면 북한 모델의 고립성과 불안정성도 상대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한층 강화되기도 했지만, 뉴노멀 경제의 진전으로 남북 교류의 네트워크 효과가 감소되는 효과도 있다. 당분간은 북·중·러 접경 등 로컬 단위의 네트워크 거점을 형성하면서 남북 네트워크로 이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축적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노자가 권고했던 무위(無爲)의 정치를 다시 생각해본다. 국가 차원에서 공을 이루고 일을 완수하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사람과 지역의 네트워크에 더 주목해야 한다. 네트워크야말로 백성들이 자신이 ‘저절로 그러했다(自然)’고 말하는 것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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